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만납시다" 김용균의 글, 3000명 목소리 됐다

범국민추모제 이어 청와대 행진... 희생자 부모들 "도와주세요"

등록 2018.12.22 21:15수정 2018.12.2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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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고 김용균, 고 이민호 부모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과 죽음의 외주화 중단을 촉구하는 범국민추모제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 파이낸스빌딩앞에서 열렸다. 고 김용균씨의 부모와 지난해 제주에서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고교생 고 이민호 군의 부모가 눈물을 흘리고 이있다. ⓒ 권우성

 "내가 김용균이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내가 김용균이다, 위험의 외주화 중단하라!"
"내가 김용균이다, 대통령은 사죄하라!"


광화문 일대에서 "내가 김용균이다"라는 구호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은 김용균씨의 얼굴이 담긴 피켓과 함께 김씨가 사진을 통해 남긴 메시지인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를 외쳤다. 

아들을 잃은 부모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면서도 "지금도 위험에 노출돼 있는 아들의 동료들이 하루 빨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나라가 책임 있게 행동하길 바란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3000여 명 인파의 발걸음과 구호는 청와대 앞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청와대로 가는 길의 가로수 사이사이에 "내가 김용균이다"라고 적힌 검은 리본을 매달기도 했다.

엄마의 눈물 "널 지키지 못한 것,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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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향하는 고 김용균 추모범국민대회 참가자들 고 김용균씨의 부모와 지난해 제주에서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고교생 고 이민호 군의 부모,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포구 아현동 철거민 고 박준경씨 유가족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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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씨 부모가 무대에 올라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를 추모하게 위해 시민대책위와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22일 오후 5시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범국민추모제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위험의 외주화 즉각 중단 등을 요구했고, 추모제를 마친 뒤에는 "대통령을 만나 사회적 타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김씨의 부모 김해기·김미숙씨도 아들의 얼굴이 그려진 플래카드를 든 채 청와대 행진 대열의 맨 앞에 섰다. 추모제 시작 전부터 눈물을 쏟아낸 두 사람은 청와대로 나아가면서도 연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닦아냈다.


추모제 무대 위에 오른 어머니 김미숙씨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을 절절히 토로하면서 "용균이가 바라던 세상을 만들려면 국민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얼굴 부비고 싶은 용균아.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이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어디로 간 거니. 너 하나만 바라보며 너의 곁에 있고 싶은 게 엄마의 큰 욕심이었는지, 하늘은 왜 이리 내게 가혹한지 모르겠다. 지금은 오로지 네가 바라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것만 생각하고 산단다. 그렇게 너를 지키지 못한 것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게.

이 나라가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까닭으로 스물네살 꽃다운 청춘이 무너져버린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비록 우리 아이는 원통하게 갔지만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는 아들 동료들이 하루 빨리 위험에서 벗어나길 바랄 뿐입니다. 용균이 바람대로 대통령을 만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국민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응원해주세요, 동참해주세요. 그러면 저는 끝까지 싸울 수 있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옆에서 흐느끼던 아버지 김해기씨는 "잘못된 원청 책임자들과 이렇게 아이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은 정부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본다"라며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기 위해 여러분께서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줬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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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슬퍼하는 고 김용균-고 이민호 어머니 고 김용균씨와 지난해 제주에서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고교생 고 이민호 군의 어머니가 함께 슬퍼하고 있다. ⓒ 권우성

 "문 대통령, 영정 속 김용균에 사과해야"

이날 추모제에는 지난해 제주에서 현장실습 도중 목숨을 잃은 고 이민호군의 부모도 참석해 함께 눈물을 흘리며 김씨 부모를 위로했다. 이군의 아버지 이상영씨는 직접 무대에 올라 "아직 꽃봉오리도 피지 못한 애들을 죽게 만드는 게 나라인가, 이게 나라입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막막합니다. 민호가 그렇게 저희 곁을 떠나고 두 번 다시 이런 사고는 없길 빌었는데... 왜 바뀌지 않을까요. 왜 젊은 청춘들의 목숨을 빼앗아갈까요. 기업체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의 자세가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은 한결같이 사고 전엔 안전점검의 의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 두 곳은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곳입니까, 기업체에 노동력을 지원하는 기관입니까.

민호의 죽음도 힘들고 괴로웠는데 연이어 터지는 사고를 보며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기업은 오로지 돈, 돈, 돈이 목적이기 때문에 (정부는)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체를 다시는 운영할 수 없게끔 벌금을 내리는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우리 애 회사가 벌금 2000만원을 물을 거랍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사람 목숨이 2000만원 밖에 안 돼요?"


추모제에는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도 참여했다. "발전소에서 20년째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시신이 수습되기도 전에 옆 벨트를 돌려 전기 생산을 계속하려고 했다"라며 "그의 죽음을 대면하는 한국서부발전의 악랄함과 생명을 중시하지 않는 태도, 하청업체와 짬짜미해 사건을 은폐하려는 만행을 강력히 규탄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앞서 1100만 비정규직이 문 대통령에게 절규했고, 대통령을 만나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대통령은 침묵했다"라며 "용균이가 죽지 않도록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저도 죄인이다, 시민 여러분께서 용균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유가족의 아픔에 함께 해달라"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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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리본 묶으며 오열하는 고 김용균 아버지 청와대앞까지 행진을 한 고 김용균씨 부모가 도로변에 '내가 김용균이다'가 적힌 검은 리본을 묶으며 오열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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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행진 후 서로 위로하는 유가족들 청와대앞까지 행진을 마친 고 김용균씨의 부모와 지난해 제주에서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고교생 고 이민호 군의 부모,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포구 아현동 철거민 고 박준경씨 유가족이모여 용기를 잃지 말자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 권우성

  전날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한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의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은 "(김씨의) 어머님·아버님께서 청와대 앞에서 밤을 샜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아주시며 고맙다고 하시더라"라며 "15년 동안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며 싸워왔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런 와중에 또 스물네살 청년이 죽었는데 그의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이 죽음에 정말 아파한다면 대통령이 약속했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공공부문 비정규직부터 먼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며 "더 이상 비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라고 강조했다.

구일역에서 비정규직 역무원으로 근무하는 29세 황지민씨도 "바로 옆 구로역엔 코레일 소속의 정규직 역무원이 있는데 저와 동일한 업무를 한다, 하지만 저는 최저임금, 장시간 노동, 최악의 처우에서 근무한다"라며 "지난 9월 15일 비정규직 역무원이 홀로 역사를 지키다 뇌출혈로 쓰려져 숨졌다, 그래서 김용균의 죽음은 그 죽음을 떠올리게 하며 '내가 바로 김용균'이라고 말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문 대통령에게 이 사슬을 끊어내자고 말하고 싶다"라며 "문 대통령은 영정 속 김용균과 여기 선 수많은 김용균,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1100만 김용균에게 미안하다고 해야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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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측이 준비한 고 김용균씨의 모습을 한 조형물이 청와대앞에 놓여 있다. ⓒ 권우성

 
#김용균 #비정규직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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