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지낸 1년, '우리 엄마 맞나?' 싶었다

[서평] 케스터 슐렌츠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등록 2019.01.09 20:06수정 2019.01.0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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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도 아직은 괜찮으시지만 확실히 지난해와 올해가 다르다. 노쇠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사진은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스틸컷) ⓒ tvN

 
친구에게서 오후 늦게 연락이 왔다.

"나 친정에 왔다 가는 길인데 집에 있으면 잠깐 만나자."

친구의 이런 말 속에는 다른 메시지가 숨어 있다는 걸 안다. 지금 위로가 필요하다는 거다.

친구의 어머니는 2년 전 치매 판정을 받았다. 주말마다 친정 부모님 댁에 가서 집안일을 해주곤 하는데, 요즘 들어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신 눈치였다. 오빠가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식 노릇을 제대로 한 건 그 친구였다. 내가 생각해도 효녀였던 친구는 깔끔하고 단정했던 엄마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버거워했다.

"오늘은 엄마가 나를 못 알아봤어. 너무 속상해서 엄마한테 막 소리를 쳤어."

친구는 그게 마음에 얹힌 것 같았다. 걸리는 게 어디 그것뿐일까. 가까이서 살면 좋을 텐데 그렇지도 못하고, 몸은 건강하시니 요양병원 같은 데 모실 수도 없고. 걱정은 대출이자처럼 대책 없이 계속 쌓이고 있었다.

결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친구의 어머니와 우리 엄마는 79세. 몇 년 전부터 내 또래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거나 병에 걸리거나 치매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우리 엄마도 아직은 괜찮으시지만 확실히 지난해와 올해가 다르다. 노쇠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1년 전부터 엄마는 급격히 약해졌다. 늙고 병든 엄마 때문에 가족 모두가 절망의 늪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이날은 절망의 늪 밑바닥을 찍기 바로 직전이었다. 누나와 남동생 그리고 나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더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독일의 슈피겔 논픽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아직은' 괜찮을 것 같았던 엄마가 쓰러지고 나서 3남매가 병원, 보험, 요양원을 두루 거치며 겪는 험난한 여정의 이야기다. 사실 직면하기 싫은 불편한 주제이지만, 누구나 겪는 문제다. 그래서 독일 사람의 이야기인데도, 우리의 이야기와 너무나 닮아 있다.
 
"그동안 우리 자식들은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않았고, 부모님 역시 자주 들르지 않았었다. 이따금 전화만 할 뿐 각자 자기 삶을 살았다. 그리고 모두가 그런 독립성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삼 남매는 교대로 엄마 집에 가 냉장고를 채워놓고 엄마가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늙어가는 부모,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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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표지 ⓒ 위즈덤하우스


부모가 늙어갈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종종 우리를 당혹하게 만든다. 나는 독립을 해서 살다가 엄마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지면서 지난해에 엄마 집으로 들어왔다. 원래부터 엄마가 혼자 살기 어려우면 내가 모시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왔던 터라 별 고민이 없었다.

그러나 엄마와 함께 지낸 1년 동안 그런 안일한 생각들이 무너졌다. 긍정 여왕이었던 엄마가 '우리 엄마 맞나?' 싶을 정도로 자주 투덜거렸다. 맛있는 음식점에 모시고 가도 "별로네, 내 입맛에 안 맞아" 하며 김을 빼기 일쑤였다. 엄마는 작은 일에 서운해하거나 노여움을 타기도 했다.

고집도 강력해졌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과정에는 곳곳에 지뢰가 숨어 있었다. '얼마나 사신다고, 잘해드려야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지만, 갈등과 번뇌는 반복되고 나는 종종 못된 자식이 된 것 같은 심리적 범죄자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 책은 늙어가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다른 것을 제시한다. 부모님과 더 늦기 전에 사랑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잘해드리라는 피상적 교훈에 머물지 않는다. 좀 더 현실적인 조언들이 있다.
 
"법률가인 누나는 다행히 몇 년 전에 벌써 노부모와 관련된 주요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다. 덕분에 엄마와 우리는 나중에 아주 편했다. 부모님 두 분 다 사전의료의향서, 건강 및 의료에 관한 위임장에 서명했고 자식들을 위임권자로 지정했다.

아무리 늦어도 중년이 되면 모두가 자기 의지로 이런 대비책을 마련해둬야 한다. (중략) 중병에 걸렸을 때 혹은 의사표현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떤 치료법을 허용하고 어떤 치료법을 거부할지 명확히 밝혀둬야 한다.

또한 의사 표현이 어렵거나 이성적 판단이 힘들 때 은행, 의료보험, 집세, 요양원 등 생활분야 전반에서 누가 결정권을 갖고, 누가 대리자인지 확실히 정해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운명과 재산을 가족이 아니라 생면부지 낯선 사람들이 좌지우지할 위험이 있다." -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또한 이 책에서는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이 될지도 모르는 곳, 요양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직진한다.

죽음의 과정을 준비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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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엄마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스틸컷) ⓒ tvN

 
저자는 몇 주 동안 항암 치료를 끝낸 엄마를 받아주고 원기를 회복시켜줄 요양시설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때 병원 사회복지과 직원이 의료보험조합에 위급요양등급심사를 신청해 주었다. 그것이 요양원 자리를 얻을 기회를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험에도 익숙해졌다.

우선 의료보험조합에 노인 장기요양 1등급 판정과 완전 요양을 신청했고, 형제들끼리 일도 분담했다. 동생이 가족 재무 담당자로서 요양원, 의료보험조합, 방문의료서비스, 식사 배달 서비스 등등 모든 고지서를 처리하기로 했다. 서로가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거치며 저자의 어머니는 암을 치료했고 여러 번의 낙상을 극복했고 다시 자립해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발전했다. 그들 모두 함께 어떻게든 해낸 것이다.
 
"엄마는 '꾸물대는 늙은이들만 있는 곳'이라며 요양원을 싫어했다. 자기도 늙었으면서. 그러나 엄마는 '내가 여기 있는 게 낫다는 거지?'라는 갑작스런 이해심을 발휘하며, 암, 요양원, 그리고 '늙고 병든 할머니'로 맞이하게 된 모든 순간들을 특유의 터프함과 뻔뻔함으로 이겨냈다. 엄마는 다시 건강해졌다. 하지만 이 여정이 엄마를 어디로 데려갈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엄마는 지난 해, 예년에 비해 많이 아팠다. 몸이 힘드니까 짜증도 자주 냈고, 나에게 잔소리를 듣고는 서러워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엄마는 일주일에 세 번 아쿼로빅을 다니고, 정기검진 날짜를 꼬박꼬박 챙기며, 이웃들과 명랑하게 지내신다. 그렇지만 엄마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나도 아직은 이렇다 할 대비와 계획을 세우진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적어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엄마와 나의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 엄마가 지금보다 더 약해지거나 거둥이 불편해지면 어떻게 돌봐야 할지, 재정적인 문제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 누구에게나 꼭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 같은 과정이다. 나와 내 부모의 일이기도 하지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내 문제이기도 한 까닭이다.

그렇지 않아도 몇 주 전부터 엄마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겠다며 근처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같이 가자고 부탁하신 게 생각났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자신이 나중에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향을 직접 문서로 작성해 두는 것이다.

내친김에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서 나도 작성했다. 이상할 줄 알았는데 죽음을 위해 한 가지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하니 의외로 마음이 개운하다.

부모의 '죽음'의 과정을 준비한다는 건 불안하고 슬프고 불편하다. 하지만 크게 일렁거리는 감정의 파도가 지나고 나면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우울한 근심도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의 저자는 말해준다. 피하고 싶은 주제인데 시종일관 재미있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그게 바로 이 책의 가장 빛나는 장점이다.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 늙은 엄마라도, 아픈 엄마라도, 고집불통 엄마라도

케스터 슐렌츠 지음, 배명자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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