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취준생의 고민 "퇴사할 회사를 찾는데요"

[프로딴짓러의 일기] 회사 생활 첫 시작,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등록 2018.12.30 20:20수정 2018.12.30 20:20
1
원고료로 응원
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퇴사 후 많은 후배가 나를 찾았다. '퇴사 컨설턴트냐'는 농담도 들을 정도였다. 요는 그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해 왔는데,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마음먹은 결정이 있었다. 울고 싶은데 때려 달라고 조르는 이들의 기대에 부응해 가끔은 등을 떠밀어준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듣고 말았다. 내가 뭣하러 타인의 인생 지휘대에 선단 말인가. '조언'과 '멘토'가 이미 폐어가 되고 있는 지금, 시대착오적인 발언으로 '꼰대'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게 솔직한 마음이다. 

'대기업 퇴사녀'라는 꼬리표는 세월에 바래 천천히 떨어졌다. 과연 시간은 위대했다. 한동안 자기소개서와 면접, 퇴사와 이직의 질문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취업준비생인 친한 동생에게 요즘 말로 '신박한' 질문을 들었다.

"제가 퇴사할 회사를 찾는데요."
 

입사할 회사를 찾는 것도 아니오, 퇴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도 아니오, 이직할 곳을 찾는 곳도 아니었다. 입사도 안 했는데 퇴사할 회사를 찾는다니.
    
"어차피 퇴사는 할 예정이에요. 사실 지금 어느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평생 다닐 수는 없는 거잖아요. 언제 나오느냐가 문제지. 그런데 첫 번째 회사가 그 다음의 이력을 결정한다고 해서요."

그 동생은 봉급은 작은데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와, 급여는 많으나 적성에 안 맞는 직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어차피 한 직장에서 오래 다닐 수는 없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책이지만 니체의 명언은 기억에 남는다. ⓒ 박초롱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그와 나는 내가 운영하는 북바의 책모임에서 만났는데, 멤버들이 다 몇 번씩의 퇴사를 경험한 이력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NGO 단체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 호기롭게 시작한 스타트업이 망해서 대기업으로 옮긴 영재, 박사를 따고 포닥(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학계를 떠나 기업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사람(그도 결국 퇴사했다), 그리고 회사를 나와 N잡러(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것)로 일하고 있는 나까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러니 모임의 막내인 그가 입사하기도 전에 퇴사를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첫 직장'을 고민하지 '평생직장'을 고민하지 않았다. 입사는 중요하다. 그게 내 남은 삶을 모조리 결정해서가 아니라, 첫 번째 발자국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기업에서 시작하고 싶어요. 대기업에서 시작해야 중소기업 가기도 편하다면서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솔직히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대기업으로 옮기는 것보다, 대기업에서 어느 정도 일을 해 직급을 올린 후에, 중소기업에 경력을 인정받아 가는 게 쉬웠다. 중소기업에서 웬만큼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아직 순혈주의가 강한 한국의 대기업의 문턱을 '경력직'으로 넘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작은 기업에서 일을 탄탄하게 배운 후에 큰 기업 가는 게 낫다는 사람들도 있고요."

이런, 나는 또 황희정승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일을 어디서 더 많이 배울 수 있느냐는 회사나 부서마다 너무 달라 단정 짓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작은 조직에 가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신 해주는 하청업체도, 사내 시스템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다양한 서식도 없기 때문이다. A부터 Z까지 모두 직접 하다 보면 생계의 최전선에서 혼자서도 너끈히 살아남을 생존력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퇴사 후 작은 사회적 기업에서 잠시 일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큰 기업에서 얼마나 안온했나 반성했다. 하다못해 주간회의자료조차 사용하던 양식이 없어 새로 만들어야 했다. 사무용품을 직접 사야 한다거나(당연한 일을 당연한 줄 모르고 살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무실 대청소를 하는 일도 좋았다. 작은 기업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그것보다 더 작은 내 사업체를 꾸리는 일도 훨씬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친한 동생이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내가 만약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말이야. 나는 대기업에서 시작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대기업에서 한두 해 정도 일하다 보면 커다란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고 굴러가는지 어렴풋하게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자동적으로 이득을 가져다 주는지, 왜 조직도는 이렇게 돼 있는지 탐구해 볼 기회가 있다.

워낙 조직이 크다 보니 그 다양한 계층구조 안에서 소위 '사회생활'이라 일컬어지는 예의나 눈치를 혹독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게다가 큰 계약을 하거나 대규모 프로젝트를 뒤에서나마 참여할 기회도 생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주변 사람들이 추후 '독립'했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요! ⓒ 박초롱

 
내가 대기업에서 시작하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급여'다. 작은 기업도 급여를 잘 주는 경우가 많지만 평균적으로 기업 규모가 클수록 급여도 높아지니 말이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꿈을 좇아 작은 기업에서 시작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만은, 혹여나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급여'를 생각해서 대기업에서 일하라고 말하고 싶다. 

평생직장이라는 단어 역시 폐어에 가깝다면, 평생 10번은 변한다는 내 직업의 큰 줄기를 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 부모님 등골을 부러뜨리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 시간을 벌어줄 만한 어느 정도의 여유자금이 필요하다. 

첫 직장을 잘 잡으라는 부모님 말씀은 딸을 기르는 보수적인 가장의 태도와 비슷한 데가 있다. 스무 살까지 연애는 안 된다. 대학에 가면 연애는 할 수 있지만 집에는 꼬박꼬박 들어와야 한다. 너무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니지 마라. 

그렇게 연애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딸이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이 되면 직장도 좋고 인격도 좋은 그럴 듯한 남자를 갑자기 데려와 결혼을 하길 바란다. 연애를 많이 해 보지 못한 사람이 배우자를 고르는 눈이 한 번에 높아질 확률은 국·영·수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해 서울대에 딱 붙을 확률과 비슷할까. 

첫 직장을 평생 직장으로 삼을 확률은 첫사랑과 결혼할 확률만큼이나 희박하다. 첫 직장이 평생 커리어의 기초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분야로 가면 그만이다. 좋아하지도 않는 첫사랑과 꾸역꾸역 결혼까지 밀고 나갈 필요는 없다. 

퇴사할 회사라 생각하고 첫 직장을 선택한 사람과 평생 뼈를 묻을 각오로 입사를 한 사람은 어떻게 달라질까. 첫 번째 회사를 다니던 때 막 들어온 신입사원의 포부를 듣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높은 경쟁률을 뚫고 회사에 입사한 그는, 새로 산 지 얼마 안 돼 아직 몸에 덜 붙는 양복을 입고 솜털이 보송한 얼굴로 외쳤다.

"앞으로 40년 동안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40년 동안 한 곳에서 일하겠다는 각오.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내 할머니는 종종 고향 지도를 꺼내 한 곳을 짚어주면서 '이곳이 네가 묻힐 자리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묻혔다는 그 무덤밭.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된 내 묫자리. 40년 동안 한 회사에서 분골쇄신하겠다는 각오는 어떤 것일까.

그는 5년을 채 다니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남은 35년 동안에는 어디에 뼈를 묻을 작정인 걸까. 퇴사할 회사를 찾는다는 그는 면접은 잘 봤을까. 끊임없이 헤어지고 사귀고를 반복하면서도, '평생 함께 할게'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속는 척하는 노하우로, 퇴사할 회사를 고르기를. 너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다니고, 세상은 넓고 사귈 사람은 많다는 마음으로 떠나기를.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킹메이커들
  2. 2 셀트리온 치료제, 전문가들에게 물었더니... "한국은 다를 수 있다"
  3. 3 중학생 딸 폰에 저장된 연락처 '좀 급한 듯'... 뭔가 봤더니
  4. 4 53세 남자가 보내온 그 사진... "이게 현실, n번방 없어지겠나"
  5. 5 기대 이상의 코로나 보상... 일본 음식점들은 셔터를 내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