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만큼 편한 사람 없다"는 선동이 나타난 이유

[주장] 20대 남성은 왜 페미니즘과 멀어졌나... 꼰대 같은 '고통 올림픽' 당장 중단해야

등록 2018.12.26 09:51수정 2019.01.0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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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지지층으로 분류되던 20대 남성층의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최저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오마이뉴스>는 한 연구자의 의견을 소개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외에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성별 갈등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상대 이성을 향해 최대한의 경멸적 언사를 퍼붓는 것이 일상화된 모습이다. '이수역 사건'처럼 극한의 성대결이 오프라인에서 실사화되는 경우도 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페미니즘 운동의 지지 여부 질문에서 20대 남성의 76%가 페미니즘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젊은 세대의 성별 갈등이 단지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최근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이 폭락한 원인을 두고 반페미니즘과 결부시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이 맞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단순 상관관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지지율의 변수는 다양하다. 대통령 지지율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이렇게 서로를 미워하고 적개심을 품는 세태 그 자체이다. 시간이 해결해줄 수도 있겠지만, 마냥 기다릴 만큼 사태가 한가로워 보이진 않는다.

왜 이렇게 이성을 향한 증오심이 부풀었는지, 왜 이토록 안타까운 대결을 벌이고 있는 건지,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해 '고통 올림픽'의 폐해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남과 여, 고통을 겨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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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페미니즘 운동을 반대하는 시민들로 구성된 '안티페미협회' 회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는 여성할당제 등 페미니즘 정책을 중단하고, 여성가족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17.12.10 ⓒ 연합뉴스

  
우리에게 익숙한 고통 올림픽의 전형은 세대 간 갈등이다. 폐허로부터 출발해 갖은 고생을 해가며 경제성장을 이룩한 기성 세대를 '꿀 빠는' 세대일 뿐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기류가 있다. 한편에선 우리만큼 고생도 안 한 젊은 세대가 '헬조선' 운운하며 사회 탓만 한다는 빈정거림이 있다. 이처럼 상대의 어려움을 경시하고 나의 곤경을 우위에 놓는 고통 올림픽은 그 악영향이 지대하다.

일차적으로, 자신이 겪는 어려움이 무시 당하는 일은 매우 큰 불쾌감을 자아내기 십상이다. 그렇게 감정이 격앙되면 이성적인 대화는 물 건너 가게 된다. 또한 고통이나 힘겨움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영역이어서 남한테 이것을 인정하라고 강요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의 역경과 성과를 수긍하고, 동시에 기성 세대는 젊은 세대의 절박하고 불투명한 처지를 이해하며 어떻게 뒷받침할지를 고민해야 새로운 도약의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고통 올림픽은 감정 싸움만 심화시킬 뿐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세대 간에 불붙었던 고통 올림픽이 이제는 성별 간의 전쟁으로 급속히 확산 중이다.

여성운동의 정당성은 상당 부분 어쩔 수 없이 고통 올림픽에 근거해야 한다. 남성은 경험하지 않는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과 난관을 근거로 여성의 권익 신장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고통 올림픽에 수반되기 쉬운 단점, 즉 타인의 고통을 깎아내리는 행위가 난무했다는 것이다.

남성 중심의 한국 사회는 '여성이 아니라면 잘 알 수 없는' 갖가지 곤경들에 너무나 무심했었다. 이를 알리는 페미니즘의 부상은 응원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성운동과 그 동조자들 역시 고통 올림픽의 역작용에 너무나 무심했다.

여성의 삶에 얼마나 장애물이 많은지 호소하는 것을 넘어 남성으로서 겪어야 할 여러 가지 곤경을 비웃고 조롱하는 일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심지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처해 있는 어려움에도 평상시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남성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아무 일도 아닌 양 취급한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리 여성이 힘겨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한들, 거센 반발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어지간한 남성들의 삶의 무게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의 낡은 사회구조에 짓눌린 채, 자녀를 낳고 내 집을 마련하는 등 미래에 대한 계획은커녕 근근이 당장의 밥벌이만 해결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적인 고통 올림픽이 벌어지면, 자신의 오류와 결점은 보지 않고 상대를 힐난하는 데만 혈안이 되는 광기가 팽배하기 마련이다.

여성운동 진영의 오류에 대응하는 이들 또한 심각한 상태이다. 남성의 곤경을 평가절하하는 움직임에 대응하여 주로 젊은 남성들은 고통 올림픽의 주 전장 온라인을 통해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폄하하고 비아냥거리는 데 매진했다. 급기야 여성비하가 일상인 '일베'를 욕하던 이들마저 그 일베의 여성비하 망나니 짓과 적지 않은 교집합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한국 여성만큼 편하게 사는 이들이 없다"는 선동가들이 나타나 불만에 찬 남성들의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이성 간의 고통 올림픽이 불러온 참사이다(이 같은 '고통 올림픽'의 출발이 여성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성의 고통에 둔감했던 (기성 세대) 남성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다).

데이터로 보면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교수는 일전에 그의 SNS에 "한국은 남성에게도 너무나 살기 힘든 나라"라면서도, 데이터로 볼 때 "한국 여성들은 그런 한국 남성과 비교해서도 압도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메시지는 6천 명이 넘는 공감과 1천 6백 회에 달하는 공유를 기록했다. 개인적으로 김 교수의 연구와 데이터에 무한에 가까운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항상 등장하는 남성 측의 불만과 같이, 이게 장기간에 걸쳐 평균적으로는 그럴 수 있어도 예외와 빈틈이 너무 많다는 맹점이 있다.

균등화가처분소득이라는 데이터를 보자. 이것은 지니계수를 비롯한 각종 격차 지표를 산출할 때 이용되는 필수 통계이다. 가구의 가처분소득을 가구원 수에 따라 보정하여 뽑아낸다. 이렇게 해야 누군가의 현실적인 소득 및 후생 수준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벌이 가장이 월급을 타왔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외벌이 가장의 소득은 아닌 것이다. 그 실례를 보면, 가처분 기준으로 가구소득 8000만 원의 중산층 남성 외벌이 4인 가구가 있다고 할 때, 이 가구 구성원의 연간 균등화가처분소득은 OECD 기준으로 4000만 원이다. 이 말은 곧 중산층 전업주부의 경우 남성의 벌이에 따라 연 4000만 원 내외의 경제적 효용을 누린다는 뜻이다.

반면에 혼자 사는 20대 남성이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해 2000만 원의 가처분소득을 올렸을 때, OECD 기준으로 이 독거 청년의 균등화소득은 그대로 2000만 원이다. 이 같은 균등화소득이 매우 엄밀하게 측정된 지표는 아니지만, 중산층 전업주부보다 저임금 20대 남성의 소득 및 생활 수준이 꽤나 열악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중산층 전업주부는 취업조차 못하고 있으니 20대 저임금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것인가? 집에서 택배를 받고 배달을 시키는 중산층 무직 여성이, 남성이라는 '성 기득권'을 갖지 못했으므로, 칼바람을 맞아가며 제품을 배송해주는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것인가?

통계적으로 최소한 20대에선 성에 따른 고용 및 소득 불균형이 나타나지 않는다. 만성적인 취업난과 스트레스로 가득 찬 학업 및 사회생활은 성별을 불문하고 공통이다. 또한 고질적인 여성비하의 풍토도, 여전히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젊은 세대에선 많이 개선돼 있다. 몰카, 데이트 폭행 등 여성이 직면한 각종 신변의 위협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큰 것은 명백하지만, 내 앞가림도 빠듯한 보통의 청년 남성들에게 '잠재적 가해자'는 각성하라는 여성운동의 외침이 무작정 호응을 얻기는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이로 인해 특히 20대 남성은 남성과 여성을 단일 집단으로 묶어 고통 올림픽의 절대적 금메달리스트로 여성 일반을 등극시키는 시류에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시류는 언론이 앞장서고 많은 식자층마저 동조할 만큼 공고하기에, 다수의 20대 남성으로선 높으면서도 불공정한 장벽 앞에 서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범죄에 관한 페미니즘 트렌드에도 허점이 있다.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현행보다 더욱 강화하고, 성범죄 수사 시 여성의 곤경을 지금보다 더욱 헤아려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남성은 드물다(하지만 법원 및 수사 당국은 여전히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성범죄는 그 특성상 다른 어느 증거보다 증언이 결정적이므로 증언의 가중치가 높다는 것까지도 남성 대다수는 수긍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증언만 나오면 바로 유죄임을 확정하라는 목소리까지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것이 페미니즘이고, 그 근거로서 당사자의 '고통'과 '눈물'을 제기하기에, 남성으로선 그런 페미니즘과 여성의 곤경에 대해 이유 있는 반대를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른바 '2차 가해'가 횡행하는 것은 사실이고 남성들은 이 부분에 각별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여성운동 측에서도 여성이 고통 올림픽의 승자임을 부각시키며 무리한 요구까지 관철하려다 다른 이들의 반감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통 올림픽의 승자가 되었다는 것은 전혀 기쁜 일이 아니고 서글픈 일이지만, 그와 관련한 요구 사항들이 정당성을 상실하면 고통을 전시해야 하는 아픔까지 짓밟히기 십상이다.

꼰대 같은 소모전을 중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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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 성차별적 편파수사 규탄 여성단체 회원들이 8월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앞에서 성차별적 편파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일간베스트(일베), 디시인사이드 등 남성 중심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웹하드 및 파일 호스팅 서브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물이 수십년간 넘쳐났다’ ‘경찰이 십수년간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다가 여성피의자가 등장하자 즉각 체포-수사하고 국제공조를 펼치는 등 편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 권우성


  
아무리 온라인이라지만 성별 갈등이 너무 심각한 지경으로 악화됐다. 공개 형식의 남초 사이트는 물론이고 비공개 형식의 여초 사이트에서도 ('펌'을 통해 알려지는 게시물들을 보면) 극단적인 경멸과 비웃음이 차고 넘친다. '이수역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오프라인에서도 성별 갈등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다른 것보다 우선 상호 존중을 망각한 고통 올림픽의 폐해부터 직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통을 상호 비교하는 것은 사실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고통 올림픽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내가 더 힘들다'고 강조하려다 본의 아니게 타인의 어려움을 경시하는 무례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역으로 내 어려움을 무시 당했다고 타인의 어려움을 조롱하지는 않았는지 한번 되돌아보기를 당부하고 싶다.

이런 고통 올림픽은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재미로만 하는 데 그쳐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의 고통을 폄하하고 빈정대고 그런 일은 이제 중단해야 한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건설적인 여론을 모아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이 시대에 우린 너무 꼰대 같은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나는 격차와 조세, 복지, 삶의 질 등을 주로 탐구하는 풋내기 연구자다. 풋내기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여성의 권익이 높은 사회가, 구체적으로는 여성이 출산과 무관하게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또 저임금에 내몰리는 것을 방지하는 그런 사회가, 남성에게도 이롭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을 만들지 못하고도 삶의 질이 고르게 높은 나라는 어떠한 통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고질적인 경단실업과 남성 외벌이 사회구조에 따라 OECD 중 여성 고용률이 하위권이고 저임금 여성 비율은 최하위권이다. 이 부수효과로 한국의 임금 격차와 노동시간, 출생률은 OECD 최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고통 올림픽으로 치고받고 싸울 시간이 있으면, 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지를 모으는 게 사리에 맞다. 또 저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이건 개인이건, 부자건 부자가 아니건, 다들 세금을 듬뿍 내서 공공의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늘려야 한다. 이것이 온갖 데이터가 일제히 말하는 바다.

우리는 명백한 통계와 사실을 근거로 우리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 이 바보 같은 고통 올림픽을 중지하고 공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관련 기사] 20대 남성의 불만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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