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에서 땅으로 귀환 "지지해줘서 감사"

파인텍 박준호, 홍기탁 두 노동자 426일 만에 고공농성 마침표

등록 2019.01.11 19:44수정 2019.01.1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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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탁-박준호 무사히 내려와라' 파인텍 노사가 고공농성 426일 만에 협상을 타결한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인 금속노조 충남지부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농성을 풀고 땅에 내려오자, 마중 나온 시민과 노동자들이 무사히 내려오기를 기도하며 이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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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농성 426일 만에 땅 밟는 홍기탁-박준호 파인텍 노사가 고공농성 426일 만에 협상을 타결한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인 금속노조 충남지부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오른쪽)과 박준호 사무장이 농성을 풀고 땅에 내려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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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탁-박준호 반기는 시민들 파인텍 노사가 고공농성 426일 만에 협상을 타결한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인 금속노조 충남지부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농성을 풀고 땅에 내려오자, 마중 나온 시민과 노동자들이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반기고 있다. ⓒ 유성호

 
75m 굴뚝 위에서 검은 형체가 꿈틀거렸다. 누군가 느릿느릿 사다리를 탔다. 때론, 두 다리가 흔들거리기도 했다. 밧줄을 몸에 감은 실루엣이 더디게 움직였고,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이 땅바닥에 발을 내디디고 섰다. 세계 최장기 굴뚝농성에 나선 파인텍 박준호, 홍기탁 두 노동자다. 깡마른 몸이 426일간 75m 콘크리트 기둥 꼭대기에서의 생활을 말해줬다.

11일 오후 4시경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 사무장이 마침내 땅을 밟았다. 뒤이어 홍기탁 파인텍 전 지회장도 지상에 도착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오른 지 1년 2개월 만이다. 두 노동자의 귀환에 이들의 농성을 지지하며, 연대농성에 나섰던 이들은 눈물과 환호성으로 반겼다.

앞서 이날 오전 7시 20분께 파인텍 노사는 끝장 교섭에 나서 협상을 타결했다. 주요 합의사항은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가 자회사 파인텍의 대표를 맡고, 올해 4월 30일에 단체협약을 체결, 7월 1일부터 3년간 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스타플렉스가 5명의 노조원을 직접 고용해 달라는 요구 사항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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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탁-박준호 반기는 시민 '무사히 내려와 고마워' 파인텍 노사가 고공농성 426일 만에 협상을 타결한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인 금속노조 충남지부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농성을 풀고 땅에 내려오자, 한 지지자가 이들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오후 4시 10분 두 노동자는 소방관의 부축을 받으며 구급 침대에 올랐다. 열병합발전소 정문에서 이들은 426일에 걸친 고공농성의 마침표를 찍는 소회를 밝혔다.

박준호 파인텍 사무장은 "고맙다"라고 했다. 그는 "밑에 있었던 동지들에게 힘이 못 된 것 같아 미안하다"라며 "지금까지 함께해 준 수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머지 파인텍 동지들에겐 (그동안) 힘이 못 된 거 같아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홍기탁 전 회장은 눈물을 쏟았다. 그는 "고맙다. 부족한 5명인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버텨줬다"라며 "저 위에서 박준호 동지와 싸우고 다투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노동조합 하나 지키는 게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라고 흐느꼈다.

쓴소리도 했다. 홍 전 지회장은 "민주노조를 지키는 게 이 사회에서 왜 이리 힘든지 진짜 더러운 세상이다"라며 "배지만 들고 다니는 국회의원, 재벌들의 밑만 닦고 다니는 권력들, 진짜 더럽다. (공장에서)청춘을 다 받쳤는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준호, 홍기탁 두 노동자를 위해 곡기를 끊고 33일간 단식농성에 나섰던 차광호 지회장도 마이크를 잡았다. 차 회장은 "(그동안 농성을 하면서) 참 힘들고 참담했다. 그래도 여기 있는 분들이 있어서 홍기탁, 박준호 두 동지가 땅을 밟을 수 있었다"라며 "(오늘 이후) 노동자가 사회의 주인이고 꿈을 꾸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옥배, 조정기 두 노동자는 "연대해준 사람들과 관심을 가져준 시민들에게 고맙다"라며 짧게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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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발 선물 받는 홍기탁-박준호 파인텍 노사가 고공농성 426일 만에 협상을 타결한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인 금속노조 충남지부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농성을 풀고 땅에 내려오자, 동조단식을 벌였던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과 박승렬 목사가 이들에게 준비한 새 신발을 신겨주고 있다. ⓒ 유성호

 
굴뚝농성을 지지하며 동조단식을 했던 이들도 두 노동자를 배웅하며 한마디했다.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은 "노동자와 시민이 연대해서 작은 산을 넘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노력했다는 게 서글프기도 하다"라며 "하지만 굴뚝 위에 사람이 살 수 없다는 마음으로 연대하고 단식에 동참했다. 오늘부터는 합의된 사항을 얼마나 이행하는지 관심을 갖고 감시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박승렬 목사도 "새들도 살지 못하는 그곳에서 426일간 버틴 두 노동자가 땅에 내려오게 됐다.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라며 "지금까지 농성, 협상 과정에서 회사측에 (노조측이) 깊은 갈등과 불신, 분노가 있었는데, 오늘부터 이 문제를 바르고 평화롭게 해결해 새로운 세상이 됐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송경동 시인은 "좋은 날이다. 기쁜 날이다. 꿈만 같다. 정의가 승리한 날이다. 우리 사회 인권의 존엄이 바로 세워진 날이다"라며 "이런 소중한 선물을 모두에게 전해준 파인텍 5명의 동지에게 고맙다. (오늘부로) 1%특권를 위한 나라가 아닌 노동자들이 존중받는 나라. 평범한 시민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마지막 굴뚝농성 현장을 찾았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굴뚝 높이가 까마득한데 저곳에서 두 노동자가 까마득한 고통을 겪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이다"라며 "이번 약속을 (회사측이) 절대로 깨거나 위배해서는 안된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도 합의사항이 관철되고 이행되는지 끝까지 감시하겠다"라고 말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자신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입을 뗐다. 윤 의원은 "솔직히 김세권 대표 집까지 밤중에 찾아간 적이 있다. 분노를 억누르고 사람은 살아야 할 게 아니냐. 사장이냐 노동자냐를 떠나서 사람 먼저 살리자고 호소했다"라며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를 찾아간 일화를 공개했다.

이어 윤 의원은 "파인텍 노사가 타결한 협상은 온 국민한테 내놓은 약속이지 회사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라며 "이 땅의 노동자들이 제대로 발을 내딛고 설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자"라고 했다.

이날 공동행동은 '노동자의 귀환, 우리 모두의 시작!'이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두 노동자를 맞았다.

공동행동 김소연 대표는 "내용을 보면 너무나 소박한 한 장의 합의서를 위해 두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걸어야 했다"라며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만들었고 오늘이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늘 역사를 새로 썼다"라고 말했다.

박준호, 홍기탁 두 노동자는 녹색병원으로 후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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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존중 받는 세상을 위해' 파인텍 노사가 고공농성 426일 만에 협상을 타결한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앞에서 열린 ‘파인텍 교섭 결과보고 및 굴뚝농성 해단식’에 참석한 시민과 노동자들이 노동의 가치가 존중 받는 세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굴뚝농성 #파인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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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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