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늦잠 자서 학교에 늦었다"는 아이들

[교육 현장에서] 선택과 쉼이 없는 아이들, 아이의 삶을 대신 사는 부모님

등록 2018.12.30 15:53수정 2018.12.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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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첫 담임을 했던 첫 해, 고1 담임을 맡았다. 30명이 조금 넘는 교실에서 우울증 의심으로 상담교사에게 별도의 상담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7명이었다. 그리고 매년 담임을 맡을 때마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의 숫자는 줄지 않고 더 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학생들이 많은 것이 우리 지역의 특색인가 생각되었다. 하지만 선생님들과 교류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것이 우리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거였다. 교사가 된 첫 해에는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그후 몇 년 담임을 하다보니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다.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①] 선택을 못한다

첫째, 너무 다양한 선택권 속에서 아이들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

"제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말하면 이것도 안 된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지 않으면 다 뒤처지는 걸요."

우리 세대는 진로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가업을 물려 받거나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갔다. 또 진로 적는 란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어린 나이부터 진로를 적을 필요도, 생활기록부의 진로 활동 란이 대학을 갈 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이 너무 다양하고 새로운 직업들이 너무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예전에 없었던 유튜버라는 직업이 초등학생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저런 것이 직업인가 싶지만 아이들에게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직업이다. 웹툰 작가, 연예인, 유튜버, 블로거, 프로게이머, 연주자 등등 예전에는 큰 이슈가 되지 않았던 직업들을 선호하다 보니 부모님과 부딪히는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처음 들어 보는 직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학교에서 진로 교육을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교사들도 잘 모른다. 결국 우리도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사회의 빠른 변화에 허덕이고 있다. 또 진로를 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진로가 없는 아이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뒤처진 느낌을 받는다.

학교 밖에서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직업이지만 우리 세대의 교사들과 지금의 교사들은 해야 하는 일이 다르다. 아이들이 줄어들다 보니 점점 해야 하는 일들이 다양해지나 그 일을 하는 교사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반이 줄다보니 인력 부족도 심해서 부장을 하면서 담임을 하는 중학교가 흔해졌다.

한 명의 교사가 교과를 가르치고 담임을 하면서 상담 업무까지 한다. 벅차다는 생각이 들고 진로에 대해선 실은 기성세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육이 어렵다. 나는 그래서 우리가 100세 시대가 되었는데 평생 직장의 개념이 조금은 사라져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직업이 2개, 3개인 사람들도 있고 직종을 바꾸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30대 전후로 안정된 직장에 안착하지 않으면 루저가 되는 이 사회에선 아이도 그 부모도 모두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부모지만 내 아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지를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없는 직업에 내 아이가 종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금은 우리가 쉬어 가도 좋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다양한 경험을 천천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적이 들어가지 않으면 할 필요없다는 인식은 도덕성, 도전 정신을 약화시킨다. ⓒ Pixabay

 
자유 학기제를 도입한 취지는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사들 재교육시간도 너무 짧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너무 적은 상태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학교와 지역 사회를 연결하여 지역 사회의 회사나 다양한 직업들을 연결해 주는 진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가끔 공문을 보면 게임 회사나 언론 매체에서 진로탐방을 위해 신청 기한을 주는데 너무 빨리 마감이 되고 거리상 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교사도 모르는 직업이 많고 새로운 직업을 매번 공부할 수는 없다. 다양한 직업을 소개할 수 있도록 지역 사회 혹은 기업이 학생들에게 잠깐이라도 학생들이 그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매우 좋을 것 같다.

불가능하더라도 그 불가능함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아주 작은 가능성에라도 방향을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성적에 들어가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꿀 필요성도 느낀다. 성적에 들어가지 않으면 할 필요없다는 인식은 도덕성, 도전 정신을 약화시킨다. 성적에 들어가지 않기에 부담없이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해 볼 수 있는 시간인데 너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채찍질하는 사회가 많이 아쉽다.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②] 쉴 시간이 없다

둘째, 아이들의 삶에는 쉼이 없다.

"선생님 쉬고 싶어요."
"학교갔다가 학원을 갔다오면 11시가 넘어요. 눈을 뜨면 또 학교를 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퍼요."


임용고시를 3번이나 떨어지고 4번째 붙어서 학교에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교사를 선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고 첫 달은 매일 매일 강제 야근이었다. 학생 상담을 위해서 학교가 선택한 일이었는데, 집이 멀어서 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항상 오후 10시 30분이었다. 그리고 오전 7시에 집을 나서면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남들에 비해 퇴근이 빠를 수는 있지만, 내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1000명이 넘는다. 특히 아이들의 말을 듣다보면 내가 감정받이가 되어서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한다. 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너무 한정적이었고 아이들이 다치고 싸우고 그것을 조정하다보면 왜 이렇게 "죄송합니다"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지, 무엇이 미안한지도 모른 채 그 말을 되새겼다.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관계 조정을 못해 많이 울었고 이 길을 선택한 내가 너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 사이에서 휴식이 진정 필요했다. 방학이 오니 보충 수업을 준비해야 했고 일주일의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이게 나의 삶이었을까? 아니, 아이들의 삶이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집에 오면 TV도 보고 만화책도 보고 놀러도 다녔다. 나는 친구들과 악기도 배웠고 어머니와 드라마를 보면서 함께 욕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가 교사가 된 다음 아이들의 삶은 내가 살던 그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 지쳤고 도망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하루에 7시간을 수업을 듣고 학원을 가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종착지가 없다.

그러나 점점 학교가 바뀌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상담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다. 또 야간 자율학습이 폐지되면서 내 삶은 조금 더 달라졌다. 수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수업을 재미있다고 할 때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야간자율학습 대신 학원을 다니고 더욱더 경쟁이 몰려가고 있다. 이게 평생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지치고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끔찍하다고 느낀다. 쉬면 경쟁에 뒤처진다는데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우고 특별 교육을 한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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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스톡홀름스게이브 숲유치원 아이들이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다. ⓒ 김경년

 
교육은 놀이라고 한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북유럽의 숲 유치원은 그냥 자연에서 놀게 둔다고 한다. 그 안에서 빨리 뛰어 넘어지면 속도를 조절하여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우고 친구와 함께 노는 법을 배우고 또 갈등을 해결하는 법도 배운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어릴 때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나도 어릴 때 그렇게 자랐다. 놀이터에서 놀고 옆집 아주머니가 주는 밥을 먹고 친구들과 싸우고 화해하고.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쉼도 놀이도 없다. 직장 생활을 하는 어른들이 매번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왜 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쉼도 없는 삶을 강요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사회의 문제라면 어른들이 조금은 아이들에게 쉼을 주어도 되지 않을까? 오연호 대표의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속의 삶이 우리 모습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사회에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잘 쉬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③]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사는 삶

셋째, 부모가 아이의 삶을 대신 살고 있다.  

"부모님은 제 말을 듣지 않으세요. 저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데 저는 하기 싫은데 화만 내세요."
"선생님 저도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엄마가 늦잠 자서 저도 학교에 늦었어요."
"저희 엄마가 이렇게 해야한대요."


나는 고등학생을 가르친다. 이 아이들은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밥을 챙겨먹지도 않는다. 학교에 부모님이 데려다 주고 아이의 꿈도 정하신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내 미래 같아서 숨이 턱턱 막힌다.

일하는 엄마는 아침에 출근 준비로 바쁜데 아이를 깨워서 밥도 챙겨야 하고 퇴근하면 피곤한데 저녁 준비도 해야 한다. 또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 놓고 아이의 진로도 챙겨야 하고 친구 관계도 신경써야 한다.

나 신경 쓰기도 바쁜데 부모들은 자신의 삶에서 아이들까지 지고 살아가야 한다. 부모는 부모 대로 힘들고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힘들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혹여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감싸줘야 할 가족이 공감할 대상이 없다. 그래서 다들 힘들다고만 이야기한다.

"선생님 말씀은 좀 듣더라구요. 아이를 잘 설득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학부모의 전화를 받으면 나는 또 고민에 빠진다.

'이게 내가 설득한다고 되는 일인가. 내가 이 아이의 미래를 책임질 수도 없는데?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이 실패하면 회복 탄력성이 없는데...'

많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상담록에 적힌 아이가 부모님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다시 천천히 읽는다. 그리고 상담 선생님께 어떻게 해야할지 상담한다. 나도 이렇게 상담 선생님을 찾는데 상담 선생님은 몇 백명의 아이들을 살핀다. 그러다 이제 애초에 담임 소개를 할 때 내 교육철학을 밝힌다. '고등학생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담임'이라고.

물론 이상주의자라는 소리도 듣고 학부모의 호불호도 심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30대의 나도 이렇게 매번 시행착오를 겪고 매번 배운다. 그래서 조금 더 좋은 담임 교사로, 좋은 교과 교사로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도 이 과정을 겪고 있고 1년이 지나면 성장한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

조금 늦을 수 있지만 부모님이, 우리 학교 내에서, 사회에서 아이들이 실수해도 실패해도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실패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배울 수 있게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성인으로서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아닐까? 이상주의자같지만 이런 생각이 널리 공유된다면 그런 사회가 올 것이라 나는 믿고 오늘도 내 삶의 터전인 학교에서 열심히 살아간다.
#오연호 #학교 #교육 #우울증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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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에서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열심히 사는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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