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에게 막말한 초등학생, 어디서 배웠을까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39] 습여성성(習與性成)

등록 2019.01.09 17:11수정 2019.01.0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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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엄마와 아이가 무엇을 먹으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무어라 재잘거리는 아이의 말을 일일이 받아주는 엄마의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그렇게 걷던 엄마가 먹던 것을 싼 포장지를 그냥 길가에 휙 버렸다. 그러자 대여섯 살 아이도 따라서 포장지를 버리고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러고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가던 길을 갔다.


​뒤에서 걷다가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본 내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 아이의 웃음이 너무 천진무구해서 더 슬펐다. 자식에게 본보기가 되는 부모의 행동이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낄 만큼 비교육적이었다.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어른의 행동을 본떠서 따라 하니까 늘 조심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아이들이 보고 듣는 것들을 그대로 흡수하는 스펀지와 같으므로 가정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회 학습 이론>으로 유명한 캐나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1960년대 초반, 유치원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하였다. 한 그룹에는 어른이 보보인형을 발로 차고 넘어뜨리는 폭력적인 동영상을, 다른 그룹에는 어른이 보보인형을 소중히 어루만지고 다정스럽게 말을 거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런 후에 실제로 인형이 있는 방에 아이들을 두고, 인형을 어떻게 다루는지 관찰하였다.

그 결과 아이들은 동영상에서 본 어른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공격적 언어(욕설, 비속어)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실험했는데, 아이들이 거울처럼 따라서 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는 심리학과 교육학에 크게 이바지했고, 현재까지도 교육학의 기초이자 중요한 이론으로 손꼽히고 있다.

아이들은 관찰을 통해 학습한다. 관찰을 통해 배우는 대상을 모델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모델은 부모 또는 주 양육자이다. 아이들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인 가정에서 모든 것의 처음을 경험한다.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고, 표정을 보고, 냄새를 맡는다. 아이들은 부모가 가르친 것보다는 부모가 행하는 모습을 보고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일본의 예절의식

많은 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서 아이들이 멋대로 뛰놀아도 그대로 두어 층간 소음 문제가 적잖게 벌어지곤 한다. 또한,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굴어도 그냥 내버려 두는 사람도 있다. 이유인즉 아이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부모의 눈에는 씩씩하고 활발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남들에게는 폐를 끼치는 몰상식한 행동이다.

<탈무드>에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매'는 회초리가 아니라, 때에 맞는 꾸중, 충고, 타이름, 격려 등이 될 것이다. 시의적절한 꾸중, 충고, 타이름은 자식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한다. 자식의 훈육을 방치하면 자식을 망치게 된다.

부모로부터 제한받지 않고 자란 탓에 부모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들은 세상으로 나가서도 제멋대로 행동하기 쉽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자기감정 조절을 못 한다면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우리는 인성 공부가 안된 자들, 특히 가진 자들의 갑질에 상처받으며 공분하고 있다.

조지 프리드먼은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국제정세 분석가이자 미래 예측가이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1999년 코소보 사태를 정확하게 예견하여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100년 후>라는 저서에서 21세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정치, 외교적 상황에 대해 분석을 하였다. 동아시아 대표 3개국인 한국, 중국, 일본의 미래도 예측하였는데, 일본이 무서운 단결력과 교육수준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100년간은 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한다고 예측하였다.  

많은 한국인이 그렇겠지만, 나는 일본에 관한 안 좋은 선입견을 품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원한이 있고,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통해 은연중에 그런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혔다고 할 수 있다.

몇 해 전 동경 국제도서전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일본에 갔었다. 일본에서 며칠 지내면서 보고 느낀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이었다. 대체로 그들은 질서 정연했고, 조용하고 친절했으며, 거리가 담배꽁초 하나 없이 유난히도 깨끗하고 청결했다. 

일본의 지하철을 탔을 때 가방을 등에 멘 10세 정도의 아이들 셋이 나란히 서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독서는 참 좋은 습관이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독해력이 좋고, 지성적이다. 인문학적 덕목을 내면에 차곡차곡 쌓은 사람은 말도 품위가 있고 행실도 아름답다. 일본인의 책 읽는 모습은 신칸센, 공원 벤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솔직히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으로 몸에 밴 독서력이 바로 저력의 원천일 것이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은 매우 빈약하다.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어른들이 책을 안 읽는데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배울 건 배워야 한다
 

習與性成 습관이 오래되면 마침내 천성이 된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 이명수

 
일본인의 수준 높은 공중도덕심은 철저한 가정교육에서 길러진 것이다. 일본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습관적으로 '메이와쿠 카케루나(迷惑を掛けるな)'라고 말한다.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는 뜻의 이 말은 일본의 가정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다. 또한, 자신이 돈을 주고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을 일이라고 해도 반드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도록 가르친다. 이는 형식적 예절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조금 느려도 기초에 충실한 것이 일본의 교육 방침이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꼼꼼하게 해나가야 인간관계나 하는 일에서도 실수하는 일이 적을 것은 당연하다. 공동주택에서 생활하는 일본인들은 밤 10시 이후에는 샤워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강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웃집에서 밤늦게 샤워기를 사용하면 물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는 문화 수준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질서 의식과 청결한 거리를 유지하는 깨어 있는 시민의식, 그리고 독서 습관은 우리 국민들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천지원수에게도 배울 것은 배워야 발전이 있다.

<서경>에 '습여성성(習與性成)'이란 사자성어가 나온다. 배운 것을 되새겨 몸에 익히면 자동적으로 행동이 되므로 마침내 천성이 된다는 의미다. '익힐 습(習)'의 갑골문자는 어린 새의 날갯짓이다. 어린 새가 스스로 지속적인 날갯짓을 하여 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수많은 연습 끝에 날개에 힘이 붙으면서 비로소 나는 것이 익숙해지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아름답고 추한지 등을 분별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길거리에 함부로 버리는 등 수준 낮은 행동을 한다. 결국,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 된다. 아무리 쉬운 일도 실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실천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행동의 약 40%는 자신이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무심코 이뤄지는 습관에 의한다고 한다. 독서건 예의범절이건 모든 것이 습관의 산물이다. 좋은 인생을 살고 싶으면 좋은 습관이 몸에 배어 자연스럽게 표현되도록 해야 한다.

나는 가정교육만 제대로 되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대부분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며 자라고 학습한다. 인성교육의 시작과 끝은 가정이며, 교육의 주체는 부모이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속담이 바로 연상되는, 아이답지 않은 영악함과 표독스러움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그런 광경도 보게 되는 삭막한 세상이다. 이제 불과 10세 초등학생이 환갑을 바라보는 운전기사에게 쏟아낸 충격적인 막말과 위험한 행동을 방송을 통해 보고서 소름이 돋았었다. 아이는 어디서 그토록 못된 언행을 배웠을까?

누구나 부모는 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부단한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거창한 설교보다는 부모의 행동이 곧 가정교육이다. 진정으로 자녀가 올바른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부모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부모의 교육 철학은 아이의 미래를 예정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립니다.
#습여성성(習與性成) #습관이 곧 그 사람이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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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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