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애, 높은 이혼율... '고려'라는 나라를 알고싶다면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19년 3월 3일까지

등록 2018.12.30 15:52수정 2018.12.30 15:52
1
원고료로 응원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 하는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 김형순

  
고려건국 1100주년을 맞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Goryeo: The Glory of Korea)'이라는 제목으로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이 2019년 3월 3일까지 열린다. 우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고려미술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고려수도 개경', '고려 사찰로 가는 길', '차(茶)가 있는 공간',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 등 4부로 구성됐다.

이번 출품작에는 국보 19건, 보물 33건 등 외에도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에서 온 '아미타여래도'와 영국 잉글랜드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오사카 동양 도자미술관 등 4개국 11개 기관에서 대여해온 450여 점이 포함됐다. 그리고 해인사, 삼성미술관 리움, 호림박물관, 간송미술문화재단 등 34개 기관도 참여했다.

고려수도였던 '개성(개경)'이 북한에 있고 관련자료 접근 등 제한이 있어 고려사 연구에 난관과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이 정도의 양과 규모와 수준의 전시가 마련되었다는 건 대단하다. 북한과 공동기획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배기동 관장은 이번 전시과정에서 "박물관 학예연구사가 과로로 병원 신세를 지는 일도 있었다"고 지나가는 말로 언급했다.

태조왕건과 개경 그리고 북방정책
   

'고려태조상' 개성리 해선리 현릉, 높이 138.3cm, 조선역사중앙박물관, 북한국보 ⓒ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는 '고구려(高句麗)'에서 왔다. 자연이 수려(麗)한 나라, 금수강산이라는 뜻이다.

우선 고려 태조 왕건은 과연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진다. 위 사진은 1992년 북한 개성 현릉(왕건릉)에서 발굴된 왕건상이다. 이 사진으로 보니 '사람 반, 불상 반' 모습이다.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위엄이 대단하다. 또한 강한 카리스마도 느껴진다. 배 관장은 북한이 특별히 배려해 왕건상을 이번 전시에 보내줬다면 이번 전시가 더욱 완벽했을 거라고 말했다.

왕건은 호족 출신으로 개경 출신이다. 모든 계층을 끌어안은 통합적 지도자였다.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왕족과 호족 간 혼인정책을 썼다. 빈민대책인 '흑장(黑倉: 빈민구제 위해 봄에 곡식 나눠주고 추수 후 갚게 했던 기구)'이 있었고, 불교가 주류지만 유교, 도교, 풍수지리 등도 인정해 다원사회로 이끌었다. 중국문화도 나름 선별해서 주체적으로 수용했다.

고려가 통일과정에서 발해국이 마침 926년에 거란에 의해 망하자 합류시켰고 신라경순왕은 아예 귀순했다. 후백제도 접수했다. 신라가 통일국가였다지만 사실은 한반도 이남일 뿐, 그래서 왕건은 적극적 북방정책을 썼다. 그는 일 년 중 3분의 2는 개경에서, 3분의 1은 서경(평양)에 거하면서 지금의 평안도 청천강과 함경도 영흥만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태조 왕건은 즉위 이듬해인 919년 송악산 남쪽 개경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왜 '개경(Open Metro City)'인가. 쉽게 말하면 교역국으로 바깥을 향해 문을 활짝 열겠다는 뜻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13세기 개경에는 10만 가구가 살고 있었단다. 가구당 4명으로 계산하면 인구가 40만 명 정도다.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 인구가 10만이었음을 감안할 때 크게 번성했다.

배기동 관장과 기자와 대화에서 수도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고려는 주변국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모든 면에서 개방정책을 썼기에 찬란한 융합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단다. 영어 '코리아(Korea)'가 고려에서 왔다는 걸 보면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은 '한류'가 있었던 것이다.

물류와 무역의 나라 
 

국립중앙박물관 제1기획실 벽에 게시된 '벽란도' 설명문. ⓒ 김형순

    
위에서 보듯 고려시대 예성강 하류에 위치한 '벽란도'는 다양한 물산과 사람이 드나드는 고려의 관문이었다. 또한 국제무역항이었다. 여기 개경과 가깝고 수심이 깊어 국제항구로 최적지였기 때문이다. 인천이 서울의 외항이듯 당시 '벽란도'는 개경의 외항이었던 것이다.

당시 고려는 무엇보다 물류의 나라로 무역을 위해 쌍돛을 달고 바다를 누빈 조운선이 끊임없이 오갔다. 송나라에는 금은, 나전칠기, 인삼 등을 수술했고 비단, 악재, 서적 등은 수입했다. 거란·여진에는 농기구, 곡식, 포목 등을 수출했다. 일본은 물론이고 멀리 아라비아까지 금은, 비단, 토산물 등을 수출했다.

또한 고려는 동아시아에서 중심에 위치해 무역에서 유리했다. 그러나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아직도 분단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남한은 본의 아니게 외국에 나갈 때 배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 섬이 되었다. 앞으로 북으로 가는 길이 열리면 동아시아 최고의 물류국가가 될 것이다.

창의와 혁신의 나라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 중간코너에 게시된 해인사 '팔만대장경'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고려하면 우리는 역시 '고려청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된 '팔만대장경'을 떠올린다. 당시 중국은 송·원·명 등 왕조가 3번 바꿨고 고려는 거란·여진 등 외침과 시련이 많았던 시기다. 그럼에도 이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서양은 우리보다 늦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유럽문명의 기반을 이루었다. 우리가 비록 인쇄술을 세계화는 못했지만 그런 창의성은 지금도 빛난다. 그런 정신을 계승해 우리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망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과 '아이폰' 아이디어를 작품에 적용한 세계적 작가 백남준, 그의 피 속에 이미 고려인의 유전자 있었던 것인가?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을 불심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간행사업이었다. 그래서 필경문화에서 인쇄문화로 패러다임을 확 바꾼 문화사의 대사건이었다. 이런 정신은 조선시대에는 왕조실록으로 이어진 것인가. 이렇게 대장경은 단지 불교경전으로서의 가치를 뛰어넘어 요즘말로 체계적인 지식과 자료를 중시하는 정보사회 기반이 되는 아카이브문화를 마련한 셈이다.

성평등 속 '관음보살' 유행 
 

'금동십일면 천수관음보살좌상(金銅十一面觀音菩薩坐像)' 고려 14세기, 높이 81.8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는 군주를 스스로 '(동방)천자'라고 불렀다. '황제국'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들이 불교국으로 포용과 통합을 중시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불교는 원래 세계주의다. 출신을 따지지 않는다. 누구나 부처라는 평등주의가 깔려 있다. 이렇게 큰 포부를 품은 고려도 말기에는 불교가 부패한 권력과 손잡으면서 오히려 나라를 망가지게 했다.

하여간 고려는 불교의 영향인지 지금 우리가 보기에도 놀랄 정도로 남녀가 평등했다고 한다. 딸 아들 구별 없이 균등상속을 했고 여성이 호주가 되었다. 재가도 자유로웠다. 당시 송의 사신이 "고려인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진다"는 기록할 정도로 이혼율도 높았다. 당대 청춘남녀들은 팔관회나 연등회 등에서 만나 자유롭게 연애도 나누었다.

이런 사회적 문맥에서 남성적 페르소나가 높은 '지장보살'보다 여성적 페르소나가 높은 '관음보살'이 대유행했다. 관음이란 중생의 번뇌를 자세히 들여다보고(觀), 그 하소연하는 소리와 원성을 잘 들어주는(音) 보살이다. 가톨릭에서 '성모마리아'와 같은 유사한 역할이다.

일본의 민예연구가 '무네요시'가 쓴 <조선과 예술>을 보면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한 관음은 고려인의 영혼의 위안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위 천 개 손을 가진 '천수관음보살'도 바로 그렇다. 중생의 아픔과 고통을 너무 커서 보살의 천 개 손도 모자란다는 뜻이다. 
 

'수월관음보살도' 비단에 색, 103.5×53cm, 호암미술관(오른쪽) '수월관음보살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색 114.5×55.6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고려시대 여성의 힘을 엿볼 수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라마불교의 영향을 받은 관음보살은 더 여성적 자태를 보인다, 아니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연장선에서 '수월관음도'도 볼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을 넘어서는 제3의 성을 연상시킨다. 종교의 경지를 넘어 고려미술의 절정을 이룬 최고 예술품이다. 그래서 국가보물이다.

위 두 개의 수월관음보살도를 보면 거의 같지만 약간의 차이는 있다. 왼쪽은 호암박물관의 소장품이고, 오른쪽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이다. 관음보살은 바위에 왼쪽으로 비스듬히 걸터앉아 선재동자를 인자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다. 이런 신령한 그림에는 불교의례에 담긴 수수께끼 같은 비밀을 풀어줄 수 있는 단서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수월관음도'는 조각형태를 띤 '관음보살상'과 다르게 청정한 정토세상을 형상화한 회화형식의 도설(圖說)이라고 할 수 있다. 중생들 앞에 나타나 중생의 고단한 일상에서 허덕이는 백팔번뇌를 위로하고 고생 끝이 낙이 온다는 그런 신심을 심어준다. 관음의 성지인 보타락가산도 보인다. 그래서 극락의 세계로 이끈다. 거기엔 꽃과 과일과 보배 등도 풍부하다.

수준 높은 하이테크의 나라 
 

'청자연꽃넝클무늬주자(靑磁堆花蓮唐草文注子)' 고려 12세기, 높이 33.8cm, 국립중앙박물관[왼쪽] '청동 은입사 물가풍경 무늬 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 고려 12세기, 높이 37.5cm, 국립중앙박물관(국보 92호) ⓒ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는 당시로는 최고의 첨단기술인 청자를 만든 나라다. 그만큼 기술과 디자인의 수준이 높았다. 고려청자는 11세기에는 '순청자'로, 12세기 초반에는 '비색 청자'로 발전했다. 하늘빛의 절정을 이룬 은은하고 우아한 색채다. 12세기 중반에는 표면을 파내고 실처럼 만든 은을 채우는 기법의 상감청자까지 개발했다. 이는 중국도 능가한 천하제일의 청자였다.

왼쪽 주자의 유연한 곡선미는 감탄이 금할 수 없다. 뚜껑장식만 봐도 2단 연꽃 위에 봉황이 앉아 있는 모습 기가 막히다. 또 오른쪽 깨끗하고 맑은 물을 담는 '정병'이 보인다. 여기에는 섬 주변 물가에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노 젓는 어부와 새들이 여기저기 한가히 노닐고 있다. 어느 화가도 이렇게 정겨운 풍경을 한 폭의 그림에 다 담지는 못했을 것이다. 
     

'청자어룡모양 주자(靑磁魚龍形注子)' 고려 12세기, 높이 24.4cm, 개성 2, 국보 제61호. 국립중앙박물관 ⓒ 김형순

 
고려 왕실미술의 본령을 보여주는 위 주자는 용머리와 물고기 결합해 만든 조형물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제3의 동물을 상상하게 한다. 해태처럼 화재예방의 상징적 의미도 있다. 장식미의 여러 요소가 결합되었다. 파격적이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는 이런 장인의 솜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또한 품격 높은 청자비색이 참으로 고아하고 아름답다.

그밖에도 왕실이 미술후원자로 나선 결과 고려 공예미술의 절정인 나전칠기가 출현된다. 섬세하고 예리한 손길로 빚어낸 이 공예품은 당시 중국에 수출하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천산대렵도' 같은 회화도 나왔고, 서예에서 '구양순체'와 '송설체'가 유행했다.

그리고 당시 고려인은 오늘날 거리의 카페처럼 길목 좋은 곳에 '다점(茶店)'을 세워놓고 차도를 즐겼다. 이런 관습은 국가의 왕실, 사찰의 각종의례에서 먼저 시행되었다. 그들의 일상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거기서 담소를 나누고 다양한 문화와 예술도 논하는 자리였나 보다. 하여간 고려는 이렇게 격을 갖춘 멋과 풍류를 즐기는 나라였다.

'김정은' 위원장도 봤으면 하는 전시
 

'금동불감과 관음보살상' 금동은예 금도금. 시기: 고려말. 국립중앙박물관 ⓒ 김형순

 
나는 전시장을 나오면서 고려사를 알아야 현대사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에서 유행한 '불감(휴대용 불상·Portable Shrine)'은 지금의 스마트폰을, 고려의 인쇄술은 지금의 인터넷을, 팔만대장경은 지금의 아카이브 라이브러리를 연상시켰다.

역사는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내다볼 수 있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그런 면에서 고려와 현대의 문화사를 비교해 보는 일은 흥미롭다. 우리는 그런 피드백을 통해서 세계사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고려가 보여준 '창의성, 포용성, 융합성, 개방성, 다원성' 등을 현대화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요청되는 시급한 정신인 것 같다.

끝으로 한마디 하면 지금 같은 남북분위기 속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월 이전에 서울을 방문해 이 전시를 같이 관람하면 좋겠다. 그리고 배 관장 말대로 북한이 소장한 왕건상(북한보물)도 함께 가져와 보면 좋겠다. 그러면 이번 특별전이 정말 온전해지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전시관련 전문가초청학술강연회]
일시: 2차 2019년 10월 10일(목), 3차 2019년 10월 24일(목), 4차 2019년 02월 14일(목)
장소: 대강당
사전예약 필요 없음. 자세한 정보는 누리집 이밖에도 연계 교육프로그램은 이어갈 예정이다. 박물관역사문화교실부터 가족프로그램까지 여러 프로그램이 이어진다(www.museum.go.kr)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지역네트워크부에서 일합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지하철역 한국 여성 가방에 불, 그 다음 생긴 뜻밖의 일
  2. 2 세월호 생존자의 딸로 7년... 이제는 말해야겠습니다
  3. 3 세월호 보상금으로 차 바꿨다? 우리 모습을 보세요
  4. 4 "엄마, 일은 원래 다 힘든 거지?" 어린 아들의 죽음
  5. 5 "나도 다 큰 남자인데, 자꾸 왜 내 걸 만져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