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새해, 학벌로 어찌어찌 해보려다 말았네

등록 2018.12.30 17:48수정 2018.12.3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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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새해 초가 되면 이것 저것 결심을 한다. 작년 이맘 때 방송 통신대학교를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정규 4년제인 사범대학을 나와서 교편을 잡다가 현재 요리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일에 대한 욕심이 커지며 이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름 있는 대학원의 식품영양학 석사를 받으려고 하니 영양사 자격을 취득한 학사출신만 대학원을 진학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시 대학교를 입학할 수도 없고 난감했다.

알아보니 전문대를 다니거나 방통대를 등록하는 방법이 있었다. 방통대3학년 식영과 편입은 관련학부 평점이 있어야 한단다. 사대 출신인 나는 2학년부터 입학하여야 하고 3년을 방통대로 공부하고 영양사 시험을 통과해야 최종목표인 대학원 입학조건이 갖추어진다. 참 험난하다.

하지만 최종학력만 좋으면 그만이니 뭔가 해야만 할 것 같다는 마음에 원서를 부랴부랴 넣고 입학금 36만 원을 입금하였다. 인터넷으로 수강신청을 하니 대학교 시설 추억까지 생각나며 설레기까지 했다.

남편이 내가 공부하는 것은 좋은데 왜 그렇게 까지 해서 대학원을 가야되냐고 물었다. '지금 내가 내세울 만한 프로필이 없으니까 뭔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대학원 정도 학벌이 있어야 강의가 설득력 있지 않겠냐'며 내 큰 뜻을 모르는거 같아 답답했다. 남편은 재차 학벌 있고 권위 있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는 본인은 절대 신뢰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며 '공부하는 이유가 그런 것뿐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했다.

갑자기 입이 다물어졌다. 나는 왜 학벌이 갖고 싶을까?


2000년 IMF 외환위기 시절 나는 고3이였다. 이름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되 졸업 후에도 진로가 딱 떨어지는 좋은 과도 들어가야 된다는 압박감이 컸다.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자면서 엉덩이로 악착같이 공부하였다. 아무리 괴로워도 대학이 모든 것을 보상해 줄꺼라 믿고 좋은 시절을 견뎠다.

하지만 내 수능성적은 고만 고만한 4년제 대학에서도 어른들이 말하는 별 볼일 없는 과를 진학할 정도였다. 그래서 부모님의 권유로 전문 대학교 간호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되고 싶은 것이 없었고 그냥 무작정 잘 살고 싶어서 공부한 것이기 때문에 나도 별다른 생각없이 간호과를 선택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이다. '내가 이까짓 전문대 간호과를 다니려고 거의 고문 수준으로 공부하고 잘난척 하고 살았나... 고등학교 시설 내내 4~5시간 자면서 공부한 댓가가 겨우 이정도인가...'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고 내가 참고 참으며 보냈던 시절의 끝은 꿈꾸던 봄이 아니라 계절도 없는 암흑과도 같은 시공간이라 느껴졌다. 인생을 좌절했고 부끄러웠고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전문대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누구는 인생에 가장 빛날 20살에 분노와 좌절 그리고 원망속에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재수를 했고 다시 전문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전문대에 입학했다. 그 일은 큰 실패감으로 나에게 학벌에 대한 욕망과 좌절을 안겨줬다.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었던 것도 없었던 주제에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넘쳤다. 그래서 학벌은 성공과 행복의 지름길이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여전히 같은 생각으로 학벌이 내 앞날을 밝혀 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의 왜곡된 결핍은 내가 바라는 것이 어디서 오는 욕망인지를 알게 해주었고 지금 나의 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인 것 같아 부끄러웠다.

다음날 아침 귀찮은 짓을 했다면 툴툴거리며 우체국에 가서 입학 취소서류를 보냈다. 한편으로 피곤했을 앞날을 비켜가게 해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에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남편은 잘했다고 하면서 방통대는 엄청나게 돈 벌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하긴 방통대에서 공부 시작했다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졸업했다는 사람은 내 주위에도 거의 없다. 

앞으로 대학들의 입학경쟁으로 난리가 나겠지만 늘 그것을 보고 있으면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입시 #새해 #학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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