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 3주... 멋진 신세계였던 미국의 배신

[민박집 주인의 뉴욕 이야기1]

등록 2019.01.09 14:05수정 2019.01.0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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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업무가 마비된 지 벌써 3주째. 정부 산하 약 80만 명 공무원들의 입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공항, 병원들이 지장을 받고 있고 국립공원의 쓰레기가 산을 이루기 시작하고 있다고. 이 문제의 핵심은 '장벽' 예산을 둘러싼 진통이다.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아 불법 이민자들을 막자는 대통령과 쓸데없는 짓이라는 의회의 싸움이 3주째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의회의 싸움 3주째
 

연방정부에 속하는 기관의 임시 폐쇄를 알리는 포스터 ⓒ 최현정

난 베이비붐 세대 한복판에서 태어났다. 많을 땐 70번까지 있었던 교실에서 아침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받았다. 새 학기가 되면 다른 학년에서 책상들을 가져와 촘촘히 끼여 앉아야 했고 연합고사, 학력고사는 우리 때 항상 최고의 경쟁률이었다. 그런 세대인지라 음악 감상 같은 '호사스러운' 수업은 손에 꼽힌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드보르작을 들었던 어느 봄날 졸린 오후가.

주입식이 익숙한 우리에게 중년의 음악 선생은 테이프서 나오는 소리를 압도하는 하이 톤으로 설명을 했다. 이 곡은 체코 출신 드보르작이라는 작곡가의 작품이다. 뉴욕 국립 음악원장으로 있던 시기에 발표한 9번 고향곡, 일명 신세계 교향곡이라고 부르지. 스타카토로 강조한 신. 세. 계. 에 아이들은 남대문시장 옆의 백화점을 먼저 떠올렸다. 예상했다는 듯 선생은 칠판에 휘휘 지도를 그리며 설명을 계속한다.

자아 여긴 유럽 땅, 고향이지만 살기가 힘들었던 사람들이 있었어. 종교적 박해나 정치적 탄압,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랬겠지?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바로 요기 아메리카 대륙으로 갔던 거야. 가족,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말이지. 그 사람들한테 아메리카 땅은 어떤 곳이겠어? 자유와 풍요가 있는 바로 신. 세. 계. 였던 거였던 거야. 이해가 돼?

내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은 신세계였다. 고향의 재산을 처분한 이민자들이 꾸역꾸역 엘리스 섬에 발을 디뎠다. 땅을 개간하고 공장을 돌릴 노동력이 필요했던 신흥 개발도상국 미국은 그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하층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가난했지만 그래도 고향보다는 나았거나 다시 돌아갈 순 없었기에 죽기 살기로 적응했을 것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아메리카의 아이들처럼. 이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바탕으로 미국의 공장과 산업은 24시간 연기를 내뿜을 수 있었다. 그렇게 축적된 자본이 지향하는 한 부분이 바로 예술에 대한 욕구였을 것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지 400년이 되던 1892년, 유럽에서 각광받던 작곡가 드보르작이 뉴욕에 도착한다. 가난한 이민자가 아니라 뉴욕 국립 음악원장으로 초빙된 것이다. 당시 1만 5000달러라는 엄청난 보수, 여유 있는 작품 활동, 자유로운 여행이 보장됐다. 콜럼버스의 신세계가 음악의 신세계를 만난다는 성대한 제목의 환영 행사는 떠나 온 유럽 땅을 향한 자격지심과 자존심 같은 감정이 얽혀있지 않았을까? 드보르작이 뉴욕에서 발표한 교향곡 9번의 이름은 1년 반 전 환영행사의 제목처럼 <신세계>. 뉴욕타임스는 "이 새로운 교향곡은 미국에도 예술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라고 마음껏 환호했다.

127년 전의 뉴욕의 이민자들과 서울 변두리에서 나고 자란 베이비붐 세대의 모습은 매우 닮았다. 농사를 지어서는 입에 풀칠하기 힘들었던 이들이 도시로 올라와 빈민으로 자리 잡고 헐한 사람값이 기계를 메꾸는 틈바구니 속에서 용케 살아남았다.  가난한 이민자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결코 관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작정 상경한 서울역 앞의 무수한 우리 언니, 누나들처럼. 하지만 그 이민자들은 잡초처럼 꿋꿋이 살아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뉴욕의 지하철을 만들었고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다리를 건설했다. 쿨리라고 불리는 중국 이민자들은 시에나 네바다 산맥을 뚫고 철도를 건설했다. 하지만 이민자가 건설한 나라의 2019년은 그들의 조상을 배신중이다.

벽을 쌓고 군대를 풀어 현대의 이민자들을 막아내고자 한다. 자유와 정의의 신세계, 굶주림을 극복할 신세계였던 나라는 지금 장벽을 쌓고자 정부를 폐쇄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신세계는 드보르작이 그린 희망찬 <신세계>가 아닌 헉슬리가 소설속에서 비꼬았던 비인간적이고 그로데스크한 그 <멋진 신세계>는 아니길 빌어본다
#연방정부폐쇄 #이민자 #베이비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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