호칭 싸움의 끝, 나는 "예수 같은 며느리"가 되었다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④] 가족은 각자 제 갈 길을

등록 2018.12.25 19:52수정 2018.12.2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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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는 결혼 이후 가족 내 성차별적 호칭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싸워온 청오리(활동명)의 경험을 풀어낸 에세이로, 총 4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이 글은 그 마지막입니다. - 기자 말

시아버지의 문자가 몇 차례 더 이어졌다.

'일을 키우면 일이 늘어나고, 일을 줄이면 일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너무 문제를 키워온 게 아닌지… 나도 호칭 개정 운동에는 동의하지만 이렇게 주변의 가까운 관계들을 해치는 점을 생각할 때, 적절한 변경 용어가 표준어로 정해질 때까지 좀 기다려주지 않겠니. 하나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를 잃지 않도록… 어젯밤 통화 중에 마음이 격해져서 제멋대로 쏟아 놓은 말들이 몹시 후회되고 미안하구나. 타법이 늦어서 밤새 썼다가 보낸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간밤에 저 역시 화가 나 있어서 무례했던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남편 형과 부딪치는 지점은 호칭만이 아니라 서열이라는 문제 자체예요. 어젯밤에 남편 형이 전화를 걸어서 결혼했으면 당신은 내 아랫사람이라고, 이 집의 큰사람으로서 말하는 거라기에 웃어버렸습니다. 저런 말을 하면서 자신의 가정이 평화롭기를 바라다니 이상합니다.'

'미안하다.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데. 내가 주의를 주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볼게.'


점심시간이 됐을 때 남편 형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제수씨. 저 △△입니다. 제가 이렇게 전화를 드린 이유는… 사과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이제까지 제가 한 말 때문에 제수씨가 상처받으신 부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제수씨를 저보다 낮은 사람이라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 없어요."

"네. 사과 잘 받겠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서로 잘 모르다 보니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쪽에서 생각할 때는 제수씨가 너무 일방적으로 저희에게 호칭을 강요하니까…."

"저는 처음에 호칭 얘기를 시작할 때 두 사람의 의견을 얘기해달라고, 경청하겠다고 말했을 텐데요?"
"저희에겐 그런 게 강요로 느껴진 거죠. 대답 안 하면 거절이라고 이해할 거라 생각했는데… 또 전에 동생이 사과한다고 우리한테 문자를 보냈을 때도, 호칭에 대한 얘기를 우리에게 다시 설명하려고 드니까 왜 싫다는 사람에게 계속 얘기를 꺼내냐, 이런 생각이 든 거죠."

"그럼 △△씨는 제가 어떻게 해야 했다고 생각하세요? 두 사람이 저에게 불편함을 참으라고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는 전에 동생한테 많이 말했어요. 제수씨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이렇게 공식적으로 얘기를 꺼내는 것보다 저한테만 살짝 말씀하셨으면…."

"제가 듣기에는 아내를 좀 바보 취급하시는 것 같네요. 저랑 남편, △△씨만 얘기하는 건 한 사람을 따돌리는 일 아닌가요?"
"아무튼 제 아내는 이런 얘기를 이해 못 해요. 제수씨는 어떤지 모르지만, 제 아내 집은 대가족이에요. 모임도 자주 있고 그러다 보니까 질서가 잡혀야 돌아가거든요. 윗사람, 아랫사람 딱딱 나뉘는 식으로… 그래서 제가 부모님한테도 좀 나서서 정리해달라고 했는데, 제수씨 편만 드니까 저희 쪽에서는 서운했던 거죠."

"어떤 정리를 바란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시부모님이 제 윗사람이라고 생각 안 해요. 부모님은 어른일 뿐이죠. 노인에 대한 공경과 배려를 받을 수는 있지만, 부당한 일을 저에게 시킬 권리는 없죠." 
"물론 그렇죠. 그렇긴 한데… 제수씨보고 저희를 윗사람이라고 떠받들라는 게 아니라, 사회의 법칙이라는 게 있잖아요?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요. 가계도를 보면 아버지 밑에 형이 있고, 그 밑에 동생이 있고…."


"시부모님은 윗사람이 아니라 어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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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부모님이 제 윗사람이라고 생각 안 해요. 부모님은 어른일 뿐이죠. 노인에 대한 공경과 배려를 받을 수는 있지만, 부당한 일을 저에게 시킬 권리는 없죠." ⓒ unsplash

 
"가계도에서 형하고 동생은 나란히 있죠." 
"아무튼 저는 교과서에 나온 대로 얘기했을 뿐이에요. 저희가 윗사람 노릇을 하겠다는 게 아니고요. 제수씨는 저희보다 그런 부분에 예민하니까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제 아내가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걸 이해를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전에 동생은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사회가 바뀌는 거라던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반대로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사회가 바뀐다고 해도 가족끼리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거죠. 저는 처음에 호칭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이거 까닥하면 큰일 나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예상했던 것 중에 최악의 결과가 그대로 벌어진 거예요. 제가 바라는 건 이제 서로 좀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서로 건드리지 않는다면 얘기가 나올 필요가 없겠죠." 
"그쵸. 건드리지 않는다면."

"호칭은 바꾸는 거고요." 
"네…. 사실 이 얘기가 나온 지 꽤 됐잖아요? 저희는 솔직히 지쳤어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는 못 하겠고, 더 이상 큰 싸움 없이 조용하게만 지냈으면 합니다."

"우리가 원래 친한 사이는 아니었잖아요? 그래도 이번 일로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고 생각해요. 사과 감사합니다." 
"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시아버지는 주말에 찾아와서 자신의 말을 용서해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들들을 잘못 키워서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일을 돌이켜보면, 제일 큰 문제가 내 안이함 때문이었던 것 같아. 나는 무사안일주의랄까… 그저 하루하루가 무사하면 그뿐이라 생각하고 사니까. 괜히 여러 소리 하지 말고 덮어두자고 생각했는데, 그게 너를 섭섭하게 했겠다 싶어."

시어머니는 자신이 시아버지를 혼냈으니 기분을 풀라며 나를 다독였다. 그날 우리들은 시아버지의 제안으로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 맑은 날씨였다. 자동차는 강변북로를 지나갔다. 한강의 수면 위로 햇빛이 반짝였다. 시어머니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나는 이런 풍경을 보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데... 너희들도 좋은 것만 보고 살아. 남을 바꾸려고 해봤자 나만 괴로운 거야. 항상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


시아버지는 농담조로 원래 선지자는 괴로운 거라고, 우리 집안에 예수 같은 며느리가 들어왔다며 껄껄 웃었다.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서 시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호칭을 바꾸자고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일은 나 자신이 분노를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남편 형 부부나 시부모님에게서 사과를 받고나면 이 싸움이 끝나버리는 게 아닐까. 모든 일이 작은 소동에 불과했다는 듯이. 내 상처에서 나조차 눈을 돌린다면, 누가 내 경험에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을까.

나는 시가 식구들이 모두 사과를 한 후에도 내 안에서 똑같은 온도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나를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힘을 잘 다루고 싶었고, 싸움의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자동차 거울에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남편의 얼굴이 비쳤다. 나는 내가 장소를 잘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어렵게 배운 싸움의 기술, 그 결과는...

물론 이 싸움이 언제나 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아니었다. 나는 종종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남편에게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나는 이제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로맨스와 정상 가족 판타지를 얼마나 치밀하게 주입해왔는지 알겠어. 능력도 변변찮은 주제에 결혼 안 하고 어떻게 살 거냐고 닦달하던 엄마부터, 결혼해야 독립된 성인으로 봐주는 사회 분위기, 남자를 만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경험이라고 외치는 온갖 미디어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에서 나왔던 노래는 온통 짝을 찾아서 좋네, 짝을 잃어서 슬프네 하는 거고, 동화책부터 할리우드 영화까지 인생의 절정은 결혼식이라고 보여줘. 요새 내가 어떤 기분이냐 하면, 핀볼 게임기 안에 들어가 있는 구슬이 된 것 같아. 핑하고 튕기면 아차 하는 사이에 결혼이라는 골로 떨어지는 거야. 당신이 이 기분을 알기나 해?"


"당신 형이 그딴 소리를 늘어놓을 때 당신이 가만히 듣고 있었던 것도 화가 나. 그러고 나서 뭐라고? 그냥 형이 떼쓰는 거로만 들려서 자기는 별로 화가 안 난다고? 그런 말 하는 형이나, 사과하라는 자기 부모님이나, 당신이나, 모두 가해자가 아닌 줄 알아? 다들 입장이야 있지.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던 이유도 알아. 그런데 결과적으로 모두가 바랐던 것이 똑같았다는 점이 소름 끼쳐. 당신들 모두 내가 입 다물기를 원했다는 걸 모를 줄 알아?"

한번은 저녁에 집으로 들어가서 우르르 화를 쏟아내자 남편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말했다.

"부모님이나 형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나는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고 고민했던 것뿐이야. 내가 늘 자기를 지지했다는 걸 알잖아... 나는 자기 이야기 듣고 페미니즘 공부도 하고, 컵도 돌리고, 피켓도 만들고, 시위도 따라갔어. 회사 일 때문에 바쁘고 정신없는데 그랬다고. 오늘도 집안일 한다고 온종일 끙끙댔는데... 내가 이 모든 일을 누구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해?"
"나를 위해서 한다고? 하지 마. 그런 시혜적인 마음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마. 이게 나만의 문제야? 당신이 지금까지 나를 돕기 위해서 모든 걸 했다고 생각해? 이건 내 일이 아니야, 너의 일이야. 사회의 차별 앞에서 괴로워하는 한 인간 앞에서, 네가 어떤 태도를 취할 거냐라는, 네 삶의 문제라고!"

"나도 알아. 아는데... 나도 할 수 있는 만큼 했는데, 그래도 나는 당신 삶을 착취하는 사람이고 가해자일 뿐이라면… 이제 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 거지?"

흐느끼는 남편 앞에서 나는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고단함이 밀려왔다.

나는 이 사람이 나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을 약점이라 생각하는 걸까? 그것을 빌미 삼아서 한 사람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는 걸까. 한국 사회의 여성과 남성이라는 자리. 며느리와 사위라는 자리. 동서와 도련님이라는 자리. 그리고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 있는 나와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울고 있는 너. 이토록 울퉁불퉁한 지형 위에서 너와 내가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남편 형은 나에게 사과를 하고 며칠 후에 단체대화방에서 나갔다. 남편에게 전해 듣기로 단체대화방을 없애는 것이 시아버지의 바람이라고 했다. 나는 시아버지가 생각했던 '근본적인 해결책'이 이것이었나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시아버지는 '자꾸 얘기가 오가니까 서로 감정이 상해서 싸움이 커졌다'는 생각에서 끝내 나아가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이 호칭 싸움에 얽힌 사람들이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시아버지는 나와 전화로 싸울 때 자신이 했던 말들은 진심이 아니라고 했다. 남편의 형 역시 나를 낮은 위치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그것은 화가 나서 나온 말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믿기 때문에 궁금했다. 시아버지의 '운동권이냐'라는 질문은 '메갈이냐'라고 이름표를 붙이는 사람들의 말과 무엇이 다를까? '호칭을 바꾸자는 건 우리 집을 우습게 보는 거다'라는 남편 형의 말은, '호주제를 폐지하면 나라가 망한다'라던 옛 노인들의 목소리와 얼마만큼 거리가 있을까?

살아온 경험도 세대도 다를 텐데 그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비슷한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진심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런 말을 뱉고야 마는 시아버지와 남편 형의 모습이 흥미로웠고,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길 바랐다.

싸움말고, 외면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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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구조를 벗어나서 한 개인으로 만나는 가족.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 만나는 가족. 우리에게는 한 번도 그런 매뉴얼이 주어진 적이 없으므로, 오랜 시간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 unsplash

 
가족 간의 싸움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다. 글을 쓰는 지금 나와 남편, 시부모님, 남편 형 부부 이렇게 세 집단은 서로를 피하며 살고 있다. 나는 언젠가부터 시부모님과 이야기하는 것이 다람쥐가 쳇바퀴 도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왕래를 멈추게 됐다. 남편 형 부부는 시부모님이 자신들을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는다며 발길을 끊었다. 남편은 형과는 일절 연락하지 않고 지내고, 부모님과는 드물게 만난다.

지난 명절에 시어머니는 남편을 통해서 나와의 관계를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왔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지 생각해봤다. 서열 구조를 벗어나서 한 개인으로 만나는 가족.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 만나는 가족. 우리에게는 한 번도 그런 매뉴얼이 주어진 적이 없으므로, 오랜 시간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마지막으로 시가 식구들을 한 데서 봤던 자리는 남편 사촌동생의 결혼식이었다. 그날 남편은 회사에 일이 있어서 나 혼자 결혼식에 참석했다.

야외 결혼식장 입구는 하객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방명록에 내 이름과 남편 이름을 쓰고 축의금 봉투를 전했다. 한복을 입은 시어머니가 나를 보고 반갑게 다가와서, 남편 형 부부도 와 있다며 귀띔했다. 그때는 내 이야기가 나온 인터넷 기사를 단체대화방에 올리며 한창 싸우던 시기였다.

나는 시어머니가 이끄는 대로 신부대기실을 찾아갔다. 남편의 사촌동생은 흰 천이 드리워진 신부대기실에 앉아서 꽃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돌아 나오는 길에 나는 남편의 형 부부와 마주쳤다. 남편 형의 아내는 유아차 손잡이를 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남편 형의 아내는 대답했다.

"네."
 

나는 그 사람의 굳은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지금 무엇을 움켜잡고 있는 걸까? 무엇을 놓지 않으려고 힘을 주고 있기에 이토록 딱딱한 표정을 짓는 걸까? 시어머니는 하객석의 앞줄로 나를 데려갔다. 어디선가 나타난 시아버지는 남편 형 부부를 뒷줄로 이끌었다.

하객석 앞줄엔 경조사에서 몇 번 만났던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나는 남편의 할머니와 시어머니 옆에 나란히 앉았다. 입장 음악이 울리자 신부와 신랑이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왔다. 주례 대신 신부의 어머니가 인사말을 했다. 결혼식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결혼 얘기가 나오기도 전에 예약부터 했었다는 농담. 두 사람의 앞날에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축복의 말. 남편의 할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시어머니도 손수건으로 눈가를 눌렀다.

나는 신부와 신랑 두 사람이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삶의 풍파를 함께 감당할 사람을 찾았다는 안도감, 내 삶을 나눌 이를 찾았다는 기쁨에 부풀어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와 남편이 그랬듯이.

신부 어머니의 축사 후에 신부와 신랑은 결혼서약문을 낭독했다. 각자가 직접 쓴 결혼 생활에 대한 다짐이었다. 남편의 사촌동생은 마이크 앞에 서서 또박또박 읽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걸어갈 나날 동안 언제까지나 당신을 진실하게 사랑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웃고, 당신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겠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그러했고 당신의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자상한 어머니로, 효성스러운 며느리로 살겠습니다. 항상 당신을 응원하는 든든한 아군으로, 당신이 기댈 수 있는 현명한 아내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 살겠습니다."


[나의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① '가족 호칭' 바꾸자 하니 돌아온 말 "넌 우리 집이 우습구나?"
② "그건 자격지심 아니야?" 남편의 형은 말했습니다
③ "결혼했으면 당신은 내 아랫사람이야!" 사람이 되기 위하여
#페미니즘 #성차별 #호칭 #가족 #여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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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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