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랑 놀 수 있어요?' 듣고 눈물 흘린 보육교사

어린이집 교사들이 이야기하는 어린이집 문제 이야기

등록 2018.12.28 09:54수정 2018.12.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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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교사인 손여울씨가 아이에게 받은 손편지 ⓒ 손여울


'어린이집'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아마 많은 분이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릴 겁니다. '비리', '부실급식', '아동학대' 등 요즘 뉴스에 나오는 단어들이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숱한 논란 속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집 교사들의 현실은 어떨까요? 어린이, 학부모, 원장과 직접적으로 일하며 여러 문제의 현장에 있지만 높은 노동 강도와 비정규직 처우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이집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사회적 차별은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한 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동학대 교사는 전체 교사의 0.28%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99.72%의 교사들은 잠재적 아동학대범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한 어린이집 교사는 지인에게 "너는 애 안 때리냐?"라는 농담 섞인 질문을 받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너 빨래 잘하겠다." 어린이집 교사가 된 한 친구가 들은 말입니다. 어린이집 교사를 애들 빨래하고, 똥 기저귀 갈아주고, 뒤치다꺼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은 그냥 애들 잘 놀아주고 엄마·아빠 오는 시간에 보내면 되는 거 아냐?'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 '애를 안 키워봤는데 잘할 수 있나?', '나이도 어린데 애들 제대로 볼 수나 있겠어?'라며 교사를 무시하는 사람 등 유아교육에 대해 다소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린이집 교사 4년차인 손여울씨는 이러한 인식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아이들을 돌봐주는 '보모'가 아니에요. 이 아이들이 좀 더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업무에요. 그렇기 때문에 영·유아 교사를 보모로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지길 바랍니다."

영·유아 교사는 퇴근 안 해요?


2018년 7월부터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영·유아 교사들도 휴게시간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독박 육아를 해 본 사람은 잘 알겁니다. 오전 내내 아이와 씨름하고 지쳤을 때 낮잠 자는 아이를 눕혀놓고 1시간 정도 쉰 후 다시 아이를 본다면 훨씬 더 즐겁게 육아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유아 교사들은 하루 종일 여러 명의 아이들과 생활합니다. 즉 영·유아 교사의 휴게시간은 단순히 휴식 문제가 아닌 아이들의 안전과 보육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입니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영·유아 교사들은 휴게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경력 7년차 교사인 이세리씨는 대다수 어린이집은 휴게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부분의 영·유아 교사들은 휴게시간에 행정업무 및 밀린 업무를 하고 있어요. 휴게시간에 아이들이 깨거나 울까봐 교실을 떠나지 못하고 쉬고 있다는 교사도 있는데, 그건 휴게시간이 아니잖아요. 심지어 가짜로 휴게시간을 기록하거나 원장님의 눈치가 보여 휴게시간을 사용하지 않는 곳도 많다고 해요." 

정부는 보육교사의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보조교사 6000명을 추가로 배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낮잠 시간이 없는 유아반이나 규모가 작은 어린이집은 보조교사가 배치되더라도 휴게시간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렵고 담임교사 없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나 위험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책이 여전히 없는 실정입니다.
 

선생님을 놀라게 하려고 박스에 숨은 아이 ⓒ 방현

 
"선생님! 미세먼지서류 양식을 좀 고쳐야겠어. 내가 오늘 연합회에 다녀왔는데 이게 훨씬 좋은 것 같아." 영·유아 교사들의 업무 서류를 간소화하자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하지만 간소화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 교사는 미세먼지 수치를 기록하고 매일 실외활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를 기록하는 서류를 만듭니다. 지난 경주·포항 지진으로 안전교육 관련 서류가 추가되었습니다.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나면 육아종합지원센터나 구청에서 교사들을 불러 긴급교육을 진행하고, 교사들은 이미 들은 내용을 다시 듣고 교사연수 서류를 또 만들어야 합니다. 심지어 휴게시간이 주어졌는데 휴게시간 서류도 만들라고 합니다. 경력 4년차 교사인 방현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은 과다한 서류 업무에 교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어요. 그때 한 아이가 다가와 물었어요. '선생님 오늘 우리랑 놀 수 있어요?' 사실 이 질문은 아이가 해야 하는 질문이 아니라 보육교사인 제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고 바른길로 이끌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인데 하루도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는 내가 그 순간 너무 미워 눈물이 났어요." 

어린이집 CCTV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지난 11월 어린이집 공론장에서 주제 발표중인 어린이집 교사 이재필씨 ⓒ 홍명근

 
전국 어린이집·유치원 교사를 모두 합치면 약 38만 4025명입니다(2017 보육통계, 2018 교육통계). 그리고 2017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건수는 848건(명)이라고 합니다(2017. 전국아동학대 현황. 통계청). 전체 교사의 0.25%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0.25%의 비율로 인해 어린이집이 아동학대기관으로 오해받아 CCTV 설치가 의무화되었습니다. 교사 경력 5년의 전 보육교사 이재필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이집 CCTV 설치는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가 100% 발생한다고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있는거 같아요. 물론 어린이집의 CCTV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것이지만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게 하는 속임수로서 작용할 수 있어요. 어린이집 CCTV를 통해 자극적인 모습만 보이고 있지 않나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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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교사 이대로 괜찮을까요? 영유아 교사들과 시민들이 선택한 어린이집 문제 해결 방안은? ⓒ 바꿈세상을바꾸는꿈

 
지난달 24일 '바꿈세상이바꾸는꿈'과 '영유아교사에관하여'가 공동 주최한 "영·유아 교사 이대로 괜찮을까요?"에 참여한 100여 명의 어린이집 교사, 관계자, 일반시민들은 다양한 문제를 토론하였습니다. 앞서 제시된 이야기 이외에도 근무 중 핸드폰을 걷어가는 문제, 과도한 행사와 공모전, 빈번한 주말 근무와 추가근무 수당이 지급 안 되는 문제 등도 논의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아동 대비 교사 비율 높이기 ▲시스템의 일원화, 전국적인 서류 양식 일원화 ▲보육교사 대변할 단체 혹은 협의회 필요 ▲돌봄노동과 행정업무의 분업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늘릴 필요 ▲보육교사 대변 단체를 통한 언론 홍보 ▲문제행동(학대와 훈육사이)에 관한 기준과 매뉴얼 필요 ▲어린이집 원장의 조직문화 및 리더십 교육 강화 ▲보육교사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통창구 필요 ▲관할부처 일원화를 통한 영·유아 교사 자격요건 강화 등 어린이집 교사 처우 개선,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서류 및 행정 감소 등을 주요 대안으로 선택했습니다.

특히 30만 명 넘는 어린이집 교사들이 있음에도 이들을 대변하거나 대표할 단체나 협의회가 없다는 점은 큰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어린이집 문제에 입장을 내기 어렵고 개선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한 어린이집 교사는 "어린이집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교사는 그냥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에요, 문제를 알려내고 해법을 찾기 위해 모두 함께 힘을 모을 필요가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2019년에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정치·사회적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바꿈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어린이집 #영유아 #노동 #사회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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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바꿈세상을바꾸는꿈,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그리고 지금은 한반도평화경제포럼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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