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와 석유 없이 살던 부부, 아이 태어나자 벌어진 일

[서평] 하얼과 페달 '안녕, 동백숲 작은 집'... 생태적인 삶을 향한 아름다운 도전

등록 2019.01.05 20:23수정 2019.01.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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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1997년에 닥친 IMF 외환위기는 달라진 세상살이에 적응할 것을 강요했다. 근본적으로는 잠깐의 불편도 허락하지 않고, 돈을 소비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콘크리트 도시의 삶에 회의를 느꼈다. 그때마다, 인적이 드문 시골로 들어가 농사 지으며 책을 읽고 글쓰는 삶을 동경했었다. 그 후로, 농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6년 전 전북 완주에서였다. 적정기술을 이용한 난로를 만드는 행사장에서 젊은 부부를 스치듯이 만난 적이 있다. 옷차림부터 말하는 것까지 평범한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나무를 깎아서 숟가락을 만들어 경제활동을 하지만 통장의 잔고가 0원일 때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다.
      
기차에서 내려 숲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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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동백숲 작은 집> 표지 ⓒ 열매하나

 
"2011년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맹렬히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너무 빠르게 달려서 속도감조차 느낄 수 없는 기차였다. 처음에는 기차를 세워보려고 노력해 봤다. 조금 느리게 가자고 부탁하거나 잠깐 쉬었다 가자고 설득도 해 본 것 같다. 간혹 성과도 보였지만 기차는 여전히 멈출 줄 몰랐다.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고 우리는 조용히 기차에서 내렸다." 

마을과 떨어진 숲속의 작은 집에서 전기와 가스, 수도뿐만 아니라, 흔적(쓰레기)을 남기지 않는 의식주 생활이 어떻게 가능할까?


책 <안녕, 동백숲 작은 집> 저자들은 좋아했던 고기는 기억 속으로 사라졌고, 텃밭 농사로 지은 채소와 숲속의 풀(나물)을 반찬으로 삼는다. 주워온 나무에 성냥불로 밥을 짓고 난방을 한다. 계곡물로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물을 길어와 식수로 사용한다.

생활에 필요한 돈은 산속의 야생차(茶)를 채집하며, 나무를 깎거나 엮어서 생필품을 만들어 교환한다. 숲속 너머 바깥 세상과의 소통은 태양에너지로 연결된 핸드폰으로 한다. 유일한 문명도구다.

전기도 없는 숲속에서의 삶을 밖에서 보면 불안과 불편함, 혹은 TV프로그램처럼 삼시세끼 밥을 짓고 한가하게 쉬면서 보내는 일상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여기서는 스스로 모든 걸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생각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양동이에 물을 긷고 지게에 나무를 지어 올 때면 몸은 불편하지만 정신과 마음은 편하다. 우리가 선택한 삶이 어쩌면 미약하거나 이상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건 자본주의라는 이상한 틀을 벗어나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었고, 오히려 더 행복해졌다는 사실이다." 
 
새 가족의 탄생과 생활의 변화

숲속으로 들어오기까지 자신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배려해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바다 건너 일본의 생태공동체를 다녀오고, 마을에서 아이를 돌보는 체험을 통해 숲에서도 두 사람이 아닌 여럿이 함께하는 건강한 마을공동체를 생각한다.

숲속의 자연과 조화롭게 지내며 평화로운 어느날 첫 아이가 찾아왔다. 그러나 숲속의 낡은 집은 갓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해 여름은 무더위와 장마에 집안은 곰팡이가 피었고, 입덧은 자연과 함께 했던 생활을 낯설고 무서울만큼 두 사람을 옥죄었다. 결국, 도시에 있는 친구집에서 여름을 보내며 집을 고치고 새로 짓기로 했다.

철저하게 자연적인 재료만으로 집짓기 계획을 세우고 도와줄 사람을 찾으면서 놀라운 일들이 계속된다. 전국에서 돕겠다는 사람들이 연락을 하고 외국에서도 찾아온다. 마을장터에서 만난 귀농인들도 집짓기에 힘을 보탰다. 그들에게 내줄 수 있는 것은 숲에서 자란 반찬과 따뜻한 밥이었다. 숲속 생활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기쁨이 충만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기둥이 올라가고 지붕이 씌워지고 2층 다락방이 생기기 시작할 때쯤 12월이 왔다. 날이 추워져 집 공사를 일단 정리하고 겨울 생활 준비에 들어갔다. 드디어 숲에서 아이를 낳을 시기가 되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과 함께 우리 곁에 찾아올 아이였다." 
 
우여곡절을 겪은 자연출산의 기쁨도 잠시, 아이를 돌보는 일에 집안일이 미뤄지고 쌓여가면서 부부가 원칙으로 여겼던 생활에 변화가 필요했다. 불을 피워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휴대용 가스버너를 켰다. 그것의 사용은 한숨을 돌릴 수 있는 놀라운 변화였다.

숲 밖에서 만들어진 물질과 화석연료를 배제하고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생활했던 삶의 방식은 달라져야 했다. 변해가는 현실 앞에서 원칙을 내려놓은 것에 대한 자책감과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여름과 겨울이면 어김없이 끊기는 물과 때때로 찾아오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숲속생활에 결단을 요구하는 시험이었다.
 
"둘째 보배가 태어나고 백일이 지나서는 두손 두 발 다 들고 포기를 선언했다. 두 아이를 돌봐가며 땔나무를 공급하고 요리 보조까지 하다가는 제 명에 못 살고 단명하겠다 선언해 버린 것이다. 아이를 돌보며 반복적으로 쉬지 않고 해야만 하는 노동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나 보다." 
 
숲에서 생태적인 삶이 목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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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살았던 동백숲 작은 집은 모두의 숲으로 열어놓고 나왔다. ⓒ unsplash

 
편리한 물질과 문명을 거부하고 숲으로 들어와 자연 속에서 살아가려는 삶이 힘겨운 것은 육아뿐만이 아니었다. 숲속을 벗어나면 지키고자 했던 원칙들이 무장해제 당하듯이 무너지는 경계를 넘나들면서 위기를 예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숲속 밖에서 바라보는 삶의 방식이 다른 것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도 부담됐을 것이다. 6년간 살았던 동백숲 작은 집은 모두의 숲으로 열어놓고 나왔다.

물질의 편리함이 주는 안락은 어느새 기후온난화와 바다까지 점령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 저장된 방사능 오염수는 저장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한다. 그러나 대책이 없어서 바다에 쏟아낼 수도 있다는 뉴스는 사고가 난 그날을 떠올리게 한다.

비록, 미완의 완성으로 기약없이 중단된 한 가족의 생태적인 삶의 울림을 가볍게 듣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녕, 동백숲 작은 집 - 햇빛과 샘물, 화덕으로 빚은 에코라이프

하얼과 페달 지음,
열매하나, 2018


#생태 #후쿠시마 #생태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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