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입시에 도전하는 AI, 그 의미심장한 결론

[잡식성 책사냥꾼] 아라이 노리코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등록 2019.01.01 18:49수정 2019.01.0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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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표지 ⓒ 해냄출판사

  
2011년, 아라이 노리코 교수가 지휘하는 연구팀은 도쿄대 입시에 도전하는 AI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시점, 아라이 교수는 잠정 결론에 도달한다. AI는 도쿄대에 합격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시한이 4년이나 남아 있는 지금, 상위권 대학교에 입학할 실력을 이미 갖추었다. 메이지 대학 등 소위 'MARCH'라고 불리는 5개 대학교에 충분히 합격할 만한 성적을 낸다는 것인데, 이는 AI가 전체 입시생의 80%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는 말이다.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은 두 가지 중요한 주장을 담고 있다. 첫째, 인공지능은 수학적 한계로 인해 특이점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은 교과서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직업을 빼앗아 갈 것이다.


그동안 읽은 인공지능에 관련한 여남은 권의 책 중에서도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인공지능에 대한 다소 냉엄한 평가가 독특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뜻 보면 서로를 반박하는 듯한 두 개의 논점이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두 가지 중요한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자.

특이점은 오지 않는다
 

우리 집 AI 스피커는 창고에 잠들어 있다. 왜냐고?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 싫증이 났다. ⓒ 이용준

 
구글의 인공지능 개발을 총괄하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이 스스로를 무한히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소위 '특이점'이 2047년경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때가 되면, 인간은 인공지능과 결합해 상위의 존재로 거듭날 것이라고 한다. <호모 데우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말하듯, 우리는 정보 처리의 극대화를 통해 신의 영역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레이 커즈와일의 책 <마음의 탄생>을 보면, 현재의 딥러닝 기술은 뇌를 흉내 내는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구현한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뇌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또 다른 반박은 물론 원리가 아닌 기능의 복제에 관한 명제다. 원리가 달라도 같은 기능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열기구는 새와 같은 날개가 없지만, 하늘을 난다.

인간 뇌의 기억 용량은 약 2.5 페타바이트라고 한다. 내 컴퓨터의 하드디스크가 2테라바이트이니, 천 배가 넘는 용량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넘사벽'일까? 무어의 법칙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이 차이는 곧 메워질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을까?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정말 현실이 될까?

IBM 왓슨은 퀴즈쇼 <제퍼디!>에서 역대 최고 점수 우승자 두 명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런 형식의 문제, 즉 팩토이드(factoid)에 대한 효과적인 해법은 이미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IBM 연구진은 기존의 알고리즘을 보완하고 발전시킨 것이지, 새로운 것을 고안해낸 것이 아니다. 팩토이드를 푸는 방법은 구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데이터베이스의 양과 질, 그리고 검색 방법과 속도의 최적화가 중요하다.


애플의 인공지능 시리에게 주변에 있는 '맛없는' 이탈리아 식당을 물어보라. 주변에 있는 '맛있는' 이탈리아 식당을 물어보았을 때와 같은 답을 내놓을 것이다. 통계에 기반한 알고리즘은 그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 유튜브를 검색하면, 왓슨의 개발 초기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문제는 '가장 많이 사용된 유제품이 아닌(non-dairy) 커피 첨가제'였고, 답은 '커피메이트'였다. 왓슨은 호기롭게 버저를 누르고, '우유'라고 대답한다. 부정 표현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시리와 비슷하다.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는 결국 수식이라는 언어로 표현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수학은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을 수식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을 소프트웨어의 형태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컴퓨터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수학의 한계다. 그래서 특이점은 적어도 당분간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결론 내린다. 여기서 당분간이란 우리 자식 세대가 죽을 때까지를 포괄한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점성술을 이용해 날씨를 예측하려 했다고 한다. 해, 달, 별, 구름이 모두 천구에 위치한다고 생각했기에, 이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천구의 변화, 즉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학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빅데이터를 통해 AI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오늘날 사람들의 믿음이 이와 마찬가지 아니냐고, 저자는 묻는다.

이것만으로도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더해 한 가지를 더 지적한다. 인간이 어찌어찌해서 뇌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뇌의 기능을 흉내 내는 기계를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때조차도 인공지능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면서 특이점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 소프트웨어의 필수 요소인 목적이나 제약 조건이 인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대열의 책 <지능의 탄생>의 결론, 즉 인공지능은 인간의 대리인에 불과하므로 인간을 위협할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일자리를 빼앗는다
 

대롱으로 콩을 쏘아 창문을 두들겨 잠을 깨워주던 직업. 'knocker-upper'라고 불렸다고 한다. ⓒ pinpple.com

 
특이점은커녕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 즉 일반적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수준의 인공지능도 가능하지 않다면 우리는 안심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햄버거 가게에서 디지털 키오스크를 통해서만 주문을 한다.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직업은 곧 사라질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최저임금 상승의 결과라 말하지만, 기술 발전에 의한 자연스러운 도태 아닐까?

자명종이 발명되기 전, 유럽에는 사람을 깨워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한다. 창문을 두드리거나 작은 콩 따위를 던져서 잠을 깨워주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당시에는, 장시간 노동자를 위해 공장에서 대중소설을 읽어주는 직업도 있었다고 한다. 오르골과 축음기의 발명으로 이 직업은 없어졌다. 옛날이야기만은 아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타자수라는 직업이 있었다.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 말하는 낙관론자들도 많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밀려 실업자가 되는 사람들은 새 직업에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애고, 소득의 감소가 지출과 투자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공황이 발생할 것이다. 인공지능발 경제공황은 2008년 금융위기나 심지어 1929년 대공황조차도 능가하는 파멸적인 재앙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컴퓨터가 잘하는 것은 특정한 틀에 맞추어진 문제를 푸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으려면 일반적인 문제 해결 능력, 즉 종합적 사고력을 배양해야 하는데, 틀에 박힌 주입식 교육은 그 반대를 하고 있다고 저자는 개탄한다. 수학 문제를 공식에 맞추어 푸는 것은 당연히 컴퓨터가 월등히 빠르다. '해답을 찾는 요령'이라는 것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기술인데, 아직도 학교에서는 이걸 가르친다.

저자는 독해를 6개 영역으로 세분해 인공 지능에게 풀이를 가르쳤다. 인공 지능은 문법적 구조와 관련한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으나, 추론 및 내용 동일성 파악을 어려워했다. 따라서, 이들 영역에서는 앞으로도 인간이 인공 지능에 대해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공지능이 풀었던 독해 문제를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풀게 한 결과가 암담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인공지능이 어려워 하는 영역은 물론, 인공지능이 쉽게 해결하는 영역에서조차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많은 수의 학생들이 미래는커녕 현재의 인공 지능보다도 독해를 못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이 어른이 된다고 해서 독해력이 갑자기 좋아질까? 저자는 한 기자와의 일화를 소개한다. 학생들이 OX 문제에서 57%의 정답률을 기록한 것이 걱정이라고 말하는 저자에게, 기자는 평균 57%라면 꽤 준수한 성적 아니냐고 반문한 것이다. OX 문제는 찍어도 정답률 50%가 확보된다. 어떻게 57%가 준수한 성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독해력이 컴퓨터 수준도 되지 못하는 학생이 어른이 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례다.

이쯤되면, 인공 지능 때문에 직업 안정성이 위협받는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도 못 된다. 인공 지능은 독해력의 특정 영역에 대해서 약점을 보이지만, 인간의 경우 오히려 독해력의 모든 영역에 대해 미흡한 모습을 보인다. 이 결과를 보고도 현재 교육을 그냥 둘 수 있을까? 저자의 결론은 명확하다. 주입식 암기 교육을 지양하고, 독해력을 길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은 문자로 기록되고 전파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에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는 일은 중요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언제 어디서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된 그 지식을 이해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식에 대한 접근이 공평해졌다고 해서,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까지 평준화된 것은 아니다. 학교 교육이 주입식 암기 교육에서 벗어나 독해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인공 지능이 특이점을 돌파하든 못 하든 마찬가지다.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 인공지능 시대를 위한 교육 혁명

아라이 노리코 지음, 김정환 옮김, 정지훈 감수,
해냄, 2018


#잡식성 책사냥꾼 #아라이 노리코 #<대학에 가는 AI> #인공지능 #독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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