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만난 스페인 아줌마 알고 보니

등록 2018.12.27 11:45수정 2019.01.02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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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차장에서 바라본 운해 ⓒ 정명희

 
바로셀로나공항에서 헬싱키공항으로
 

단체여행으로 스페인을 갔다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비행기는 바로셀로나에서 헬싱키로 가서 한번 갈아탄 후 인천으로 왔다. 사연은 먼저 스페인 헬싱키 구간에서의 만남 이야기다. 착석을 하고 보니 내 옆 좌석에는 스페인 아줌마가 앉았고 아줌마 옆은 아들인 것 같았다. 아들은 앉자마자 바로 수면 자세를 취했고 아줌마는 신문을 뒤적였다.

평범한 차림과 무엇보다 선한 눈빛이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한 언니와 닮아서 두 사람을 한번 대면 시켜주면 서로가 닮았음을 인정할까 상상하며 인사를 건넸다. 스페인에서는 환하게 웃으며 '올라!' 한마디만 건네면 거리의 반은 좁혀졌다. 믿거나 말거나.(웃음)


"올라?~"
"올라!~"


그녀는 일본에 간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본 어디 가냐고 하니 구마모토로 간다고 하였다. 나는 구마모토란 익숙한 지명에 반가움을 표하며 '곤니찌와(안녕하세요)'하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일본엔 무슨 일로? 물었더니 남편 만나러 간다고 하였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무슨 뜻이죠'의 반응을 보이니 남편이 일본 사람이라고 했다. 딸 둘은 각각 뉴욕과 에든버러에 살고 아들은 자신과 스페인 바스크에 남편은 구마모토에 산다고 하였다. 나는 가족이 동서남북 흩어져 사시는군요를 바디랭귀지로 추임새를 넣었다. 혹시 일본어를 하시냐고 물으니 조금 밖에 못하고 아들이 잘한다며 이따가 잠에서 깨면 물어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들이 깨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그녀의 영어와 나의 세 단어 영어로 소통하였다. 남편과는 젊은 날 이탈리아에서 만났고 지금은 자신이 일 년에 몇 번 일본에 가고 남편 또한 스페인에 온다고 하였다. 떨어져 사는 부부답지 않게 서로 간에 말할 수 없는 애정이 감지되었다. 그래서 농담하듯 물었다.

"이렇게 떨어져 살아도 애정에 문제없어요?"
"문제없어요. 호호~~"



얼마의 시간이 지난후 아들은 깼고, 세단어 영어로 물었던 말들을 다시 한번 아들을 통해 확인하였다. 추가로  이런저런 궁금증들을 묻고 대답하다 보니 착륙이 가까워졌다. 나는 스페인 아줌마에게  대화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이렇게 비행기 옆 좌석으로 만난 건 우연이고, 우연이지만 반가웠어요. 언젠가 다시 우연으로 만난다면 그땐 친구해요. 그러나 그런 날이 올 리가 없겠죠? 그러니 이 순간이 한번 더 반갑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악수해요, 호호~"
"호호~~ 나도 반가웠어요."


비행기가 착륙하고 스르르 서행을 할때 갑자기 또 호기심이 발동하여 마지막 질문을 하였다.

"실례지만, 이런 말 물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을 하시는지요?"
"갤러리를 합니다."
"어머~ 멋지네요."


혹시나 궁금할까 싶어 나는 뭐하는 사람 같냐고 물어보았다. 스페인 아줌마는 미술품 감정할 때와 같은 예리한 눈빛으로 한 5초쯤 보더니 말하였다.

"음... 사이컬러지스트?"
"엥? 뭐라고요?~~"


나는 웃으며 심리 근처에도 못가 본 거의 백수에다 나이 50에 책 한 권 겨우 내본 무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잠시나마 그런 추측만으로도 유쾌했고 비록 심리전문가는 아니지만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가방을 뒤지더니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명함의 작은 글씨 부분을 가리키며 '이건 주소고 이건 전화번호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어머머~~ 언젠가 제가 이곳을 방문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궁금하네요. 어떤 공간일지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네요."
  

비행기에서 바라본 태양 ⓒ 정명희

 
헬싱키에서 인천으로

스페인 아줌마와는 헬싱키 공항에서 작별하고 헬싱키 공항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두 번째 만남이 이어졌다. 유학생인 듯한 옆자리 학생은 앉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미드를 보는데 '킬리언 머피'라는 익숙한 배우가 보였다.

킬리언 머피를 보니 <엔트로포이드>(2018) 예고편에서 보았던 장면이 보이는 듯해서 혹시 <엔트로포이드>냐고 묻다가 얘기는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3~4시간 영화에 대한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학생의 말에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이 언급되기에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냐고 하니 그건 아니고 킬리언 머피를 좋아하다 보니 역순으로 그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고. 학생은 20대 중반이고 난 50대인데 서너 개 빼고는 영화들이 모두 겹쳐짐에 놀랐다.

무엇을 전공하느냐고 하니  미술 전공이라고 하였다. 교수가 날마다 '창의', '창의' 해서 그 끝없는 창의적 발상에 대한 요구가 힘들다 했다. 나라면 있던 창의도 달아날 것이건만 버티며 과제를 수행하는 학생이 믿음직스러웠다. 마침 미술 전공이라 하니 좀 전에 받았던 명함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막연히 작고 아담한 미술관을 하시겠지 했다가 왠지 크면 어떡하지? 하며 놀란 눈빛으로 웃었다.

이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의자 등받이의 모니터로 영화를 보고, 잠을 자고, 또 밥을 먹고 장장 9시간의 대단원의 막을 내릴 즈음 무슨 말 끝엔가 올해 가장 괜찮은 영화가 뭐였냐고 하니 학생은 거침없이 <콜 미 바이 유어네임>이라고 하였다.

"뭐라고? 나 '콜미...'에 대하여 할말 많아요. 지금 트렁크에 바로셀로나 서점에서 산 스페인어판 '콜미...' 원작있어요. 한국어판 제목은 <그해, 여름손님>인데 마음 같아선 사주고 싶은데 사줄 수가 없네요. 2020년에 속편이 나온다 해요. 때문에 원작의 마지막 장은 남겨두었대요. 속편에 쓰려고. 그런데 그 마지막장이 제일 명문이었던 거 같아요. 미리 읽고 상상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그런데 아줌마는 이름이 뭐예요?"

내 이름을 말했더니 학생은 풋~ 웃었다.

"우리엄마 이름도 명희예요. 우리엄마랑 이름 같은 사람 처음 봐요. 호호~"
"나이로 보나 이름으로 보나 엄마라고 생각해요. 후후~ 그런 의미에서 전화번호 물어도 될까요?  혹시 아나요? 학생이 10년 후 저 바스크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게 될지?"


학생은 긴 숫자의 독일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그렇게 경유 비행기 안에서 두 번의 스치는 인연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며칠 후였다. 돋보기를 쓰고 스페인 아줌마가 준 명함의 주소를 읽어보다 요새 뭐든 두드리면 다 나오는 유투브에 갤러리 이름을 쳐보았다.

별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무심히 쳐본 것인데 며칠 전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스페인 아줌마가 며칠 전의 평범한 의상과는 다른 전문가 포스의 복장과 설명으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갤러리는 유학생이랑 내가 자그마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컸고 작품들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조만간 비행기에서 만난 독일 유학생에게 문자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학생, 학생 깜짝 놀랄 일이야! 유투브에서 스페인아줌마를 봤어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갤러리가 크고 작품도 대단한 거 같아요. 스페인 갈거라 했는데 스페인 가면 이곳 들러보면 나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가서 인증샷 오케이?'

하여간 이 만남인 듯 만남 아닌 만남 같은 만남이 스침으로 끝날지 한 번 더 후속이야기를 만들지 궁금하다. 호구조사는 했고 이제는 스페인 아줌마의 생각이, 사상이 궁금해졌다. 그러려면 내가 스페인어나 영어를 '다다다다' 해야 되는데 에효..그게 문제네. 난감이로다.(웃음 )

문득 이 모든 것은 다 스마트 폰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 폰은 없던 인연도 만들어줄 수 있구나 싶었다.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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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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