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농사도 돈이 되어야 할 수 있다

도시청년, 밭을 경영하다 '작고 강한 농업'

등록 2018.12.27 12:50수정 2018.12.2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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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귀농을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귀농 관련 단체와 농촌 지자체의 귀농교육을 몇 군데 다닌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지역의 인구수를 늘리기 위해서 귀농인을 유인하려는 다양한 정착금(대출)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마이크를 잡은 공무원이 전입신고를 하고 가면 자신이 책임지고 정착을 돕겠다며 위장전입을 유도하기도 했다.

귀농교육을 다니다보면 다양한 사정으로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정착금의 액수와 혜택을 비교하느라 여러 지역을 다니고 있었다. 농사의 목적이 아니라 개발을 염두에 두고 땅을 구입하러 다니는 부자도 만날 수 있었다.


귀농지원금, 양날의 칼

어느 지역에서 만난 귀농인은 자신의 처지를 말하면서 절대로 지자체의 말을 믿지 말라고 했다. 귀농교육을 받은 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왔더니, 정착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아니라서 눈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다행히 지역의 농장에서 숙식을 하며 월급을 받는 일자리가 생겨서 농사를 배우며 일하고 있지만 귀농정책에 불신을 갖고 있었다.
  

작고 강한 농업 ⓒ 눌와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의 농업정책과 농민들의 어려운 현실은 한국과 닮은 점들이 있다. 일본정부의 통계자료에는 10년이 안 된 농민의 70%는 최저생활도 못하는 생계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한다. 농업을 포기하는 농민들이 늘어나자 일본정부는 귀농하는 청년들에게 다양한 혜택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일본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청년이 어느날 갑자기 귀농을 한다. 농사연수생으로 시작하여 좌충우돌, 고군분투 하면서 7년간 홀로 농사를 짓다가 지금은 일곱명의 직원과 함께 유기농업을 한다. 15년의 농사경험과 농민으로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담은 책 <작고 강한 농업>을 읽으면서 모든 나라의 농민(소농)들 현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받을 수 있는 것은 받는 편이 좋지만 그 때문에 취농 장소나 방법을 제한해서야 앞뒤가 바뀐 셈입니다. 꿈을 위해 지원금이 있는 것이지 지원금을 위해 꿈이 있는 게 아닙니다. 연 150만 엔 정도의 '푼돈' 때문에 큰 목표가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했으면 합니다. 저 또한 취농 당시 돈 때문에 흔들린 경험이 있어 하는 충고입니다." - 본문중에서

공산품처럼 규격화된 농산물

그가 유기농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먹을거리와 삶의 방식의 변화와 같은 추상적인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자연농업에도 관심을 가져보고, 유기농업 1세대의 철학을 존중한다.

그러나 생산성을 외면하는 것은 생계곤란과 지속가능한 농부의 삶은 아니라고 봤다. 유기농을 한다는 자부심은 현실에서는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청년농부로 놀림을 받기도 한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나의 농장에서도 친환경 학교급식으로 납품하는 양파의 무게는 180g 이상만 매입한다. 크기는 최소한 야구공만 해서 친환경 농업정책도 농산물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시장논리가 적용된다.

신념을 갖고 친환경농업을 하는 농민은 시장의 요구를 따라가지 않으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유기농인증이 줄어들고 화학비료를 사용할 수 있는 무농약인증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저에게는 이념이었던 유기농이 현장에서는 규격이었습니다. 밭은 곧 공장이었습니다. 채소 재배에 목가적인 낭만을 꿈꾸고 있었던 저로서는 크게 놀랄 일이었습니다. 동시에 큰 사업으로 나아가려면 이런 방향도 좋지만 신규 진입자들이 기존의 회사들을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 본문중에서
 
시장과 타협하지 않는 직거래

농사를 잘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판매를 못하면 농사를 잘 짓는 것은 소용이 없다. 농산물 유통시장은 편리함은 있지만, 규격을 맞춰야 하고 생산자로서 가격결정권이 없다. 시장이 원하는 대로 똑같은 공산품처럼 만들어야 하고, 유통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

그는 농민에게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농산물 유통시장을 거부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를 하는 '꾸러미'로 판로를 개척한다. 한국에서도 익숙한 농산물 직거래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신뢰 하는 관계에서 농민에게는 정당한 가격을 주고, 소비자는 안전한 농산물을 받아보는 판매 방식이다.

처음은 다 그렇듯이, 친척과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시작된 직거래는 입소문을 타고 확장된다. IT기술(컴퓨터,SNS)을 적극 활용하고, 발품을 팔아가면서 얼굴을 대면하는 소통으로 판로를 개척한다.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고생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작물의 맛과 신선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연환경과의 연관성을 관찰하고 재배기술을 연구한다. 작물의 상태가 좋거나 나쁘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하지 않고 과대포장을 하지 않아야 직거래의 관계가 오래 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제가 생각하는 생산자와 고객의 밀접한 관계는 채소 꾸러미에 얼굴 사진이 실려 있는 것도 IC태그로 재배 공정을 추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좋든 나쁘든 채소 너머에 그것을 재배한 사람이 보이는 것입니다." - 본문중에서

그는 '농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주변의 냉소를 이겨내고, 농사로 생활을 할 수 있는 30%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농사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70%의 경계에 가까이 있음을 고백하면서도 밭에 서면 흥분이 되는 파머스하이(farmers high)라고 한다.
 
"저는 몸으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충실감을 농업과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루가 끝나고 '아아, 오늘도 일이 잘됐네' 하는 만족감과 함께 밭에서 풍요로운 바람을 쐽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때입니다. 이게 바로 농사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 본문중에서

작고 강한 농업 - 도시청년, 밭을 경영하다

히사마쓰 다쓰오 지음, 고재운 옮김,
눌와, 2016


#농사 #유기농 #꾸러미 #직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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