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만든 굴뚝을 왜 자랑하나 했더니

[오래된 마을 옛집굴뚝25] 보성·순천 마을(1) 보성 강골마을 옛집 굴뚝

등록 2019.01.06 20:07수정 2019.01.0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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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은 독특한 우리문화의 한 영역을 차지한다. 오래된 마을의 가치와 문화, 집주인의 철학, 성품, 그리고 그들 간의 상호 관계 속에 전화(轉化)되어 모양과 표정이 달라진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오래된 마을 옛집굴뚝을 찾아 모양과 표정에 함축되어 있는 철학과 이야기를 담아 연재하고자 한다.

강골마을 서쪽 아치실댁 뒷동산을 쉬엄쉬엄 넘어온 대숲은 오봉생가를 타고 열화정 곁으로 다가섰다. 대나무는 집과 사람을 싸고 도는 훈김으로만 막을 수 있는 것이라 훈김이 사라지면 무한정 뻗는 것이다. 마을 여기저기 대나무밭을 비집고 들어선 집들이 하나둘 비기 시작하더니 점점 마을대숲이 무성해졌다. 강골은 이제 대나무골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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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 정경아치실댁 동산에서 바라다본 강골마을 정경이다. 대숲으로 둘러싸여 산골마을 같다. ⓒ 김정봉

 
마음이 스산하다. 득량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때문이다. 쏴아아 멀리서 밀려오는 소리는 대나무 몸뚱어리 부딪히는 소리, 스스슥 가까이 들리는 소리는 댓잎 비비는 소리다. 내 발걸음을 잡았다 놓았다 한다. 바닷가에 강한 바람이 불 것이라는 어젯밤 일기예보를 예사로 흘려들었다. 강골마을이 득량바닷가에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탓이다.

득량바닷가에 있는 대나무 마을, 강골

강골은 보성군 득량바닷가에 있다. 믿기지 않지만 간척사업(1929년-1937년)으로 갯벌이 메워지기 전까지 마을 앞 기찻길까지 바다였다. 기찻길은 1930년에 쌀과 면화를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놓은 것이다. 이름은 광여선(광주-여수 노선), 현재 경전선이다. 득량(得粮)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군사들이 득량만 선소일대에서 양식을 얻어 왜적을 무찔렀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장군 군대가 식량을 얻은 득량은 일제강점기에는 식량을 수탈당한 고장이었다.

강골마을은 간척사업으로 생긴 넉넉한 논밭을 발아래 두고 있다. 앞산 오봉을 바라보고 뒷동산을 향해 우묵하게 들어섰다. 대나무밭으로 둘러싸여 그윽하다. 너무나 그윽한 나머지 산골마을로 착각하기 쉽다.

강골은 광주이씨 집성촌이다. 이용욱, 이금재, 이식래가옥이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았고 마을 동산 깊숙이 열화정이 숨어있다. 모두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아치실댁과 이식래가옥 뒤에 있는 오봉생가는 문화재는 아니어도 눈여겨볼만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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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욱가옥 전경강골의 중심가옥으로 마을 맨 앞에 있다. ⓒ 김정봉

    
이용옥가옥 '못난이' 굴뚝과 '몬드리안' 곳간채

'득량'은 아니더라도 마을 눈동냥, 귀동냥이나 할까 하며 강골마을을 기웃거렸다. 마을 한가운데 솟을대문집이 근사하다. 이용욱가옥이다. 1835년생, 200년 묵은 집이다. 이년 전 가을에 들렀을 때, 어렵사리 집 구경을 하였는데 오늘은 문이 닫혀 대문만 쳐다보았다. 당시 장흥 방촌마을 존재고택 종부가 이 댁 안주인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해 그 구실로 집구경한 것이다.

사랑채 앞마당이 참 넓다. 유난스레 솟은 솟을대문의 위세를 담고도 남는다. 여러 편액을 달고 있는 사랑채는 마당과 솟을대문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다. 굴뚝도 기단굴뚝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솟을대문으로 유세를 부렸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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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욱가옥 담과 담구멍이용욱가옥 동쪽담이 근사하다. 담에 뚫린 구멍은 이웃과 소통하려는 소통구멍이다.(2016년 10월 촬영) ⓒ 김정봉

 
사랑채 동쪽담은 '담물결'이 친다. 마을우물을 감싼 담과 이웃 이금재가옥 담이 만들어낸 물결이다. 독특하게도 담 한가운데 구멍이 있다. 이 구멍으로 동네 아낙들이 우물가에서 조잘대는 얘기를 들었다 하기도 하고 거꾸로 마을사람들이 이 댁에 하소연을 하던 구멍이라 한다. 이웃과 거리낌 없이 소통하려는 소통구멍, '소리통'인 셈이다.

안주인은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도 대접에 소홀함이 없었다. 안채 서쪽에 있는 곳간채를 가리키며, 사람들이 '몬드리안 그림'같다고 한마디씩 한다며 나에게 보라하였다. 과연 새하얀 회벽에 까무잡잡한 나무 뼈대가 그려낸 흰 여백이 여운을 남겼다.

집 구경하던 중, 종부에게 굴뚝을 보러왔다고 하니 구경할 게 없어서 굴뚝구경이냐는 눈치다. 그러면서 뒤뜰에 있는 굴뚝을 가리키며 자랑하였다. 아주 작고 소박하여 구수한 맛이 나는 못난이 굴뚝이다. 연기 구멍 두 개, 기와 몇 장으로 만든 연가(煙家) 뿐 보잘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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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욱가옥 곳간채나무로 분할된 사각형 흰 벽은 ‘몬드리안 그림’같다고 한마디씩 한다.(2016년 10월 촬영)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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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욱가옥 별채 굴뚝아무렇게나 무심하게 만들어 구수한 맛이 난다. (2016년 10월 촬영) ⓒ 김정봉

  
밥불 연기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려는 배려의 굴뚝이라고들 말한다. 배려하는 마음으로 무심하게 주물럭대다 '생긴' 굴뚝이다. 착한 내적심성을 바탕으로 무심의 경지에서 나온 미를 한국미라 한다면 이 굴뚝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몬드리안' 곳간채에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다른 미가 숨어있다. 집주인이 자랑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게로군.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을 공유한 강골마을 옛집들

이용옥가옥 동쪽 집은 이금재가옥이다. 여전히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종손은 객을 맞는데 이골이 났는지, "뒤꼍을 보러왔지요"라며 어서 보라 하신다. 이 집 뒤뜰은 생김새가 독특하다. 여간해서는 뒷마당이 없는데 이집만은 다르다. '凹'자 모양으로 지붕 날개가 집 뒤로 돋아 생긴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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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재가옥 뒤꼍지붕이 뒤로 돋아있어 뒷마당이 생겼다. 보기 드문 뒤꼍이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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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재가옥 뒤꼍예전에 굴뚝 두 개가 똑 같았었다. 새 단장한 굴뚝은 광이 난다. 나머지 하나는 이용욱가옥 굴뚝과 많이 닮았다. ⓒ 김정봉

 
뒤꼍은 양 모퉁이를 담으로 완벽하게 차단하여 주인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는 금원(禁苑), 여성만을 위한 비원(秘苑)이다. 뒤뜰은 굴뚝 하나를 새로 만든 것 빼고는 변한 게 없었다. 굴뚝은 이용욱가옥 굴뚝과 많이 닮았다. 옆집이나 마을사람들과 생각을 같이한 것이다.

가장 많이 변한 집은 이식래가옥이다. 마을에서 가장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던 집이었지만 이번에는 문을 닫아 들어가지 못했다. 바깥마당에 마련된 조청 곱던 여러 개 화덕도 철거되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마을할머니 한분께 물어보니 "이자 우리 늙어가꼬 조청도 못과버려라"한다. 조청고을 때 마을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던 화덕이기에 마을공동체가 느슨해지고 허물어지는 소리로 들렸다. 이 집이 변한 게 아니고 마을이 늙어가고 있는 거구나, 안타까운 마음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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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래가옥 굴뚝강골마을 굴뚝 생김새는 다양하다. 이 집 굴뚝은 타원형으로 생겼다.(2016년 10월 촬영) ⓒ 김정봉

    
이 가옥에 대한 추억도 두해 전 기억을 더듬어볼 수밖에 없다. 안채 뒷담 너머는 대나무밭이다. 다른 집처럼 뒤꼍이 담으로 완전히 막혀있고 대나무그늘까지 더해져 아늑하다. 뱀이 대숲을 스스슥 돌아다니다 아늑한 곳 찾아 알을 낳은 듯, 뱀 알을 닮은 두기의 굴뚝이 있다. 내 눈에는 알 모양으로 생긴 게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오봉생가는 사랑스런 집이다. 오는 길에 안쓰러워 보이는 아랫집 굴뚝에 애정을 나눈 뒤라 더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푸석한 담과 빛바랜 대문, 옹기굴뚝이 있는 별채 정원, 뒤꼍에 있는 장독대는 윤기를 잃어서 그렇지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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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생가 아랫집 굴뚝 담밖에 나와 있는 굴뚝은 처음 본다. 키는 왜 이리 작은지 애달피 보인다. 이 또한 내 편견인지 모른다. 낮게 깔린 연기가 해충을 막고 눅눅한 공기를 고슬고슬하게 하는데 말이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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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생가 뒤꼍 장독대안채와 별채 사이 문틀사이로 보이는 장독대. 오른쪽 문틀 바로 뒤에 안채 기단굴뚝이 있다. 문은 떨어져 없지만 문을 닫으면 안주인의 조그만 세상이 된다. ⓒ 김정봉

 
후원은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안주인의 조그만 세계다. 안채 옆에 있는 기단굴뚝과 동백가지가 드리운 장독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전통문화 양대 버팀목인 장(醬)문화와 구들문화(굴뚝)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기단굴뚝에서 나온 낮게 깔린 연기가 장독허리를 휘감아 몸을 섞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강골마을 하이라이트, 열화정

마을의 하이라이트는 열화정. 이재 이진만이 이용욱가옥을 짓고 10년 뒤(1845년)에 지었다. 우물가는 아낙들의 수다공간이라면 열화정은 남정네의 놀이터이자 학습공간이다. 손자 원암 이방회와 당대의 석학, 이건창이 교류하고 한말의병 이관회, 이양래, 이웅래를 배출하였다.

탱자향 가득한 열화정 가는 길은 겨울이라 많이 싱거워졌다. 눈맛은 시원하다. 멀리 열화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연석기단에 내려앉은 열화정 모습이 경쾌하다. 오봉산과 주변 경관을 끌어안았다. 차경(借景)의 멋을 부린 거다. 차경으로 성이 안찼는지 마당에 연못을 마련하여 구색을 갖추었다. 연못은 열화정 평면을 따라 만들었다한다. 그래서 그런지 연못에 비친 열화정은 연못에 푹 안겨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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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 정경아치실댁 동산에서 바라다본 강골마을 정경이다. 대숲으로 둘러싸여 산골마을 같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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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정 굴뚝 수키와 두 개로 포개 만든 굴뚝이다. 토방위에 불쑥 솟아 거북이 닮았다. ⓒ 김정봉

 
열화정 굴뚝은 파격을 보였다. 여느 정자처럼 토방이나 마루 밑에 숨겼으리라 생각했지만 웬걸 토방 가운데에 불쑥 솟아있다. 수키와 두 개를 포개 만든 굴뚝, 거북머리 닮았다. 남정네들 걸걸한 웃음소리가 궁금해 목을 삐죽 내민 듯한 모습이다.

해질 무렵이 돼서야 마을회관 앞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본 마을굴뚝들을 떠올려보았다. 열화정의 '거북이'굴뚝, 이용욱가옥, 이금재가옥의 '못난이'굴뚝, 이식래가옥의 '알'굴뚝, 오봉생가와 아치실댁 뒤뜰의 '새색시'굴뚝, 오봉생가 안채의 기단굴뚝, 오봉생가 아랫집의 '외톨이'굴뚝, 오봉생가 윗집의 '맹꽁이'굴뚝, 모두 사랑스런 굴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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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실댁 굴뚝아치실댁 굴뚝은 단아하여 새색시 닮았다. 오봉생가 뒤뜰 굴뚝과 아주 많이 닮았다. ⓒ 김정봉

 
강골마을은 호남에서 최초로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된 마을이다. 마을의 역사와 문화,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을 수집, 발굴하여 전시하고 전파하기 위한 것이다. 기록을 사랑하는 강골에 힘을 보태 나도 굴뚝에 관한 '사랑기록'을 남기고 낙안으로 떠났다.
덧붙이는 글 2016.10, 2018.12.17-18에 다녀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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