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이처럼 화려한 범죄기록을 본 적 없다

[나는 왜 '나쁜 놈'을 변호했나 7] 13범의 재원이

등록 2019.01.12 19:44수정 2019.01.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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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청소년을 지원하면 언제나 '피해자 지원도 부족한 마당에 왜 가해자를 돕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도대체 가해 청소년들은 왜 지원을 받아야 할까. 전국에서 유일하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돕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가 만난 청소년들의 사연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기사 내용은 실화를 토대로 했으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을 쓰고 세부 사항도 재구성했다.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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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6월 27일 학교폭력 등의 문제를 일으켜 관심이 요구되는 청소년들이 서울남부지방법원을 방문해 절도혐의로 기소된 소년범 재판을 방청하고 있다. 이날 재판 방청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중ㆍ고등학생들이 실제 소년범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잘못을 뉘우치게 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 연합뉴스


사건을 맡으면 검찰이 가지고 있는 사건기록을 복사해 온다. 적으면 300쪽 정도, 길면 1000쪽이 넘는 사건기록을 책상 위에 펴 놓고 한 장씩 넘기며 사건을 알아간다. 수사관과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피의자와 피해자의 조서, 각종 보고서, 현황보고, 현장 사진 등으로 이뤄진 수사기록은 피의자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과 검찰이 노력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오로지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류, 수사기록에는 의외로 피의자에 대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재원이는 이미 검찰 조사까지 마치고서 나를 찾아 왔다. 사람을 때렸다고 덤덤한 표정으로 털어놓았다. 이미 몇 번 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좀 불안하다고 했다. 그저 "이 녀석도 험하게 살았구나"고 생각했다. 여느 때와 같이 검찰에서 사건 자료를 복사해 왔다. 하지만 '범죄경력자료조회 회보서'를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범죄기록은 한쪽이 부족해 다음 쪽까지 이어졌다. 하나, 둘, 셋... 무려 13건이나 되었다. 하지만 재원이는 이제야 고작 18살이었다.

2014.05.30. 특수절도 인천부천지청 소년보호사건
2012.12.26. 특수절도 인천부천지청 소년보호사건
2012.12.05. 특수절도 인천부천지청 소년보호사건
2012.11.29. 특수절도 인천부천지청 소년보호사건
2012.11.29. 특수절도 인천부천지청 소년보호사건
2012.09.19. 도로교통법위반 인천부천지청 소년보호사건
2012.08.31. 폭행 인천부천지청 소년보호사건
2012.08.22. 상해 인천부천지청 소년보호사건
2012.01.18. 공갈 인천부천지청 소년보호사건
2011.10.17. 특수절도 인천지방검찰청 소년보호사건
2011.06.28. 특수절도 인천지방검찰청 소년보호사건
2011.06.28. 폭력행위등 인천부천지청 기소유예
2009.12.16. 특수절도 인천지방법원 소년보호사건


13건의 범죄기록이 모두 별건은 아니었다. 한 번에 2~3건을 동시에 처벌받기도 했다. 때문에 처벌을 13번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이처럼 화려한 범죄기록을 본 적은 없었다. 한 쪽 반에 이르는 범죄기록을 보는 순간 "이 녀석을 어떻게 변호하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고서 들은 생각은 "이렇게 어린 청소년이,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였다.

전과 소년범 비율이 줄지 않고 있다

최근 청소년 범죄의 특성은 전체 범죄율은 감소하는 반면 누범률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특히 3~4범 이상 누범자들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범죄율이 하락하는데 오히려 누범률은 증가한다는 것은 새롭게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한번 범죄를 저질렀던 청소년들은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뜻한다. 대검찰청 범죄백서에 따르면 전과 소년범의 비율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간 전과 소년범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13년에는 그 비율이 역대 최고치로 무려 41.5%나 되었다. 이는 당해 검거된 소년범 100명 가운데 41.5명이 과거 법원으로부터 벌금형 이상의 유죄판결을 1회 이상 받아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2014년, 2015년의 경우도 전과 소년범의 비율은 40%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누범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특성이 있기에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정확히 통계적 수치로 잡히지는 않지만 누범 청소년들의 특징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처음 범죄를 시작한 나이가 낮으면 낮을수록 누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어린 나이에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하면 평생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만성적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린 범죄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해체된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처벌을 받고 다시 돌아와도 여전히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기댈 수 없는 가정 또는 냉혹한 거리일 뿐이다. 가정이 아닌 거리로 나온 그들은 자신을 범죄로 내몰았던 환경 속에서 다시 범죄에 이끌리게 된다.

아버지의 부재가 오히려 기뻤다

재원이는 해체된 가정에서 어린 나이에 범죄를 시작한 전형적인 사례였다. 재원이의 아버지는 매우 폭력적이었다. 폭력은 술에 취했을 때 더욱 심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어머니는 재원이보다 두 살 많은 재원이 누나를 낳고 아버지와 3년을 더 산 뒤 이혼했다. 이혼 후 어머니는 재원이 남매와도 연락을 끊었다. 4살 때 엄마와 헤어진 재원이에게 '엄마'는 "자기를 낳아 준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는 명사로만 존재했다.

어머니와 이혼 후 아버지의 폭력은 더욱 심해졌다. 매일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재원이 남매를 때렸다. 그날도 아버지는 술에 취해 대문을 열었다. 늦은 밤 강철로 만들어진 대문이 닫히면서 만들어낸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에 있던 재원이 남매에게까지 들렸다. 남매는 다시 시작될 폭력에 떨어야 했다. 차라리 맞을 때는 괜찮았다. 폭력이 오기 전, 아버지가 다가오는 그 순간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날은 아버지가 오기까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매는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언제 문이 열릴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남매는 한참을 두려움에 떨다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가 보았다. 아버지는 대문 앞에 넘어져 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대문을 닫고 들어오다 마당에 넘어졌다. 만취해 있던 그는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를 잃은 재원이 남매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고 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재원이 남매에게 평화가 찾아 왔다. 저녁만 되면 의례적으로 찾아왔던 아버지의 구타가 없어졌다. 아버지의 죽음은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했다. 재원이는 아버지의 부재가 오히려 기뻤다.

엄마 목소리를 처음 들은 16살

하지만 아버지의 억압에서 벗어난 재원이는 빠르게 일탈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곧이어 가출을 했고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렸다. 낮에는 자고 밤에 돌아다니는 생활이 이어졌다.

재원이가 첫 비행을 저지른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특수절도였다. 형사입건과 출석미달로 2학년에 진급하지 못했다. 다시 1학년을 다니다 학교를 그만뒀다. 그리고 2년 후 16살이 되던 해부터 1년 반 동안 총 11건의 비행을 저질렀다.

사람을 때리고 돈을 빼앗았다. 자동차도 훔쳤고 면허 없이 운전도 했다. 보호관찰 기간 중 다시 비행을 저질렀다. 모두 소년사건으로 처리 되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 다음 날 절도로 체포되었다. 1년을 넘게 소년원에서 지내고 출소했다. 하지만 재원이는 6개월 후 다시 특수절도로 체포되었다.

재원이가 잊혀진 기억이 아닌 생생한 현실로 엄마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16살이 되어서였다. 소년원에 입소한 재원이에게 엄마가 전화를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년원이 수소문 끝에 엄마를 찾아주었던 것 같다. 명사로만 존재하던 '엄마'가 감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엄마'라는 단어가 아닌, 그의 존재가 귀 속으로 들어와 고막을 울렸던 그 순간을 재원이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재원이는 떨고 있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 '엄마'라는 여자도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이 수화기를 통해 재원이에게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엄마'에게 두 번 버림받았다

법률지원센터를 찾은 재원이는 두 가지를 부탁했다. 첫 번째는 당연히 변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부탁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17살 청소년이 변호사를 찾아와 어렵게 꺼낸 말은 나를 인간이 가진 어떠한 형용사로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충격에 몰아넣었다.

"엄마에게 소송을 걸고 싶어요."

엄마는 소년원에 여러 번 면회를 왔다. 엄마에 대해 남아 있는 기억은 하나도 없었지만, 마치 오랫동안 간직했던 기억 속의 엄마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다. 소년원의 면회소에서 엄마를 만나면서 16살 재원이는 새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엄마는 소년원에서 나온 재원이를 데려 갔다. 엄마는 재혼했고 재원이보다 3살 어린 동생도 있었다.

다시 만난 엄마, 자신을 때리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동생. 재원이는 이렇게만 산다면 매일이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재원이의 행복은 길지 못했다.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지 몇 달 되지 않아 동생과 싸웠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동생의 얼굴에 멍이 들었고 코피가 났다. 엄마는 우는 동생을 안아 달래며 재원이를 노려보았다.

"너! 소년원까지 갔다 왔는데, 아직도 나쁜 버릇을 못 고친 거야!"
"그 버릇 고칠 때까지 찾아오지 마!"


동생을 안고 자신을 내쫓는 엄마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재원이는 그 길로 집을 나갔다. 그렇게 몇 개월을 거리에서 살다 문득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집으로 찾아갔지만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렇게 재원이는 '엄마'라는 여자에게 두 번 버림받았다.

돌이킬 수 없는 일, 아쉬움과 죄책감

하지만 재원이는 여전히 엄마가 보고 싶었다. 소송을 걸어 달라는 것은 엄마가 사는 곳을 알고 싶어서였다.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재원이에게 누군가 소송을 걸면 주소를 알 수 있다는 말을 해줬다고 한다.

사실조회 등을 통해 엄마의 주소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재원이를 두 번이나 버린 '엄마'를 찾아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 소송까지 해가며 엄마를 찾는다고 해도 그것이 재원이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결국 어머니 문제는 전문 상담사에게 의뢰했다.

재판이 끝난 후 재원이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렇게 재원이는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잊었던 재원이에게 연락이 온 것은 다시 사고를 치고 나서였다. 변론을 했고 벌금형이 나왔다. 300만 원. 재원이가 낼 수 없는 돈임은 명확했다. 300만 원을 메우기 위해 재원이는 노역을 살아야 할 것이다.

벌금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고자 항소를 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사이 다시 재원이와 연락이 끊겼다. 재원이의 소재는 2심 법원에서 찾아 주었다. 다시 사고를 저지른 재원이는 구치소에 있었다. 그 사이 성인이 된 재원이에게 우리 사회는 더욱 냉정할 것이다.

해체된 가정에서 일찍부터 비행을 저질러온 재원이는 이제 만성적 성인 범죄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엄마를 찾아 달라는 재원이를 상담사에게 연계시켜 주지 않고 직접 엄마에게 데려다 주었다면 재원이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만 진한 아쉬움과 죄책감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년법 #소년보호사건 #청소년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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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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