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 자서전 '아리랑' 쓴 미국 작가, 님 웨일스의 삶

[역사 공부 '오늘'] 2005년도엔 '민족 독립운동' 알린 공로로 문화훈장 받기도

등록 2019.01.11 15:31수정 2019.01.1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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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포스터 스노는 우리에겐 '님 웨일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위키백과

  

님 웨일스는 1997년 1월 11일, 코네티컷주 길포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 장호철

 
1997년 1월 11일,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헬렌 포스터 스노(Helen Foster Snow, 1907~1997)가 미국 코네티컷주 길포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그는 남편 에드거 스노와 함께 1930년대 격동기의 중국 혁명가들을 취재하여 〈붉은 중국의 내부(Inside Red China)〉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여인은 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 대신 '님 웨일스(Nym Wales)'라는 필명으로 더 친숙하다. 왜냐하면, 그는 1930년대에 중국에서 활동한 한국인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 1905~1938)의 고통스러운 삶을 기록한 자서전 <아리랑(Song of Ariran)>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타주에서 변호사의 딸로 태어난 웨일스는 작가를 꿈꾸었으나 그가 활동한 1930년대 중국의 현실은 문학보다 더 극적인 시기였다. 1931년 중국 상하이 주재 미국 영사관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스물셋이었다. 웨일스는 이듬해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을 다룬 책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1937)로 유명해지는 신문기자 에드거 스노(Edgar Snow, 1905~1972)를 만나 결혼했다.

<중국의 붉은 별> 작가 에드거 스노와 결혼

웨일스는 베이징 옌징(燕京) 대학교에서 잠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고, 1935년 12월 9일, 중국 텐안먼 광장에 모인 중국 청년들이 내전 중단과 항일 항전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인 12·9 항일운동을 취재하였다.
 

중국에 온 님 웨일스는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신문기자 에드거 스노를 만나 결혼했다. ⓒ https://helenfostersnow

 
스노 부부는 친 중국 공산당 잡지 <데모크라시(Democracy)>의 편집에도 참여했다. 최근 밝혀진 냉전 시기의 문서들은 부부를 '용공 분자'로 묘사하고 있으나 중국 공산당원이었던 웨일스와 달리 남편 에드가는 공산당원으로 밝혀진 적이 없다.

에드가와 헬렌 부부는 10년 동안 중국 각지를 취재 목적으로 여행했다. 부부는 국공(國共) 분열 후 중국 지역을 현지 답사하여 주목받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웨일스는 남편의 저술 활동을 도우며 한국과 중국의 항일 투쟁에 대한 생생한 저술, 〈붉은 중국의 내부〉(1938)를 남겼다.

10년간의 중국 취재 여행, 김산을 만나다


1937년 초여름, 웨일스는 남편과 함께 옌안(延安)으로 들어가 22명의 혁명가와 인터뷰했다. 중국 공산당 홍군(紅軍)은 장제스 국민당군의 포위망을 뚫고 370일 동안 9600km를 걸어서 옌안으로 탈출한 대장정(大長征)을 끝내고 옌안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김산( 장지락, 1905~1938) ⓒ 위키백과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들과 교분이 깊었던 에드거가 마오쩌둥을 취재하고 있을 때 웨일스가 인터뷰한 혁명가 가운데 조선인 김산(본명 장지락)이 있었다. 평북 용천 출신으로 상하이를 거쳐 베이징에서 사회주의자가 된 이 청년은 김원봉·김성숙과 함께 조선혁명청년연맹을 결성하고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민족독립당을 조직한 이였다.

1927년에는 김산은 중국인들과 함께 광둥(廣東) 코뮌 건설에 참여했다. 조선인의 중국 공산당 입당을 주도하던 김산은 1930년과 1933년 두 차례에 걸쳐 일경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 스파이로 의심받은 그는 다시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지 못했다.

1936년,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한 김산은 옌안의 군정대학에서 홍군을 가르치고 있었다. 웨일스는 두 달 동안 22차례에 걸쳐 김산을 인터뷰하여 이를 바탕으로 김산의 자서전 <아리랑>을 완성했다. <아리랑>이 웨일스와 김산이 공동 저자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웨일스는 아마 김산에 깊이 매료된 듯 보인다. 조국을 되찾기 위한 도전과 시련, 그 가운데 담대한 혁명가로 성장한 식민지 청년의 모습과 그가 품고 있는 활화산 같은 열정에 웨일스도 흔들렸던 것 같다.

김산의 죽음, 그리고 <아리랑>(1941) 출간

그러나 혁명가 김산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죽음이었다. 1938년 중국 공산당이 김산을 반혁명죄와 간첩죄로 처형한 것이다. 중일전쟁이 발발(1937)하고 난징이 함락된 이후, 활동이 여의치 않게 된 웨일스는 남편과 함께 필리핀으로 가 〈아리랑〉을 써 1941년 미국에서 이 작품을 출판했다. 이 책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민족독립 운동을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공산혁명을 이루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극동에서의 교두보인 중국을 공산세력에 내준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면서 웨일스의 중국 저술은 대중에게 잊혀가고 있었다.

1949년 웨일스는 에드가 스노와 이혼하고 17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냈다. 그는 고향인 코네티컷으로 돌아온 뒤에는 계보학에 몰두해 뉴잉글랜드가 영국의 식민지로 바뀌는 과정을 천착한 역사서를 집필했다.
 

웨일스는 <아리랑> 외에도 〈붉은 중국의 내부>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 장호철

 
1972년, 냉전이 계속되던 미국과 중국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자 웨일스는 중국을 방문했지만, 문화대혁명이 진행되고 있던 현지에서 옛 친구들과 긴밀한 접촉은 불가능했다. 미·중 국교가 정상화된 것은 1979년이었고 이후 중국에 관한 관심이 살아나면서 웨일스의 저작, 〈중국 노동운동〉(1945)·〈홍진(紅塵)〉(1952)·〈나의 옌안(延安) 일기〉(1984) 등도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1991년 9월, 중국문예재단은 웨일스의 84회 생일을 맞이해 인민대회당에서 기념식을 열고 그에게 국제 우호친선 공로 최고문예상을 수여했다. 그것은 중국의 항일 투쟁과 혁명 과정에서의 저널리스트 웨일스가 한 이바지에 대한 보상이고 격려였다. 1996년에 웨일스는 중국 정부가 외국 시민에게 제공한 중국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우정의 대사(Friendship Ambassador)'로 선정되었다.

김산 복권과 서훈... 웨일스도 한국정부로부터 문화훈장 추서
 

<아리랑>은 1984년 초판, 2015년에는 개정3판이 나왔다. <중국의 붉은 별>은 1985년 초판이 나와 금서로 지정되는 등 곡절 끝에 2013년 개정판이 나와 있다. ⓒ 동녁, 두레

 
1938년 처형된 김산은 1983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조치로 복권되었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산(장지락)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의 아들이 한국을 방문해 훈장을 받았다. 같은 해 대한민국 정부는 님 웨일스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함으로써 그가 <아리랑>으로 일본의 식민지배와 민족독립 운동을 세계에 널리 알린 공로를 기렸다.

김산을 '현대의 지성을 소유한 실천적 지성'으로 격찬하였던 웨일스는 한국과 중국의 항일 투쟁을 증언한 업적으로 두 번(1981~1982)이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유고와 사진, 문서들을 유타에 있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 기증되었다. 2000년 브리검 영 대학교는 웨일스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국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벽안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스는 그가 기록한 한 한국인 독립운동가의 자서전을 통해서 지금도 널리 기억되고 기려지고 있다. <아리랑>은 한 인간의 고매한 열정에 감동한 저널리스트가 기록한 인간과 역사, 그 승리의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님 웨일스 #아리랑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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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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