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반찬을 만들며 엄마를 기억하는 시간

계절과 시간에 충실했던 엄마의 음식... 그렇게 나도 당신이 되어갑니다

등록 2019.01.10 14:10수정 2019.01.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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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고향은 전라남도 순천. 맛깔나게 오이지를 무치고 기가 막히게 김치를 담근다. 내가 볼 때는 고춧가루도 '턱' 소금도 '슬슬' 간 마늘도 '대충' 넣는 것 같은데 완성된 찌개의 맛은 '딱'이다. 엄마는 요리를 참 잘한다. 다만 그 요리의 종류는 반찬과 국, 찌개에 한정돼 있다. 평생 밥상만 차린 엄마는 자격증 없는 한식 요리사다. 

엄마는 동지가 되면 팥죽을 쑤고 복날이 되면 삼계탕을 끓였다. 한여름엔 오이냉국을 새콤하게 무쳐서 내놨고, 다 쉬어버린 김치도 어느 날은 씻어서 된장을 넣고 지져내고, 어느 날은 총총 썰어 맛있게 볶아냈다. 

시기와 절기, 계절과 시간에 맞게 엄마는 음식에 충실했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때와 철에 맞는 음식을 챙기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마음인지를. 그래서 엄마는 항상 싱크대 앞에서, 가스레인지 옆에서 많이도 바빴다.     

새댁인 나는 아직 인터넷 검색 없이는 요리하기가 힘들 때가 많다. 자주 끓이는 김치찌개도 간 마늘을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가끔 무치는 나물도 국간장을 넣어야 하는지 진간장을 넣어야 하는지 매번 헷갈린다. 들어가는 재료와 정량 그리고 시간을 알아야 완성해 낼 수가 있다. 나는 음식의 간을 검색으로 맞춘다.     
 
서너 일 밥을 했으면 하루 정도는 시켜 먹어야 하고, 귀찮아서 번거로워서, 장 보는 대신 사 먹는 경우도 있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손으로 밥을 했는데, 나는 아무 일이 없어도 내 손으로 밥을 시킨다.   

엄마의 반찬을 만들며 엄마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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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저녁상을 차리러 냉장고를 열어보니 열무김치에서 쉰내가 풀풀 났다. ⓒ wikimedia commons


 
그러던 어느 날 저녁상을 차리러 냉장고를 열어보니 열무김치에서 쉰내가 풀풀 났다. 버리려고 하는 찰나 짭짤하면서도 새콤한 엄마의 열무된장지짐이 떠올랐다. 엄마는 가끔 남은 찬밥에 물을 말아 된장을 넣고 지진 열무김치를 냄비째 놓고 밥을 먹었다.

쉬어버린 열무김치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 대신 물에 씻어 냄비에 담고, 된장을 툭하고 퍼 넣었다. 하얀 설탕도 솔솔 뿌리고, 다진 마늘도 대충 넣고, 고소한 들기름을 두르고 휘휘 저어 물을 붓고 끓였다. 그 기름이 '참' 인지 '들'인지 순간 헷갈렸지만, 엄마는 무언가를 볶을 때는 노란 뚜껑의 들기름을 넣어야 맛이 좋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음성지원이 됐다. 그렇게 나는 검색 없이 반찬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엄마의 반찬을 내가 만든다. 수백 번 수천 번을 먹었을 내 입과 속은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의 맛을. 찬밥은 없었지만 따뜻한 밥에 기어코 찬물을 말고, 일부러 냄비째 김치 지짐 하나만을 놓고 밥을 먹었다.

내가 보았던 엄마의 밥상. 정신없이 먹다 보니 젓가락도 없이 먹었다. 진정한 밥도둑. 엄마가 찬밥에 반찬 하나를 겨우 놓고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워했던 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러기엔 너무 맛있는 밥상이었다.  
    
"엄마! 나 오늘 엄마가 해주던 김치지짐 만들어 먹었다? 된장 넣고 지져 먹었어!"

"맛있지! 그게 얼마나 맛있는 건데, 입맛 없을 때 해 먹으면 좋아! 우리 딸 밥 많이 먹었어?"

"응! 두 그릇 뚝딱 먹었어!"


딸이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결혼을 하고, 엄마의 자리를, 엄마의 생활을, 조금씩 이해하게 될 때면 더 이상 엄마가 애잔하지만은 않다. 그랬구나. 이해하게 된다. 이해는 인정의 다른 표현이라, 나는 엄마를 인정하며 점점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들을 산다.

엄마의 반찬을 내가 만들고, 엄마의 하루를 내가 살아보고, 엄마의 삶을 기억한다. 나는 엄마만큼 음식과 가족에 충실하지 않지만 겨우 흉내내 보며 그 위대함을 어렴풋이 짐작해 볼 뿐이다.

엄마는 자격증 없는 한식 요리사가 아닌 자격증이 필요 없는 한식 요리사, 생의 전문가, 나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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