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 전형이 한국에선 시기상조인 이유

[주장] 교사들은 '워드기계' 취급, 학생·부모는 포장에만 골몰... '좋은 취지'는 사라진 현실

등록 2019.01.02 14:55수정 2019.01.02 14:55
0
원고료로 응원
a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직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연수원 우면관에서 예비 고3 학부모 대상 진학지도 설명회 관련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이날 강사로 나선 교사와 입학사정관은 2018학년도 대학입시의 주요 내용, 진학지도 연간 스케줄, 대입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준비법 등을 소개한다. ⓒ 연합뉴스



며칠 전 방학식 날 3명의 아이들로부터 항의(?) 수준의 문제제기를 받았다. 또래학습멘토링 활동 대회의 수상기록과 학교생활기록부(아래 생기부) 기재에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또래학습멘토링 활동은 같은 학년 친구들끼리 서로 멘토-멘티가 되어 공부를 하여 활동기록이나 소감문 작성이 뛰어난 모둠의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 제도이다. 필자가 있는 학교가 자율형 공립고라서 아이들이 서로 협력해서 공부하는 분위기를 유도하고 공동학습을 통해 우정을 돈독히 하는 나름 취지는 교육적인 관점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수상 실적과 생기부 기록에 대한 집착이다. 아이들 주장의 논리 밑바닥엔 공정성이 깔려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생기부를 좀 더 화려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이 엿보였다.

발단은 이랬다. 2학기 또래학습멘토링 활동에 대한 수상이나 생기부 기록이 공정치 않다는 주장이다. 자신들 모둠 중 일부는 수상을 했고 생기부에 기술되었다. 그런데 같은 모둠활동을 했던 자신들 3명은 수상과 생기부 기록에서 모두 빠졌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2학기에 없는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활동을 했는데 수상은커녕 생기부 기록조차 안 된다는 사실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 세 명의 아이들은 1학기 또래학습멘토링 활동에서 이미 수상을 하였고 그 활동 내용이 생기부에도 기재된 아이들이다. 아이들 주장의 본질은 노력에 대한 보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대회 담당교사인 필자는 1학기에 수상한 아이들의 경우 2학기 수상에서 배제한다고 이미 학년 초에 공지하였다. 유독 40개가 넘는 모둠들 가운데 그 모둠만 전해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이미 1학기에 수상을 했고 생기부에도 기록돼 있으니 그걸로 자족하라고 직언했다. 그리고 2학기 또래학습멘토링 활동은 함께 모여서 공부한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우정을 나누었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말해 주었다. 한 아이는 교사의 말에 수긍했으나 나머지 두 명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억울해했다.

아이들 노력과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어서 상을 줄 수는 없고 생기부에 2학기 또래학습멘토링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기술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교무실을 나가는 아이들에게 세월호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한 권씩 나눠주며 방학 때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자신의 항변 무기로 가볍게 끌어다 쓴 공정성이라는 협소한 논리보다 폭넓게 생각할 수 있는 포용적인 안목과 공감 능력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교사의 해법 아닌 제안에 아이들은 수긍을 했고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씁쓸했다. 그 여운이 지금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오직 생기부 기록을 위해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그 모습에서 학생부종합(아래 학종) 전형의 좋은 취지가 굴절된 채 다가왔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 평가? '화려함'만 좇는 현실

정시 전형은 수능점수 몇 점인지 또 몇 등급 학생인지 '성적 결과'로 평가하는 선발제도이다. 그에 반해 학종 전형은 학생 스스로 어떠한 학교생활과 교육과정을 수행하였는지 그 '성장 과정'에 비중을 두고 학생의 잠재가능성으로 선발하려는 제도이다. 따라서 학생들 스스로 채워가는 성장 과정 자체는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학종이 입시전형의 대세가 되면서부터 극히 인위적인 형태로 변질되었다.

무엇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학업활동을 수행했느냐보다 어떻게 점수화할 수 있도록 기술하고 어떤 내용으로 채워 넣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돼버린 것이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채 학교교육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결코 학종 전형은 우리의 현실에서 교육적이지도 않고 이상적인 입시제도도 아니다.
   
사실 학종 전형이 대세로 자리 잡는 2010년대 중반 이래 현장교사들이 겪는 황당함과 모멸 수준의 감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전 근무지에선 어느 학생이 연말에 자신의 활동을 USB에 담아온 적도 있다. 그 아이에게 교사로서 교사의 역할과 학생의 역할을 주지시키며 타일러서 돌려보낸 적이 있다. 선생님이 1년 동안 너를 관찰한 내용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것이니 선생님의 역할을 믿고 도로 가져가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학종 전형이 대학입시에서 대세가 되면서 아이들의 관심은 온통 생기부 기록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그 마음을 충분히 그리고 절절한 심정으로 이해한다. 생기부에 어떻게 기술되는가에 따라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마당이니 아이들의 불안한 처지에서야 오죽하겠는가! 연말이면 적지 않은 아이들이 이것저것 써달라고 요청이 들어온다.

지난해엔 황당한 일도 경험했다. 3학년 아이들이 교사의 동아리 활동 기록에 대해 이렇게 써주시면 안 된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자신의 대학 진학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너무 밋밋하게 기술해 줬다는 불평이다.

사실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3학년 아이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동아리 활동이 형식적이다. 그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자 전국적인 현상이다. 마치 수능 이후에 전국의 고3 교실이 정상적인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듯이! 그런데도 3학년 아이들은 활동하지도 않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한 것인 양 기술해 달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위해서 다들 그렇게 좋게 써주신다고 큰소리까지 친다. 참으로 모멸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가 교사가 생기부 워드기계로 전락하면서 사회적 위신마저 추락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다가 학교교육이 이런 꼴불견을 연출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생기부 기재를 요청하고 교사는 순간 무엇이 아이를 위하는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공립학교가 이 정도인데 사립학교는 오죽하겠는가! 비리가 없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어머니는 학년말에 독서노트를 한꺼번에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아이가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데도 그것보다 어떻게 하면 생기부 독서란에 좀 더 많은 양이 기재되도록 할 것인가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던 탓이다.

더구나 과거엔 진로희망사항을 학년별로 일치시키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이가 1학년부터 일찌감치 목표를 정했고 꾸준하게 한 가지 방향으로 전념해 왔다는 것을 증빙이라도 할 듯이 자신의 생기부를 입시에 맞춰서 재구성하기에 골몰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생기부 자체를 거의 리모델링하는 단계이자 조작하는 수준이다.

생기부 작성의 폐해가 심각해지자 교육부는 수년 전에 이전 학년도 진로희망사항을 수정하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학생 한 명 당 수십 장이 넘어가는 생기부도 있었고 수상 기록만으로도 한쪽을 다 채우고 그다음 쪽으로 넘어가는 걸 목격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교육부는 생기부의 현란한 포장에 맞서서 글자 수 입력 제한을 통해 제동을 걸었다.

심지어 외부 수상 실적이나 '대회'라는 명칭을 생기부에 쓰지 못하게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생기부에 기재될 수 있는 교내대회가 남발되었다. 그에 따라 부풀려진 수상실적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 적도 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아이들에게 상을 남발하는 것이다.

1년에 40번이나 50번이 넘게 대회를 치르는 학교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한 달 평균 5개의 대회를 치르는 것으로 고스란히 학교 업무를 폭주시킨다. 그것은 그대로 교사의 잡무가 되어 교사는 교육의 본령인 수업연구와 상담활동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다.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자 교육부가 뒤늦게 생기부에 기재할 수 있는 수상기록 횟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소논문 쓰기가 한때 결정적인 스펙으로 알려지면서 자사고, 특목고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러자 일반 인문계고교에서도 벤치마킹하여 소논문 쓰기를 방과후 수업으로 가르쳤던 기억이 있다. 현재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소논문 쓰기 대회가 존재하고 시상을 할 정도이다.

그러나 소논문 대필이 유행하고 사회적 불신이 심화되자 교육부는 아예 학종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학종 전형이 대세가 되면서 온갖 규제와 기준이 강화된 형태로 학교현장엔 생기부 기재 요령이 진화된 채 매년 새로운 지침으로 내려오곤 한다.

순수한 의미에서 독자적인 고유 업무로서 입학사정관 역할을 수행하는 인원은 학교마다 극히 소수이다. 대학마다 정규직 입학사정관은 손에 꼽을 정도로 미미한 실정이다. 대부분 대학들은 현직 교수들을 입학사정관으로 겸임하는 형태를 취하면서 입학사정관 숫자를 크게 부풀렸다. 그리하여 마치 학종 전형이 공정하게 선발되는 것처럼 이미지를 연출해왔다.

대학교수를 입학사정관으로 겸임하게 한다고 해도 100명 안팎의 입학사정관으로 수천수만의 수험생 학종 전형자료를 모두 들여다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때 어느 유명 사립대에서는 학종 전형으로 제출할 수 있는 자기우수성 입증자료를 동영상은 물론이고 10개 미만으로 제한한 적도 있다.

솔직히 한국 사회에서 학종 전형은 항상 공정성 논란을 일으켜 왔다. 2010년대 중반 이후까지 선발기준이 모호하여 객관성이 결여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학 차원에서 학종 전형의 평가 기준을 세분화하여 공시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학종 전형은 여전히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더구나 올해 강남 어느 사립학교의 내신 성적 부정 의혹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학생부종합 전형에 이어 학생부 교과전형조차 불신하는 조짐이 일었다.

이대로라면... 20년, 30년이 지나도 어렵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한국 사회 현실에서 뿌리내리기 어렵다. 학종 전형의 역사가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정착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단 한 번도 역사 청산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적 가치와 좋은 취지의 입시제도라고 하여도 가치가 전도된 공동체 사회에선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좋은 교육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실 속에선 기득권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 변형되기 일쑤이다. 해방 후 16번이나 입시제도 개혁이 있었다. 4년에 한 번꼴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학교현장에 제대로 뿌리내리질 못했다.

한국 사회 요소요소에 기회주의와 이중성이 삶의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11일자 <세계일보>에 따르면 정직하게 살고 법대로 살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고 여기는 국민이 64.6%에 달한다. 해방 후 과거사 청산이 좌절된 속에서 사회지도층 스스로 법을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80%가 넘는 국민들은 여전히 사회지배층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법체계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윗물이 맑지 않은데 아랫물이 맑을 순 없다.

학종 전형의 개선 역시 교사 개개인의 양식에 맡겨둘 일이 아니다. 또한 교사 개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사회 전체가 혼탁한 속에서 그리고 계급불평등이 하늘을 찌르는 구조적 모순을 매일 눈앞에 마주해야 하는 현실에서 교사 개개인에게 독야청청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이다.

학종 전형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사회 정의의 토대를 굳건히 해야 한다. 공동체의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놓고 그 토대 위에서 건강한 교육제도! 학종 전형을 시행해야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현재 학종 전형이 문제가 많고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공정성을 앞세워 수능 정시 전형을 확대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수능 시험 절대평가와 수시, 정시 비율 논란에서 교육부가 비전문가 여론을 앞세워 수능 정시 비율을 늘린 것은 매우 잘못된 정책이었다.

공정성을 앞세워 평가의 객관성이 높다는 이유로 수능 정시전형을 확대하는 게 정말 답이 될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될 수 없다. 이미 수능시험은 고교학력을 평가하는 평가의 타당도 측면에서 타당도가 낮다고 판명되었다. 하물며 점수 몇 점 차이로 전국의 학생을 일렬로 세워서 대학의 순위를 매기는 게 과연 교육적이고 정상적인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더구나 학벌사회가 엄존하고 학력=금력으로 이어지는 기형적인 한국사회에서 수능점수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부박하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수능정시전형 확대는 불평등한 계급재생산구조를 더욱 고착시키는 교육정책으로 기능할 뿐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상대평가인 5지 선다형 수능시험을 논술형 자격고사로 전환하여 절대평가로 시행하는 게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지름길이다. 그다음에 대학선발은 국가가 관리할 게 아니라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

다만 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기기 전에 국가가 맨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선결조건으로 학력의 차이가 임금의 차이, 즉 소득의 차이로 확대 재생산되지 않도록 사회개혁을 성공시켜야 한다. 사회정의를 바로세우고 계급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복지 정책을 구현할 때, 학종 전형은 사회갈등 비용을 치르지 않고 한국사회에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좋은 교육제도로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학교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등록하였습니다. 교직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는 만큼 교육분야에 대한 글을 기사화함으로써 좀더 많은 독자들과 문제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등록은 2년 전에 해놓고 기사 한 번 쓰질 못했음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꼭 좋은 기사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AD

AD

인기기사

  1. 1 굴·바지락·게에서 나온 '하얀 물체'... 인간도 위험
  2. 2 10살 초등학생 성폭행... 스포츠계에선 흔한 일이었다
  3. 3 11~15살 학생 수백 회 강간… 이런 일 가능했던 이유
  4. 4 가사도우미에게 재판서 진 고위공직자... 추악한 사건 전말
  5. 5 정청래도 뛰어든 '지역화폐' 대전, "이재명 린치 못봐주겠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