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나눠 내는 게 쩨쩨해? 좋기만 하던데

[도쿄 옥탑방 일기 10화] 내가 먹은 만큼 내는 '와리깡문화'

등록 2018.12.30 15:51수정 2018.12.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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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선 직장생활 못 하겠다고 했던 후배 이야기

한 20년도 더 지난 옛날 얘기다. 그땐 대전서 살았는데, 한 후배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옮겼다가 몇 달 다니다 말고 갑자기 다시 내려왔다.

당연히 '왜 다시 내려왔냐'고 물었고, 그의 이야기가 이러했다.

"서울에 갔더니 말예요, 회사 사람들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면 다 먹고 난 다음에 카운터 앞에 일제히 한 줄로 서서 차례로 자기가 먹은 것만 자기가 내고 나가는 거예요. 이거, 남사스러워서 원. 난 그렇게 쩨쩨한 놈들 하고는 일 못하겠더라구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물론 그가 내려온 게 정말 그것 때문일 거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게 나름 충격이었는지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하긴 당시만 해도 직장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면 대부분 그중 가장 윗 선배가 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식사가 끝나면 선배는 재빨리 일어나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했고, 후배들은 식당 밖에서 기다렸다가 계산하고 나오는 선배에게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정말 하루이틀도 아니고.

또 친구들하고 밥이나 술을 먹어도 '오늘은 내가 낼 테니 내일은 네가 내라'는 식으로 한 사람이 계산했다. 나눠서 내는 일은 절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장 사람들하고 밥을 먹는다고 치면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후배들은 한달 내내 점심값이 하나도 안들 수도 있지만, 선배들은 점심시간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다. 속으로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 돈이 다 어디서 나오나 궁금하기도 했다.

후배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그래서일 거다. 자기가 먹은 거 자기가 내는 시스템이 오히려 당연한데 그게 왜 화를 낼 일인가 생각했던 것 같다. 오히려 돈도 없으면서 선배라는 이유로 있는 척하며 남의 식사비, 술값까지 다 내주는 게 위선 아닐까.

아무튼, 그렇게 낯설던 이른바 '더치페이' 문화가 이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아가고 있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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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한 번화가에서 직장인들이 회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 김경년

 
자기 먹은 것은 자기 내는 일본의 '와리깡 문화'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편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더치페이', 즉 '와리깡(割り勘)' 문화다. 와리깡이라고 하면 한국 사회에선 어음할인, 수표할인 아니면 시장에서 물건값을 깎아준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본래 사전적으로는 '자기부담'이라는 뜻이다.

밥을 먹어도 술을 먹어도 2인 이상이면 무조건 돈을 사람 수만큼 나눠낸다. 1엔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서 나누는 게 원칙이다.

스마트폰 앱스토어에 가면, 복잡한 계산을 간단하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와리깡 앱'이 수십 개 있을 정도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모임이 끝나고 계산서가 나오면 테이블 위에 10엔짜리, 1엔짜리 동전을 올려놓고 여럿이서 동전을 세서 나누는 진풍경을 낳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밥을 먹으면서 이번엔 내가 내야 하나, 그럼 돈은 있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카운터 앞에서 서로 내가 내겠다고 나서는 어색한 장면을 연출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먹은 만큼만 내면 된다.

직장 회식에서도 회사 비용으로 계산하는 1차 회식이 끝나고 2차라도 가면 그때부턴 와리깡으로 간다.

여기서 오래 산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와리깡 문화'의 전통은 오래 전부터 상업이 발전한 일본 사회의 철저한 상인정신을 바탕으로 한다고 한다. 그 덕분에 오늘의 경제대국 일본이 있을 수 있었단다. 한 마디로 공짜는 없다는 정신이다.

물론 이런 문화가 항상 좋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이달 초 20대의 일본인 친구와 함께 교토여행을 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자기가 먹은 음식값은 자기가 내는 식으로 따로따로 계산했다.

아름다운 대나무숲으로 유명한 마지막 목적지 아라시야마에 갔을 때였다. 역 구내에서 이 친구가 사라져 두리번두리번 하고 있는데 멀리서 손에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입에 뭘 씹고 있길래 물어보니 지역 명산품이라면서도 하나 먹어보란 말도 없이 천연덕스럽게 혼자 다 먹어버렸다. 일본 문화가 원래 그러니 이해해야지 하고 말았지만, 뒷맛은 그리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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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뒷골목 술집 앞에서 한 직장인이 선 채로 맥주를 마시고 있다. ⓒ 김경년

 
일본인들은 다 나눠낸다고 하던데...

서울에서 일본어 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 생각난다. 월말이 되면 수업 뒤풀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 수강생이 많은 도심 학원의 특성상 학생들의 나이가 많고 일본인인 선생님의 나이가 젊은 게 보통이었다.

일본에서 학교를 나온 뒤 서울에 온 지 얼마 안되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이랑 꼭 와리깡을 해서 균등하게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오래 한 선생님은 학생들이 돈을 지불할 때 지갑을 꺼낼 생각도 않고 '잘 먹었다'며 나가는 것이다. 무조건 선배들이 돈을 내는 한국 문화를 간파했거나 익숙해졌거나 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일본 사람들은 다 나눠낸다고 하던데...' 하면서도 찜찜하게 돈을 냈다. 어쩌랴, 다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가르쳐놓은 것을.
덧붙이는 글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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