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 500일 택시기사 "파인텍 해결돼 기분 좋다"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서... "카풀 반대 앞서 사납금제 폐지부터"

등록 2019.01.11 19:56수정 2019.01.1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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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청 앞 지상 25m 조명탑에서 100일째 농성중인 당시에 택시노동자 김재주씨 모습 ⓒ 김종훈


 
어느덧 하늘 위에서 보낸 시간이 500일이나 됐다. 그사이 또 다른 하늘 위에 있던 '파인텍' 노동자들은 426일 만에 극적으로 노사합의가 타결돼 11일 오후 땅으로 내려왔다. 부러울 법도 하건만 택시노동자 김재주는 오히려 "기분이 좋다"면서 "한 군데라도 빨리 내려와 다행"이라고 밝혔다. 하늘 위에서 500일을 버틴 김재주는 '빨리'라는 단어를 말하며 헛헛한 웃음을 내보였다.
 
택시노동자 김재주. 파인텍이 '굴뚝농성' 세계신기록이라면 그는 명실공히 '고공농성' 세계신기록 수립자다. 지금도 매일매일 자신의 기록을 깨고 있다. 오는 16일이면 그가 2017년 9월 4일 전주시청 앞 25m 조명탑 꼭대기에 올라가 홀로 농성을 한 지 정확히 500일이 된다.
 
그러나 택시노동자 김재주는 아직 내려올 수 없다. 그가 수년째 외치고 있는 '법인택시 전액관리제 시행과 불법사납금제 폐지'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11일도 가로 1m 80㎝, 세로 70㎝ 넓이의 조명탑 구조물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버틸 뿐이다.
 
김재주가 전주시청 앞에서 농성하는 이유
 
택시노동자 김재주는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럴 것이 25m 하늘 위에 만들어진 '임시거처'에서 500일을 보냈다. 김재주는 "근육과 장기 등 모든 것이 나빠져 약으로 연명하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이 좁은 곳에서 막 달리고 할 수는 없지 않냐"고 말했다.
 
실제로 김재주가 머무는 곳은 공사현장에서 안전구조물을 세울 때 사용하는 소위 '아시바(비계)'라 불리는 철봉으로 만든 임시 거처다. 바람이 불면 '끼이익' 소리를 내면서 지진이 온 것처럼 흔들린다. 지상에서 그가 있는 조명탑을 바라보면, 바람이 불 때마다 임시거처가 흔들리는 게 육안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재주는 "와이어로 아시바를 묶어놨기 때문에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면서 "그래도 내려갈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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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100일을 맞이한 김재주 택시지부장 ⓒ 문주현

 
그가 지회장으로 있는 택시노조 전북지회는 '사납금제 폐지' 등을 촉구하며 2014년부터 2년간 천막농성을 벌였다. 이에 전주시는 2016년 2월 21개 법인택시 사업주, 택시지부는 임금표준안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2017년 1월 1일부터 전액관리제를 시행한다'라고 합의했다.
 
어렵게 합의된 전액관리제는 이행되지 않았다. 법인택시 사업주들은 수익성 축소를 이유로 합의안에 반대했다. 전주시 역시 '택시 사업주들의 반대'를 이유로 전액관리제 시행을 미루기만 했다. 택시노동자 김재주가 전주시청 앞에 위치한 조명탑에 올라간 이유다.
 
김재주의 하늘 위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다. 자기 한 몸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버텨야만 했다. 땅에서 2명의 택시 해고노동자들이 상주하며 김재주의 농성을 지원하고 있지만 두 번의 가을과 세 번의 겨울을 하늘 위에서 보내야만 했던 김재주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렸다. 

그럼에도 노사정이 2016년 2월 함께 약속해 마련한 '임금표준안'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전주지역 회사 택시 사업장 21곳 가운데 7곳이 여전히 협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미리 서명한 다수의 업체들도 '왜 우리만 손해를 보냐'면서 전면시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김재주는 "전액관리제를 원하는 택시 기사만이라도 참여할 수 있게 하자"고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업체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있다. 김재주가 "전주시가 전액관리제를 적극 도입하고 위반업체를 강하게 처벌했다면 애초에 조명탑에 올라올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성토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된다"

김재주는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는 "결국 택시 사업주들이 항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전주시가 3차 행정처분 결론을 내리면 결국 모든 택시 사업장은 따르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택시 사업주들의 반대'를 이유로 전액관리제 시행을 미루기만 하던 전주시는 지난해 8월 전주의 19개 택시업체에 1차 행정처분으로 5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택시 업체에 크게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그런데도 택시 사업주들은 1차 행정처분에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이의신청은 아직도 전주지방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러자 2018년 8월 31일 김영만 택시지부 지부장 등 조합원들이 전주시청 휴게실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전주시는 택시지부의 점거농성 49일 만에 2차 행정처분을 확약하고 12월 19일까지 전액관리제 이행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은 7개 택시 사업장에 2차 행정처분을 했다. 1차와 마찬가지로 500만 원 벌금을 부과했다. 김재주는 "택시 사업주들이 2차 행정처분에 대해 다시 한번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전주시는 아직 3차 행정처분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3차부터는 '영업정지' 등 택시 업체들에 실질적인 압박이 가해지는 만큼 김재주는 "노사정이 합의한 전액관리제 시행과 사납금제 폐지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는 사업장은 전주에서 2개 사업장뿐이다.
 
김재주 "핵심은 사납금제 폐지"
 

'카풀 반대' 택시 집회에서 물세례 받은 전현희 민주당 의원 ⓒ 유성호

 
이날 김재주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카풀' 논란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미 지난 한 달 새 '카풀반대'를 외치며 두 명의 택시노동자가 분신한 상황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카풀의 찬반 여부와는 별개로 국민의 이동권이 보장되는 게 우선"이라면서 "국민들이 택시업계를 지지하지 않는 건 불친절과 승차거부, 과속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납금제가 존재하는 한 절대 승차거부와 난폭운전, 과속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택시기사는 항상 사납금을 채우려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아무리 택시 요금을 많이 올려도 고쳐지지 않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재주는 "카풀 반대 집회에서 택시 노동자들이 먼저 사측에 사납금제 폐지와 월급제 시행을 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기업이 주축이 된 카풀 시행에는 반대하지만 카풀 자체가 택시 노동자의 근무 환경이 열악해진 원인은 아니다"라면서 "월급제만 이뤄지면 택시 서비스는 자연스레 개선이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카풀 반대를 외치는 4개 단체는 택시사업조합과 개인택시사업조합, 전국택시산업노동조합, 민주택시노동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사납금제 폐지'에 대해 카풀 반대 4개 단체의 이익이 충돌하기 때문에 집회에서는 관련 요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사납금제는 하루 운송수익금 중 일정액을 회사에 납부하는 제도로, 택시노동자들은 보통 하루에 12~14만원 정도의 사납금을 회사에 낸다. 사납금을 제외한 초과 운송수익금이 택시노동자들의 수입이다 보니 승차거부와 난폭운전이 횡행한다. 택시노동자 김재주가 회사택시의 월급제를 요구하며 500일째 고공농성을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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