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크리스마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내맘대로SF] 제1탄: 일흔 노모가 살았으면 하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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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crazyli)등록 2019.01.11 16:10
지난달부터 가족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몇 해전 아빠를 먼저 떠나보내면서 가족들과의 추억을 좀 더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각지에 흩어져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신문 형식으로 모아보겠다는 제안을 했고, 새해의 첫날 두 번째의 신문을 발행했다. 2호를 발행하기 전에 가족 구성원들에게 '2025년의 어느 날'이라는 주제로 백일장을 제안했지만 열기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2025년이라는 근미래의 어느 날을 다양한 연령, 지역 및 직업을 가진 가족들에 대입하여 상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 소식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 만들었으면 좋았겠지만, 더 이상 늦어지기 전에 추억을 모으기 시작했다. ⓒ 이창희

 

'4차 산업혁명은 거짓말이다!'

혹자는 이런 과격한 표현을 써가면서 정보혁명의 시대가 가져올 변화를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만, 급격한 기술의 발전은 분명히 세상을 크게 바꿔내고 있다. 전문가 집단에서는 자신들이 속한 영역의 이익을 고려하여 이러한 변화에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던 변화는 바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다가올 미래를 눈앞에 그려보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100년 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면 허무맹랑할 수 있으니, 미래학자들이 기술 변천의 중요한 전환기로 지적한 2025년을 정해놓고 우리 삶의 변화를 상상해 보고 싶다. 다가와버린 미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면 쓸모 있는 상상이 아닐까? 첫 시작은 우리 가족의 대장인 엄마의 하루에 대한 상상으로 출발한다.

제1편: 2025년 12월 23일 - 엄마의 외출

배경 소개: 엄마는 1944년 생. 아빠가 돌아가신 후, 충남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혼자 지내고 계심. 마을은 거의 80세 이상의 어르신이 혼자 혹은 노부부 두 분이 지내시는 노인 가구로 구성됨.

"어르신, 내일 인천 가신다고 했죠? 아침 8시까지 집 앞에 차를 배정해 드리면 될까요?"
"음. 7시 반까지 와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터미널에서 8시쯤 출발하는 인천행 버스 표도 예약을 해 주시고요. 표는 제 전화기로 보내주세요. 고마워요."

내일은 인천 아들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모임을 할 계획이다. 각 지역에 흩어져 사는 아이들 가족도 시간을 맞춰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 동네의 '마을 돌봄 서비스' (이하, 돌봄 서비스)에 전화를 하여, 버스 터미널까지 가기 위한 차량을 요청하고 인천까지 갈 버스편도 예약해 달라고 부탁했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예약하겠지만, 여든이 넘어가니 전화기의 앱을 설치하고 실행시키는 것도 배우기 쉽지 않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171번으로 전화하면 돌봄 서비스 도우미에게 필요한 사항을 도와달라고 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스마트폰에 메시지로 전달된 버스 티켓을 사용하는 것은 할 수 있으니까.

마을 돌봄 서비스는 이런 것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매일 아침마다 마을의 70세 이상 노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도울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도울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해 준다. 돌봄 서비스는 면 소재지에 있는 다양한 공공기관을 연결해 주는 역할도 같이 하고 있으니, 몰라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도 없다. 세상의 변화가, 나의 나이듦을 쏜살같이 앞서 나가서 힘겨웠는데, 걱정이 줄었다.

 

마을돌봄 서비스의 개요 공동체의 공공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관간 협업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공 서비스가 실행되는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 이창희

 

우리 마을엔 거의 대부분 혼자 지내는 노인들의 독거 가구라서 걱정되는 점이 많았다. 내 아이들도 거의 매일 안부 전화를 하는데, 혹시라도 내가 연락이 안 되면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보니, 그 아이들도 내가 걱정되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내가 1시간 정도 전화를 받지 못했더니, 큰 딸이 경찰서에 신고를 한 적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싶은데, 늙은 내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씁쓸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돌봄 서비스가 시행된 다음에는 아이들도 걱정을 크게 덜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만큼 부담스러운 삶도 없는데, 아이들이 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니 돌봄 서비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아랫집에 홀로 계신 아흔의 할머니가 계속 걱정스러웠는데, 돌봄 서비스가 시행된 다음부터는 나도 안심이 된다. 여든의 노인이 되어 아흔의 어르신을 챙겨보는 것도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는데, 사회의 시스템이 노인들의 삶도 챙겨주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된다.

'소변 확인. 이상 없음.'
'심장 박동 확인. 이상 없음'

화장실에 가서 물을 내리려 하니, 양변기를 통해 확인된 건강 정보가 건강 관리 시스템에 전송된다며 안내를 한다. 이 내용은 돌봄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한 데이터 플랫폼을 통해서 주치의에게도 전달된다고 한다. 혹시라도 건강에 이상 신호가 발생하면, 주치의를 통해 병원에 나오라며 예약 날짜까지 정해서 알려주니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병원에 갈 날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가의 의료보험으로 이런 서비스까지 가능할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나의 건강 정보를 국가의 플랫폼에 공유해야만 한다는 것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주치의 제도와 연동이 되어 내가 공개를 허락한 일부의 사람들 안에서만 공유할 수 있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게다가 국가는 몇 년째 국민 주치의 시스템의 정보에 대한 보안 강화를 주요 성과로 홍보하고 있으니, 너무 신경을 쓰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이들을 한참 키워야 했던 1980년대에는 의료보험증이 귀해서 이웃의 보험증을 빌려서 사용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국민이 주치의 시스템 내에서 관리를 받고 있으니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이들과 손자들의 세상이 좋아지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2020년 경에는 의료 민영화에 대한 갈등으로 세상이 한동안 시끄러웠었는데, 수개월에 걸친 협의를 통해 의료 공공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정비된 바 있다. 의료 제도의 개선을 놓고 진행된 토론회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열려있었고, 독재자의 시대에 익숙했던 노인인 내가 보기에도 놀라울 만큼 성숙한 논쟁이었다. 

참! 주치의 시스템에는 잠도 없다. 자는 동안에도 수면 상태 및 건강 위험 상황에 대한 정보가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 밴드를 통해 서버에 자동으로 전달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1인 가구가 급격하게 확대되면서, 고독사가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었는데, 이제 '혼자 죽기'는 불가능하다. 며칠 전에도 이웃의 어르신이 주무시는 동안 갑작스럽게 심장 이상이 왔었는데, 주치의 시스템에 경고가 전달되면서 119가 5분 만에 도착하여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어르신은 오늘도 건강하게 밭에 나오셨다. 이 나이가 되면 겁날 일이 있을까 싶지만, 혼자 맞이하는 죽음만큼은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요즘에는 온 세상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말에 태어난 나는 80여 년의 세월을 통해, 대한민국의 독립, 한국전쟁과 독재의 시대, 민주화의 열기, 촛불 혁명까지 숨 가쁜 세월을 살아냈다. 촛불 혁명 기간 동안 아이들이 광장에 나갔다가 못 들어올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2025년의 대한민국은 그 동안의 숨 가쁜 변화가 무색할 만큼 놀랍게 변화하고 있다. 아직도 손으로 쓰는 편지가 익숙한 내가 이런 세상을 살게 될 것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변화에 멀미가 날 즈음, 세상은 우리에게도 자리를 허락해 주었다. 뒷방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했을 수도 있는데, 이 나라가 우리의 삶을 존중해 주고 있다. 코언 형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했는데, 나는 있다고 믿는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났더니, 집 앞에 어제 배정을 부탁한 차량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대도시에서는 2022년부터 자율 주행 택시가 시험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마을에서는 돌봄 서비스가 배정해 주는 차를 이용하게 된다. 점점 자율 주행 차량으로 바뀌는 중이지만, 택시처럼 기사까지 같이 오시니 나 같은 늙은이의 외출에는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요즘에는 노인들의 외출을 위한 차량 배차는 공공 교통수단의 영역으로 수용되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비용의 부담도 적다. 2019년에 카풀 서비스 상용화를 두고 택시업계와 큰 갈등을 겪었었는데, 어르신 돌봄 서비스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밖에서 경적소리가 들린다. 얼른 짐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며 집안 관리 시스템에 인사를 한다.

"소리야. 외출 모드로 바꿔줘. 애들한테 엄마 출발한다고 메시지 보내주고."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집안 관리를 외출, 방범 모드로 변경했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손자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선, 오늘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먼저 기대되지만 말이다. 다들, 곧 만나요!

여기까지가 마음대로 상상해 본 2025년의 하루이다. 엄마가 고향에서 혼자 지내기 시작한 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 오면 불안하다. 모시고 살면 되지 않냐고 되묻는 친구들도 있지만, 엄마에게도 엄마의 삶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쉽게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니, 불안은 고스란히 가족들의 것이었다. 이렇게 상상한 하루는 나의 불안이 만들어 낸 이상이자, 근미래의 대한민국은 불안을 가족의 문제라며 떠넘기지 않는 곳이기를 바라며 그려본 상상이다.

공학을 전공한 기술자의 입장에서 기술의 완성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치열한 토론과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전략의 수립이다. 물론, 한술에 배가 부를 리는 없다. 차근차근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함께' 그려나가야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결국,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위한 나라가 될 것이다. 끌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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