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커뮤니티 케어'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서평] 지역포괄케어와 지역공생사회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

등록 2019.01.06 14:48수정 2019.01.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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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복지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고한 '커뮤니티 케어'(보건복지부, 2018년 3월 발표)는 '지역사회통합돌봄'을 말한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누리며 지역사회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탈 시설화'를 추구해 온 유럽, 일본 등 복지 선진국에서는 이미 도입하여 실행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 11월 20일 '노인커뮤니티케어'라는 커뮤니티 케어 1단계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어르신들이 자신이 살아온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주거, 보건의료, 건강관리, 요양, 돌봄서비스를 받으면서 살던 곳을 떠나지 않고 최대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므로 커뮤니티 케어의 우선 대상을 노인으로 본 것이다.


현장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커뮤니티 케어'라는 대단히 훌륭하고 이상적인 이 정책이 삶터에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많은 의문을 갖고 있다. 우회전 깜빡이를 넣고 핸들을 돌렸는데 갑자기 도로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네비게이션에는 표시되어 있는 길이 막상 땅 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커뮤니티 케어를 실행하기엔 우리의 복지환경과 현실은 그만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이미 커뮤니티 케어를 실행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은 어떠할까. 나는 일본복지대학 명예교수 니키류 박사가 쓴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를 읽으면서 커뮤니티 케어의 세밀한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핵심은 지역이다, 지역은 준비되어 있나?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 표지 . ⓒ 북마크

 
커뮤니티 케어의 핵심 키워드인 '지역'은 모든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지역'을 중심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역'의 범위를 대략 30분 이내 인구 1만명 정도 수준의 일상생활권역으로 설정한다.

일본에서는 커뮤니티 케어를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이라고 부른다. 2013년 '사회보장개혁프로그램법'과 2014년 '의료개호종합확보추진법'에서 처음 제시된 이 개념은 '지역의 실정에 따라, 고령자가, 가능한 한 정든 지역에서, 가진 능력에 따라 자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의료, 개호, 개호예방, 주거 및 자립적인 일상생활의 지원이 포괄적으로 확보되는 체계'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도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논점들이 제기된다. 특히 저자는 "지역포괄케어에서 전국 공통, 일률적인 중심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역포괄케어는 이렇게 하면 좋다'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일을 가장 잘 아는 시구정촌(市區町村)이 지역의 자주성이나 주체성, 특성에 근거해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의료, 개호, 생활지원 각각의 요소가 필요한 것은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누가 중심을 담당하는지, 어떠한 연계체계를 도모하는지 하는 것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23쪽)

지역포괄케어가 일률적으로 시행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자주적으로 이루어지는 '네트워크'로 봐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촌의 자원 격차가 현저하고 각 지역마다의 정치, 역사, 문화적 배경이 각기 다른 한국의 현실에서 '지역의 실정에 맞는' 커뮤니티 케어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일본의 지역포괄케어가 시구정촌(市區町村)을 중심으로 한다면 한국의 커뮤니티 케어는 '읍면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가장 지역에 밀착해 있는 가장 말단의 행정조직이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본격화된 복지사업의 지방정부로의 이양은 2005년 시군구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결성 및 지역사회복지계획 작성, 2012년 시군구 통합사례관리를 위한 희망복지지원단, 2014년 '읍면동 복지허브화'에 따른 맞춤형 복지 제공으로 변화해 왔다. 복지의 계획과 실행이 획일화에서 다원화로, 위에서 아래를 지향하며 점점 진화해 온 것이다. 

이것이 성공적이었다면 지역별 커뮤니티 케어 추진의 강력한 인프라가 되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많은 지역에서 읍면동 복지허브화와 찾아가는 복지는 여전히 저인망식 욕구조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역의 실정에 맞게 민관이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36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읍면동 단위에서 통합적으로 연계해 제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잘 하고 있다는 지역의 현황이 이러할진대 자원이 열악하고 역량이 미비한 대다수의 지역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정부가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곤란하다. 읍면동 복지허브화의 사례들를 면밀히 분석하고 평가해 지역 단위에서 커뮤니티 케어를 성공을 위한 다양한 그림들을 제시해야 한다. 커뮤니티 케어 추진한다고 해외 선진사례들을 연구하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내 지역복지 현황에 대한 진단과 대안 마련이다.

커뮤니티 케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꿈틀거려야 한다. 지침과 공문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위만 쳐다보고 있을 일이 아니다. 서울시 00구의 커뮤니티 케어 전략,  광주시 00구 00동의 커뮤니티 케어 전략, 전남 영광군 00면의 커뮤니티 케어 전략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지역 단위의 연구 조사, 토론회, 협의회 등을 활발히 열어서 지역에 맞는 답을 찾고 민관이 협력하는 복지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제도별 칸막이 해소와 연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커뮤니티 케어에서 중요한 요소는 '통합'이다. 개인의 개별적인 욕구가 아닌 복합적인 욕구에 '통합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건의료와 복지돌봄 영역은 물론 자립적인 삶을 지원하기 위한 다차원적인 연계가 필수적이다.

커뮤니티 케어는 특정한 정책이나 개별 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의 전략적 목표와 방향을 의미한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 보다는 분절적이고 복잡한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를 커뮤니티 케어 전략의 요구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 당장 보건의료와 복지돌봄의 연계 체계는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정부는 커뮤니티 케어 성공을 위해 공급자 중심의 분절적 칸막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들을 내놓았다. 보건과 복지 영역의 분절성으로 인한 불편을 유도하는 시스템을 정비해 사업간 연계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읍면동에 각종 서비스를 안내하는 '케어창구'를 만든다거나, 서비스의 연계외 통합적 제공을 위한 '지역케어회의'를 운영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일본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저자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지역포괄케어의 두 원류인 보건의료계와 지역복지계의 교류가 거의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교류와 연계가 미비하므로 지역포괄케어에 대한 이미지와 개념이 분열되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지자체 관계자도, 지역의 실천자도, 연구자도, 의료나 복지의 울타리를 넘어 의료, 개호, 복지의 네트워크라고 하는 의미로서의 지역포괄케어 구축을 목표로 할 필요가 있다"(77쪽)고 충고한다.

재택중심 케어, 현 복지서비스 수준으로 가능할까?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케어는 거택 중심의 재택 케어를 지향한다. 시설에 격리되지 않고 가족부양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의 집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 센터의 주간보호를 이용하시던 한 치매 어르신은 결국 집을 떠나 요양원에 입소할 수 밖에 없었다. 치매가 중증 이상의 단계로 넘어가자 혼자 살던 어르신은 사실상 집안에서의 자립생활이 불가능했다. 24시간 수발과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가족부양은 불가능했다. 가족들은 시설 입소를 결정했다. 어르신의 의사와는 무관한 선택이었으나 가족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이런 케이스의 어르신이 시설에 격리되지 않고 집에서 생활하려면 집을 개보수하는 차원을 넘어 24시간 복지돌봄, 건강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가짓수는 많지만 연계되어 있지 않으니 수많은 보건복지서비스를 돌봄공백이 없도록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서비스의 연계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케어를 위해 필요한 복지서비스의 총량도 적절한 수준인가 따져봐야 한다.

커뮤니티 케어를 구현할 역량은 마련되어 있나?

커뮤니티 케어 성공을 위해서는 전문 인력 확보가 관건이다. 저자는 지역포괄케어를 담당할 인재상으로 ① 복합적인 문제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할 수 있고 여러가지 사회자원을 활용하여 종합적인 지원계획을 짤 수 있는 인재, ② 복지서비스 제공의 담당자로서 특정분야에 관한 전문성 뿐만 아니라 복지서비스 전반에 관해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 기능을 가진 인재가 요구된다(121쪽)고 설명한다.

일본은 지역 단위에 설치된 '지역포괄지원센터'에서 이러한 분야횡단적인 지식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각종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 제공하는 '케어 매니지먼트' 기능을 수행한다.

전문인력 양성과 더불어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 전환도 중요한 문제다. 여전히 가사도우미 정도로 취급되는 돌봄노동에 대한 편견과 낮은 인식을 극복하고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 돌봄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돌봄 노동이 존중받아야 질적으로 높은 돌봄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커뮤니티 케어의 종착역은 '마을 만들기'

일본 후생노동성이 2016년 5월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발표한 '경제, 재정 재생 계획에 따른 사회보장개혁의 추진'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포괄시스템은 '고령자나 개호보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장애인 복지, 육아, 건강증진, 생애교육, 공공교통, 도시계획, 주택정책 등 행정이 관련되는 광범위한 테마를 포함한 지역만들기'라고(106쪽) 기술한다.

지역포괄케어를 주민과 지역의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원이 세대와 분야를 초월해 연계함으로써 지역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지역공생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 구조, 플랫폼으로 심화시킨 것이다.

커뮤니티 케어의 종착역은 '지역 주민들이 공생하며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이다.  제도적 돌봄과 사회적 돌봄을 통합하는 것이면서 마을공동체의 연대에 기반한 호혜적 돌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커뮤니티 케어는 자주성과 공생성이 살아있는 마을공동체 구축, 지역이 중심이 되는 복지분권 확립과 강한 연관성을 갖는다.

이제 막 커뮤니티 케어에 눈 뜨기 시작한 대한민국 복지 현실에서 '한국형'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모델을 아직 없다. 지역 현장에서 다양한 모델이 만들어지고 현장의 힘으로 커뮤니티 케어를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니키류 지음 / 북마크 펴냄 / 2018.11 / 15,000원)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 - 지역포괄케어와 지역공생사회

니키 류 지음, 정형선.김도훈.김수홍 옮김,
북마크, 2018


#커뮤니티 케어 #지역통합돌봄 #지역포괄케어 #노인커뮤니티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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