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마을의 아픈 역사, 아이들도 압니다"

청소년마을극장 '모모' 집으로 가는 길 2 '우리가 바라는 건'

등록 2019.01.03 11:54수정 2019.01.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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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택 시내 중고생 총 16명이 몇 개월 동안 연습한 무대가 곧 열린다. 아이들은 이 연극 연습을 통해 대추리 마을 주민들의 아픔을 알게 됐고 공감하며 연극연습에 매진해왔다. ⓒ 노준희


지난해, 꿈의 학교 청소년마을극장 모모는 대추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꾸며 무대에 올렸다. 연기자들은 중고생 청소년들. 그날 연극을 보았던 대추리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의 처연한 몸짓에 마음이 아팠고 아이들의 대사에 눈물을 찍었다. 그 시절 대추리의 아픈 기억들이 마을 사람들의 가슴에 쏙쏙 박혔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대추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몸으로 언어로 전했다. 때론 절절하게, 때론 먹먹하게.

2019년 첫 토요일, 모모는 다시 아이들과 대추리 마을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다. 이번엔 민중가수이자 작곡가인 김강곤 작곡의 노래 2곡도 같이 부르며 대추리의 아픈 역사를 토닥토닥 전한다.

"대추리의 아픈 역사, 제대로 아시나요?" 
 

평택 팽성읍 노와리. 대추리 마을 사람들이 이전해 온 마을 어귀에 있는 평택평화센터. 대추리 마을 주민들의 아픈 역사가 시작된 미군 기지 관련 자료가 전시돼있다. ⓒ 노준희

 
한반도 평화유지를 목적으로 주둔한다는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살아온 땅을 넘겨주어야만 했다.

대추리마을 신종원 이장은 "정부의 말을 믿고 고향을 내주고 이곳 노와리로 터전을 옮겼다. 그러나 이전 후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주민들은 여전히 아프고 가슴이 멘다. 아이들의 연극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때의 아픔이 다시 살아나서 마음이 아린다"고 말했다.

2004년 8월, 한미 양국이 용산기지와 미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는 협정에 합의하면서 파란은 시작됐다.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는 강제이주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최후까지 남은 대추리 주민 44가구만 현재 마을 노와리로 이전했다. 그러나, 나고 자란 추억이 서린, 농사지으며 먹고 살던 대추리를 향한 그리움은 여전했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음에 난 생채기가 적지 않다. 마을 입구에 세운 '대추리 마을'이라는 푯말은 마을 이름만이라도 찾고 싶은 그들의 심정이 그대로 묻어있다.
 

평화센터 안 한쪽에 마련된 작은박물관. 미군기지 이전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역사가 적혀있는 공간이다. ⓒ 노준희


신종원 이장은 "우리가 살던 땅 뺏기고 싶지 않은 건데 국방사업 미군기지 반대한다고 빨갱이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우리는 실향민이다. 고향이 북한 땅도 아닌데 지척에 두고도 갈 수가 없다"며 "마을 이름이라도 살려달라는데 그걸 안 해주는 이유가 뭘까"라며 울분을 토했다.


현재 44가구가 거주하는 땅은 신 이장에 따르면 충남축산과학원 단지 일부였다. 기존 마을 주민들과는 별개의 땅이라고 했다.

"평택시도 법무법인 자문을 받았어요. 거기서도 대상 토지에 살고 있는 노와리 주민으로 명시해 우리만 대상자였고 우리가 사는 지역만 이름을 대추리로 해달라는 건데 평택시가 계속 노와리 전체 주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우겼어요. 책임지고 싶지 않았겠지. 이제 와서 해주자니 번복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지…. 정부의 말만 믿고 이주한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돌아가셨다.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어 더 가슴이 미어진다."

마을 어귀 평택평화센터에는 미군기지 이전 과정에 얽힌 이야기가 자료와 함께 전시돼 있다. 또 마을 안 노을공방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대추리 마을 사람들의 혹독한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연극으로 체험하며 다양한 관점 키우는 아이들 
 

아이들이 연습하는 장면은 즐거워 보인다. 그러나 연극을 마치고 아이들이 느낄 감회는 어떠할까. ⓒ 노준희

 
아이들은 끝나지 않은 대추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맘먹고 펼쳤다. 대추리 이야기를 사람들이 잘못 알게 하지 않기 위해. 그들이 잘못된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매주 1회 바쁜 학교 일정들을 쪼개어 연습에 매진했다. 세상모르고 밝던 청소년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 그런 아픈 역사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이 연극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선명해졌다. 관객이 아닌 배우로 대추리 이야기를 접한 아이들은 더 확실히 지역에 대한 역사를 이해했다.

배우가 꿈인 김윤채(신한고 2) 학생은 "연극을 준비하면서 대추리 마을 사람들의 아픔이 와닿았다. 미군부대 이전 때문에 수많은 주민이 고향을 잃고 지금까지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냥 연극을 보기만 했다면 '이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일 텐데 직접 그들이 되어 연기하면서 더 집중하게 돼서 더 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미처 생각 못 한 다양한 관점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역에 사는 청소년이 보여주는 지역 이야기, "공감과 전달 중요해" 

2회째 진행하는 이번 연극은 지난해 평택평화센터가 진행한 대추리 마을 사람들 구술집에서 비롯했다. 그 역시 아이들이 그들의 구술을 받아 기록했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공연한 '집으로 가는 길'의 두 번째 작, <우리가 바라는 건>이다. 평택 시내 8개 학교 16명이 참여한다. 이번 공연엔 안무도 들어있다. 대사 없는 안무도 있고 소고를 들고 춤추는 장면도 있다. 이번 공연을 위해 평택무봉산수련원에서 합숙을 진행하기도 했다.

(재)2.1지속가능연구소가 후원하는 평택마을교육문화공동체는 청소년복합문화공간 모모를 운영하며 이 연극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

박명진 사무국장은 "지역의 이야기를 지역의 아이들이 알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어디서도 편히 말하지 못하고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기에, 분명히 알아야 할 지역의 아픈 역사를 아이들이 몸으로 이해하길 원했다"며 "이 이야기가 연극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아이들을 지도한 조혜경 총감독은 변수 많은 아이들과 연극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애달았던 시간도 많다. 그러나 막상 공연을 코앞에 두니 조 감독 자신도, 아이들의 각오도 단단해졌다. 눈앞에 다가온 공연일에 연극으로 하나 되는 시간만 남았다.

"사회 곳곳에서 비자발적으로 쫓겨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연극이에요. 아이들은 원치 않게 성적에 밀리죠.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도심 원주민과 세입자들은 살 곳을 잃고요. 대추리는 국가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 이야기예요. 그들 편에 서서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고 그 동네 어른들에게도 서로 지켜주고 버텨준 힘이 되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청소년마을 극장 모모의 집으로 가는 길 2 <우리가 바라는 건>

일시 : 2019년 1월 5일(토) 오후 2시
장소 : 평택 청소년문화센터 대강당
문의 : 010-6210-1906
#대추리마을 이야기 #평택청소년카페 #평택 모모 #대추리 노와리 #평택마을교육뮨화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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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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