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결정체계 손보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주장] 구간설정위-결정위 이원화에 숨은 불편한 진실

등록 2019.01.14 20:40수정 2019.01.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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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2019년도 최저임금이 확정돼 류장수 위원장(왼쪽)과 강성태 위원이 브리핑을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지난 7일 정부가 내놓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과 관련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위원회를 정부의 거수기로 전락시키는 처사'라며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경영계는 말을 아끼면서도 내심 반기는 모습이다. 

현행 최저임금결정제도

현재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정부가 각각 추천한 노·사·공익위원 각 9명, 총 27명이 심의를 통해 이듬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다. 우리는 지난 과정을 통해 노동자 위원은 1만 원, 사용자 위원은 동결을 주장하다가 공익위원이 제시안 인상안으로 표결이 이뤄질 때 어느 한쪽이 퇴장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그러다 보니 '어차피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으로 통과될 건데 논의 자체에 의미가 있나?' '노사 양측 모두 별다른 근거도 없이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데,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될 수 있겠나?' 하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 고용노동부

정부가 제시한 최정임금결정제도 개편안

정부는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이고, 공장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마련'을 위해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하겠다면서 최저임금 개편 논의 초안을 발표했다.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요약하면 ① 현재 최저임금 결정기준인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에 고용수준, 기업 지불능력, 경제성장률을 추가하며 ② 노·사·정부가 추천하는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 신설하여 최저임금 상·하한 구간을 설정하고, 현재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은 노·사·공익 동수로 구성된 결정위원회가 그 범위 내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부의 개편안은 매우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노사의 소모적인 논쟁을 최소화하면서도 노사가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취지를 살리며, 전문가들이 보다 다양한 요인들을 검토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최저임금 범위를 선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처럼, 정부의 개편안 속에는 우리가 그저 반길 수 없는 많은 의혹들이 내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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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노총, '최저임금 결정체계 정부안 반대'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양대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최저임금 결정체계 정부안 반대를 밝힌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최저임금위원들은 정부의 최저임금체계 이원화 개편이이 공정성을 상실했다며, 기획재정부의 최저임금 결정 개입 중단을 주장했다. ⓒ 연합뉴스

  
왜 노동계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경영계는 내심 반기는 걸까? 


먼저 왜 노동계가 정부의 최저임금 개편안을 반대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노동계는 절차적 측면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최저임금 개편안을 내놨고, 매우 졸속적으로 처리하고자 한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최저임금의 이해당사자인 노사의 경우 전문가가 정해놓은 범위 안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결정에서 노사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최저임금의 구간을 설정하는 전문가는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보다 경제적 판단을 강화하고 노·사·공익 간에 균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하려는 것으로, 의미 있는 협의 기초안이 될 것'이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실제로 최저임금 결정구조 관련 논의는 경영계의 요구로부터 시작됐으며, 이는 결국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의 수혜자는 경영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 추이를 보면 흐름이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의 주된 모토로 잡고, 국민들의 구매력을 높이며 노동자 사이의 불합리한 차별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과 함께 가장 먼저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주 52시간 노동시간제 도입 등의 노동정책을 나름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고용률·경기침체 등 대내외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를 비롯한 중소영세사업주의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주도한 최저임금·소득주도성장 때리기. 70~80%의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국정지지율 하락 등의 요인으로 집권초기의 노동정책은 그 동력을 잃게 됐다. 

그 결과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은 폐기됐고, 상여금·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최저임금산입범위 확대가 추진됐다. 주 52시간 노동시간제 도입을 자체를 무력화 시킬 우려가 큰 탄력적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밀어붙이고, 이해 당사자중 하나인 노동조합은 '패싱'한 채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하는 등 집권초기와는 정반대의 노동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렇듯 최저임금결정구조 개편은 정부의 이러한 노동정책 변화의 맥락을 통해 이해돼야 한다.
 

문재인 정권의 시기별 노동정책 ⓒ 황재인

위와 같은 흐름 속에서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보면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기게 된다. 필자는 독자들이 오해하기 쉬운 점 몇 가지를 뽑아 필자의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1. 과연 현행 최저임금결정구조는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가?

정부는 현재의 최저임금 결정체계가 30년 이상 지속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ILO 국제기준 등을 반영해 개편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국제적인 기준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나라마다 경제규모 및 상황, 노사관계 등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위원장 1명, 고용주대표 3명과 노동자대표 3명이 표결을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사실상 노사가 결정권한을 갖는다고 봐도 될 정도로 이해 당사자의 권한이 막강하다.

반대로 네덜란드는 정부가 직접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우리나라보다 정부의 권한이 훨씬 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LO 주요협약(제131호 최저임금 결정 협약)의 내용 역시 현행 최저임금결정구조를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다고 평가할 만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ILO 주요협약에는 최저임금수준 결정에 있어 근로자 및 그 가족의 필요와 경제적 요인을 고려하고(제3조), 노사 당사자와의 충분한 협의 및 직접참여를 보장하는 최저임금제도를 수립할 것(제4조) 등의 내용이 적시돼 있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기준이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다고 평가할 만한 근거는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ILO 협약에는 기업의 지불능력, 경제성장률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ILO 제131호 최저임금 결정협약 제3조, 제4조 ⓒ 황재인

 
2. 현행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고용수준, 기업지불능력, 경제성장률 등을 포함하는 것이 객관적·합리적·공정한 것일까?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최저임금법 제1조). 즉,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안정과 이를 통한 노동력의 원활한 재생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현행 최저임금위원회는 매년 근로자의 생계비와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을 조사해 최저임금의 판단 근거로 삼는다. 다만, 최저임금의 위와 같은 목적상 '근로자의 생계비'가 최저임금책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볼 수 있는데 현행 최저임금위원회는 '가구생계비'가 아닌 주로 '비혼 단신근로자의 실태 생계비'만을 조사해 근로자 생계비의 기준으로 삼고 있어 노동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아무튼 현재의 결정기준(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에서 고용수준, 기업지불능력, 경제성장률을 포함시키는 것이 최저임금법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까?

고용수준, 기업지불능력, 경제성장률이 우리 나라의 경제상황을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표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과 직결된다고 보기는 좀 무리가 있다. 즉, 고용수준, 기업지불능력, 경제성장률을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포함시키는 것은 최저임금의 취지와 목적에서 볼 때 더 합리적·객관적이거나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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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전문가 토론회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전문가 토론회에서 최태호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왼쪽)이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 초안 주요내용과 관련해 발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 왜 이렇게 급하게 진행되는 걸까?

정부는 10일 전문가 토론회를 시작으로 TV 토론회, 대국민 토론회 등을 1월 중에 집중적으로 실시하며, 1월 21일부터 1월 30일까지 온라인 등을 대국민 의견수렴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면 '광속'이 아닐 수 없다.

전체 노동자의 약 20%가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국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할 수 있을까? 신고리 5·6호기 건설과 관련해 공론화위원회를 만들고 시민참여단 500명을 선정해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결정했던 현 정부다. 적어도 이 결정은 4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그런데 최저임금결정체계 변경 논의는 단 20일만에 끝내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어, 너는 그저 따라오면 돼'라는 말과 다름없다. 심지어는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조차 정부의 최저임금결정체계 변경 발표에 대해 아무런 사전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한 것일까?  

정작 중요한 것은 결정체계 변경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적절한 최저임금'이 어느 정도인지 찾는 일이다.

결국 낮은 임금에 고통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과, 오르는 최저임금으로 인해 고통받은 중소영세자영업자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또한 을과 을간의 대립이 아닌 상생을 도모하는 일이다. 

정부 발표처럼 최저임금결정위원회에 청년·여성·비정규직 근로자, 중소·중견기업·소상공인 대표를 반드시 포함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상황이라면 이들 '을'들은 정부와 대기업이 내린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거수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 결정체계 변경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이들 을들의 상생방안을 찾는 것이다. 을들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높은 임대료나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바로잡고, 을들이 서로 양보하며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구조를 만드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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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을'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것인가, 논의의 핵심은 여기에 있어야 한다. ⓒ unsplash

 
덧붙이는 글 글쓴이 황재인씨는 돌꽃노동법률사무소에서 노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최저임금결정구조 #최저임금결정체계 #황재인노무사 #돌꽃노동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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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노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송파구에 사는 청년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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