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추억의 '묵호극장'을 아는가

묵호의 역사와 함께한 영동권 문화의 중심, 묵호극장

검토 완료

조연섭(tbntv)등록 2019.01.07 22:05

ⓒ 사진 동해문화원


강원 동해 '묵호에 가면 거리의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징어, 명태잡이로 황금어장을 누리던 곳이 묵호다.
 

ⓒ 사진 동해문화원


또한 묵호는 '돈을 깍지로 끌어오듯 벌었던 곳이 제빙공장과 목재소 였다, 고 한다. 워낙 많은배가 조업을 했고 어선 현대화가 시작되던 시기, 수협 소속의 제빙공장에서 만드는 얼음은 늘 부족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민간 제빙공장인 삼성제빙과 대원제빙에서 만드는 얼음을 쓸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빙공장과 목재소가 대박을 터트리던 시기가 1970년대 중반 정도다.
 

ⓒ 사진 동해문화원


당시 묵호 발한삼거리 최고의 명소는 바로 <묵호극장>이었다. 가수 윤향기와 윤복희의 어머니인 고전무용가 고향선(본명 성경자)이 공연도중 심장마비로 30세 나이로 사망한 사건이 있기로 유명했던 곳이며 수많은 사람이 영화와 쇼, 악극 등을 보며 기뻐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 영동권 문화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 사진 동해문화원


묵호극장은 극장 주인이 고려목재소를 운영한 관계로 톱밥을 난방용 난로 연료로 쓰면서 겨울철이면 연통이 달아올라 크고작은 화제가 발생하기 일쑤였다고.. 당시 극장을 자주 출입했던 권순일 (남,62)씨는 회상했다.
 

ⓒ 사진 동해문화원


당시 읍내의 중요한 각종행사는 시내 중앙통에 자리했던 이 극장에서 치렀으며 묵호극장 옆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현 강원도의원 김형원 (남,57)씨는 ' 영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에서 촬영기사의 어린 친구로 나오는 소년 <토토>처럼 본인도 묵호극장 영사실에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기억했다.
 

ⓒ 사진 동해문화원


개구석 앞의 문화극장, 보영백화점과 함께 영동권 최고의 번화가로 화려한 역사를 보낸 묵호극장은 겨울만 되면 크고 작은 불이 꼭 몇번씩 나다가 결국 묵호극장은 1978년 완전 전소하면서 화려한 역사를 마감했다.
 

ⓒ 사진 동해문화원


우리 영동권이 전국적으로 부각될수 있었던 것은 1941년 묵호항 개항과 삼척탄광 개발이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6.70년대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수 있었다. 또한 당시 묵호극장이 명성을 떨치던 시기 명태와 오징어,꽁치 등 황금어장 덕에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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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해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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