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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 그립다? 총 든 송강호가 던진 '촌철살인'

[김유경의 영화만평] 데자뷔를 안기는 <마약왕>

18.12.26 14:37최종업데이트18.12.2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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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약왕>. ⓒ 하이브미디어코프

 
연말에 택한 영화가 <마약왕>이다. 송구영신 즈음에 하필 '뽕꾼' 된 송강호(이두삼 역)가 궁금하다니. 거의 들어찬 객석 귀퉁이에서 돈벼락에 목마른 범법자들을 만난다. 1970년대 '마약왕' 이황순 사건이 모티브로, 이두삼 캐릭터는 가공인물이다. 부하의 총탄에 맞아 사라진 희세의 독재자와 더불어 이두삼도 저문다. 거창하게 화무십일홍이라 곱씹을 것도 없는 욕망의 질주와 자멸이다.
 
그런데 대사 두엇이 영화관을 나와서도 거치적거린다. 뽕으로 정신이 거덜난 이두삼이 지푸라기라도 잡듯 한 말이다. "이 나라는 내가 다 먹여 살렸다 아이가." 수출 금자탑이 삶의 가치였던 70년대에 'Made In Korea(메이드 인 코리아)'로 돈을 긁어모았다는 자부심이다. 김정아(배두나 분)의 확신, "돈은 아무리 처먹어도 냄새 안 나"와 짝패인 천민 자본주의 현상이다. 지금 여기의 사법농단이나 삼성 바이오 분식회계도 그 뿌리는 매한가지다.
 
데자뷔를 일으키는 이두삼의 말이 또 있다. "나는 더 이상 짓밟히기 싫다." 마약왕이 되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뭇 조직이나 권력의 갖은 갑질이 넌더리 난다는 고백이다. 뒤로 큰돈을 상납하며 몰래 금전출납부를 작성했다가 여차하자 증거로 제시하는 이두삼 류는 2018년 매스컴에도 등장한다. 
 
송강호의 열연은 압권
 

영화 <마약왕>. ⓒ 하이브미디어코프


갑질 문화는 약육강식의 먹이 연쇄에 다름 아니다. <마약왕>의 캐릭터 중 관계의 사슬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열혈 검사 김인구(조정석 분)조차 인간 망종으로 전락한 뽕쟁이 이두환(김대명 분)처럼 자기가 속한 시공에서 무언가가 되어 가는 존재다. 차이라면, 떳떳한 주체로 살기 위해 깨어 있느냐의 여부다.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가 떠오른다.
 
<마약왕>의 일대기가 언짢다면, 너나없이 영혼과 똘레랑스(관용의 정신)를 챙겨 인간다움을 유지해야 한다. 위 시에서 한 구절을 따면, "보는 자는 보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여서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므로, 돼지는 다른 돼지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아내 성숙경(김소진 분)이 욕망에 절은 이두삼에게 등 돌리며 외친 돼지 운운은 악담이 아니라 충고다.

어쨌거나 <마약왕>의 뽕쟁이 연기는 일품이다. 마약중독자라 해도 음습한 기운을 내뿜으며 보스 자리를 지키는 조성강 역의 조우진이 우선 눈에 띈다. 아마도 얼마 전에 본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딴판인 이미지 탓이리라. 그와 달리 의처증을 보이며 난동 부리는 김대명(이두환 역)의 눈자위 풀린 연기도 인상적이다. 물론 정신줄이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어 육신이 거푸집처럼 보이는 송강호의 열연은 압권이다.
 
나는 그런 송강호를 보려다가 그만 대한민국 암흑기 1970년대에 풍덩 빠진 격이다. 절로 그 시절과 지금의 자본지배카르텔(재벌과 관료와 언론의 뭉침)을 비교한다. 지난 25일 성탄절에 굴뚝 농성 409일로 세계 최장 고공농성 기록을 경신한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소속 두 명이 먼저 생각난다. 유치원 3법은 표류 중이고, 사법개혁은 지지부진이다. 민심마저 가짜뉴스 극성에 휘둘리니 <마약왕> 때를 선뜻 비웃지 못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운행을 부추기다
 

영화 <마약왕>. ⓒ 하이브미디어코프


문재인 정부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내세운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갈 길이 먼 로드맵이다. 혁신은 차이를 다름으로 인정해 껴안는 풍토에서 가능하니 그렇다. 기본적으로 성정체성 시비는 불거지지 않는 똘레랑스의 열린 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를 누구도 아닌 자기 페이지에서 읽어내며 선의의 일꾼들을 지켜보는 기다림을 체화해야 한다.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면 괜찮다는 <마약왕>의 가치관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운행을 부추긴다. 촛불혁명 정신과 어긋나는 승자독식의 갑질 생태계로 되돌아가게 한다. 1970년대 고성장을 그리워하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SNS에서 기세등등한 지금, 마약왕의 거절 "나는 더 이상 짓밟히기 싫다"를 내가 응원하는 이유다.
마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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