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2년 연속 청와대 신년회 '패싱' 당한 이유

[광화문 인사이드]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정경유착 의혹들... 신년회 초청 명단의 정치학

등록 2019.01.02 17:53수정 2019.01.02 17:53
1
원고료로 응원
'광화문 인사이드'는 청와대·통일부·외교부·국방부·총리실 등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정보'가 있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a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 참석하기 위해 김정숙 여사,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새해가 되면 정부나 정당, 기업, 금융기관,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신년인사회'(아래 신년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꼭 열곤 한다. 아마도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신년회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하는 '경제계 신년회'가 아닐까 싶다. 지난 1962년부터 열린 경제계 신년회에는 주요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정부 각료, 국회의원, 주한외교사절 등이 대거 참석한다. 지난해에는 총 1300여 명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이 주최하는 '청와대 신년회'는 규모 면에서 경제계 신년회에는 못미치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 중요도와 주목도가 높다. 특히 청와대는 초청자 명단 작성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에 '누가' 참석하느냐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마련이다. 

2018년 신년회 참석자 면면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첫 새해를 맞이한 2018년 1월 2일 신년인사회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당시 신년회의 캐치 프레이즈는 '나라답게 정의롭게'였다. '적폐청산'이 당시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였음을 보여주는 캐치 프레이즈였다(관련 기사 : 야당 대표들 빠진 신년인사회... 문재인 "무엇보다 정치가 중요").  

이날 신년회에 초청된 인사는 총 246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등 제1·2·3당의 대표들은 모두 불참했다. 대신 김성태·김동철·오신환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원내정당 대표 가운데에서는 여당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진보정당인 이정미 정의당 대표만 참석했다.

당시 홍준표·안철수 대표 측은 "야당 대표의 불참은 관례다" "청와대 신년회에 야당 대표가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 참석한 일이 거의 없다" 등의 이유를 댔다. 유승민 대표도 "신년회는 대통령와 야당 대표가 대화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듯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신년사에서 유독 '정치'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일 것이다"라며 "여야 간의 대화, 국회와 정부의 대화도 한층 더 긴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우리 정치가 '비난의 정쟁'이 아니라 '서로 잘하기 경쟁'이 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못해낼 일이 없을 것이다."

이날 문 대통령이 앉은 신년회 헤드테이블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정세균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상 '5부 요인'), 최재형 감사원장, 한승헌 전 감사원장,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애국지사 오희옥씨, 피아니스트 이희아씨가 앉았다.

정계에서는 심재철·박주선 국회 부의장 등이, 재계에서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박승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상 '경제 5단체장'), 강호갑 중견기업협회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그런데 그동안 '재계의 맏형'으로 역할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허창수 회장(제36대)은 초청대상에서 빠졌다. 

특히 다문화가정 출신 모델과 10년째 멸치가게를 운영해온 사장, 카페에 취업한 뇌병변장애인, 포항지진 때 수능시험을 치른 학생, 5.18 기념식 때 아버지 추도사를 낭독한 아들, 15년째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한 경찰관, 신장암수술 2주 만에 복귀해 화재현장에서 아이들을 구조한 소방관 등 '일반시민 18명'도 신년회에 초청받았다.

이날 초청받은 가수 강산에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강씨가 부를 예정이었던 <넌 할 수 있어> 노래는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씨가 대신 불러서 큰 박수를 받았다.

2019년 신년회 참석자 면면들

그로부터 1년이 흘러 2019년 1월 2일 청와대가 아닌 중소기업중앙회(서울 여의도 소재)에서 신년회가 열렸다. 초청자만 300여 명에 이른다. 캐치 프레이즈는 '더 잘 사는, 더 안전한, 더 평화로운 대한민국'이었다(관련 기사 : 김정은에게 전한 '한반도 신경제구상', 신년사에 담은 문 대통령).

문 대통령이 지난해 후반기부터 경제 성과 체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신년회에 참석하는 경제계 인사들의 면면에 관심이 쏠렸다.

일단 경제 5단체장과 5대그룹 총수가 초청대상에 포함됐다. 그런데 이번에도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초청대상에서 빠졌다. 

재계에서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경총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이 참석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과 최태원·구광모 회장 등은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3차)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바 있다. 박용만 회장은 문 대통령이 앉은 '헤드테이블'에, 그밖의 경제 5단체장들과 4대그룹 총수들은 경제테이블격인 '6번 테이블'에 앉았다. 헤드테이블과 경제테이블에는 각각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배석했다.   

그밖에도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안장원 이음파트너스 회장, 서경미 링크샵스 대표, 김준홍 미래컴퍼니 대표, 김정하 티라유텍 대표, 양승찬 스타 스테크 대표, 남학현 아이센스 사장, 기중현 연구 대표이사 등 벤처·스타트업, 스마트공장, 규제혁신 분야, 4차산업 선도업체 기업가들도 참석했다. 

정계에서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이 참석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장병완 원내대표, 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 등은 초청받긴 했지만 불참했다. 

특히 '성장과 동행'이라는 주제로 20여 명이 특별초청자로 신년회에 참석했다. 여기에는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박조은 소브스 공동대표, 백관실 토종밀 농부, 고려진 해녀, 이정원 쉼표영농조합법인 대표, 박대엽 와이케이스틸 노조위원장, 박진관 보일러 건원엔진니어링 상무, 황윤 환경다큐 영화감독, 김순복 군사상자가족협의회 회장, 김용식 문경새재 우체부 등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올해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점을 헤아려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 김미씨, 이상룡 선생의 증손 이항증씨, 부부 독립운동가인 김예진‧한도신 선생의 아들 김동수씨 등도 이날 신년회에 참석했다.

한편 대통령 신년사를 시작하기 전 오프닝 행사로 상영된 릴레이 인터뷰 영상에는 지난해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던 인물 11인의 새해 소망과 덕담이 담겼다. 신년회 캐치 프레이즈에 맞게 '잘 사는' 부문에서는 취업준비생과 누리호 개발 연구원들, 벤처기업인, 체육인, 자영업자가, '안전한' 부문에서는 택배기사와 인명구조 초등학생, 소방관이, '평화로운' 부문에서는 지난해 8월 이산가족상봉 참가자와 11월 GP를 철거하던 중 북측 군인과 악수한 사단장 등이 릴레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a

재벌총수 증인선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오른쪽)을 비롯한 8대그룹 재계총수들이 지난 2016년 12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제1차 청문회에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왜 신년회 장소가 중소기업중앙회?

이날 신년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장소가 청와대가 아닌 중소기업중앙회였다는 점과 경제 5단체장 중 전경련 허창수 회장이 2년 연속으로 초청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이다. GS를 이끌고 있는 허 회장은 지난 2011년 전경련 회장에 선임돼 현재 두 번째 연임을 하고 있다.  

먼저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통령이 주최하는 신년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하기 직전인 지난 2016년 1월 4일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중소기업신년회에 참석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1년 1월 4일 예술의전당에서 정부 주최 '신년회와 신년 나눔음악회'를 연 적이 있다.

이러한 장소 선정과 관련, 청와대는 이날 오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국민과 함께 경제성장을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를 담아 역대 처음으로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렸다"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962년 중소기업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대한민국 경제의 균형발전을 위해 설립된 단체다.

문 대통령도 이날 신년사에서 "오늘 새해 인사를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이곳,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국민들에게 인사 드린다"라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특히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특별히 경제인도 많이 모셨다"라고도 했다.

이는 올해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의 최우선방향이 '경제'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실제 문 대통령도 '오늘이 행복한 나라'라는 제목의 신년사에다 경제분야를 가장 많이 할애했다.

새로운 산업정책, 산업 전 분야의 혁신, 제조업 혁신, 혁신성장,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 기업 투자를 위한 정부 지원, 신산업 규제샌드박스 시행 등이 그렇다. "기업, 노동자, 지자체, 정부"의 "사회적 대타협"과 "대화와 타협, 양보와 고통분담"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7일 문 대통령 주재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올해 경제정책의 최우선과제로 민간부문 투자 활성화를 발표한 바 있다. 특히 모든 공공시설을 민간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민간투자사업 대상을 확대하기로 한 것을 두고 '친기업 경제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신년 특집 여론조사에도 일자리 문제가 첫 순위에 오를 만큼 경제가 중요하다"라며 "대통령의 1월 일정에 경제현장 방문이나 기업인 면담 등이 많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전경련 초청 대상에서 빠져... 2년 연속 '전경련 패싱'?

청와대는 2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경제 5단체장과 5대 기업 총수"가 참석한다고 알렸다. 그래서 전경련 회장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청와대 초청 공식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애초 초청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이로써 전경련은 '2년 연속'이나 대통령이 주최하는 신년회에 초청받지 못했다. '2년 연속 전경련 패싱'이라는 굴욕을 당한 셈이다.  

이러한 '전경련 패싱'이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전경련의 정경유착 의혹들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전경련은 박근혜 정부 시절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한 모금에 주도적으로 나섰고, 특히 극우단체인 어버이연합에 수억 원의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후자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과 전경련, 보수단체의 3각 불법 커넥션"이라고 규정했다. 

전경련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깊숙이 연루된 사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LG를 시작으로 삼성, SK, 현대자동차 등 4대 그룹이 순차적으로 전경련을 탈퇴했다. 이로 인해 전경련의 위상은 크고, 빠르게 낮아졌다. 

청와대의 핵심관계자는 "보도자료에 '경제 5단체장'을 참석자로 표기했는데 이것은 청와대 홍보기획팀에서 일상적으로 쓰던 용어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라며 "경제5단체 중 전경련은 (이번 신년회 초청대상에서) 빠졌다"라고 설명했다.

재계와 정계 일각에서는 전경련을 초청대상에서 제외한 것을 두고 '문재인 정부의 전경련 패싱'이라며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1970년 창립 이후 회계 부정 의혹과 최초의 상임 부회장 경질 등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던 경총의 회장은 두 번이나 신년회에 참석한 것과 비교해도 형평성에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구시대적 정경유착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전경련의 자업자득'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   
#대통령 신년회 #중소기업중앙회 #전경련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