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정적을 깨는 소리, 저 아이들의 정체는?

[도쿄 옥탑방 일기 12화] 시간이 느리게 가는 나라

등록 2019.01.14 08:22수정 2019.01.1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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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주택가의 정적을 깨는 소년소방단 아이들이 '불조심!'을 외치며 야경도는 모습. 소리를 듣고 스마트폰을 들고 내려갔더니 이미 해산중이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사진은 홋카이도신문의 한 동영상을 캡처한 것. ⓒ 홋카이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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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를 짜 주택가를 돌며 '불조심!'을 외치는 동네 주민들. ⓒ 김경년

 
"성냥 하나도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딱! 딱! 딱! @#$%^&**&^%$#@~~'

달력이 몇 장 남지 않은 지난해말 저녁. 밖에서 재잘재잘 낯선 소리가 들렸다. 절간처럼 조용한 동네에 이게 뭔 소린가 하고 문을 열고 아래를 내다봤다.

초등학교 1, 2학년쯤 됐을까 싶은 아이들 열댓 명이 두 손에 든 막대기를 부딪쳐 '딱, 딱, 딱' 소리를 내고, 이어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며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멀어서 얼굴은 잘 안보이지만 목소리는 한참 들떠있다. 뒤를 따르는 부모인 듯한 사람들도 발걸음이 가볍다.

호기심이 발동해 밖에 나가 물어보니 아이들은 소년소방단 단원들이었다. 이렇게 마을 곳곳을 돌며 동네 사람들에게 불조심할 것을 알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주로 외치는 구호는 "불조심! 성냥 하나도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火の用心!マッチ一本火事の元)."

아이들 차례가 곧 끝나자 밤 늦도록 어른들이 돌아다니며 딱따기를 치며 큰소리로 "불조심!" 고함을 지른다. 한 바퀴 돌고 나면 동네 상점에 임시로 차려진 '연말특별경계대기소'에서 다른 팀과 교대한다.

'에도(도쿄의 옛이름)의 역사는 화재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 도쿄는 불이 잦았다고 한다. 수천 명은 약과, 한 번에 10만 명이 사망한 대화재가 있었을 정도다.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내진성이 강한 나무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불이 한번 나면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은 인구 100만 도시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필자가 사는 이리야 주변도 예외가 아니었고 인근에는 불이 났을 경우를 대비해 일부러 비워놓는 방화용 공터(히로코지, 広小路)가 아직도 '우에노 히로코지'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 딱따기를 치며 불조심을 외치고 다니던 에도시대로부터의 풍습이 수백 년 지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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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사진프린팅 가게. 연말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연하장을 만들기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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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미나토구 다마치역 구내에 설치된 연하장 판매대. 빨간 유니폼을 입은 우체국 직원들이 나와 연하장 구매를 독려한다. ⓒ 김경년

 
웬만하면 시간을 떠내보내려 하지 않는 나라

연말이 되면서 거리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게 연하장이다. 서점 진열대의 맨 앞자리를 연하장이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하철 입구에도 우체국 직원들이 나와 연하장을 팔고 있다. 언젯적 봤던 연하장인가 싶다.

집에서 가까운 사진프린팅 전문점은 연말이 되자 며칠간 아예 연하장만 전문으로 출력해주는 곳으로 바뀌었다. 지나갈 때마다 예쁜 연하장을 만들기 위해 찾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사람들이 모여앉아 열심히 작업하는 것을 어깨너머 엿보니 앞면에는 글을 쓰고 뒷면에는 자신이 찍은 휴대전화 사진을 인쇄해주는 양면 프린팅 기계다.

이렇게 만들어서 우체통에 넣으면 정확히 1월 1일 각 가정에 배달된다고 한다. 작년 일본 전역에서 보내진 연하장이 무려 14억 통이라 하니 정말 억 소리가 난다. 일본 인구가 1억2600만 명이니 1인당 무려 10통이 넘는 숫자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고 최첨단 기술을 자랑한다는 일본. 그러나 시간이 참 느리게 가는 나라, 아니 시간을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 나라인 것 같다.

한 블록에 한 두 개씩 꼭 있는 유서깊은 절이나 신사를 볼 때, 잊을 만 하면 한번씩 '으쌰으쌰' 어깨에 가마를 메고 돌아다니는 마츠리 행렬을 볼 때, 여름에 자주 열리는 하나비(불꽃놀이)에 전통의상인 유카타를 같이 입고 참여하는 젊은 남녀를 볼 때 그런 생각이 절로 난다.

우리나라에서 아마 화재예방을 위해 마을 사람들을 조직해 매일 딱따기를 치며 야간순찰을 돌자고 하면, 아마 '21세기 대명천지에 시끄럽게 무슨 짓이냐'며 민원이 들어와 당장 중단될 것이다. 인터넷을 보면, 일본도 최근 들어선 '그런게 화재예방에 무슨 도움이 되나' '기껏 애를 재워놨더니 도로 깨워버렸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우리도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느라 바빴던 기억이 난다. 일부러 연하장을 사오는 것도 일이지만, 내용에 뭐라고 적어야 할까 한참을 머리 싸매고 고민했다. 그러나 보내고 나면 뿌듯하고 받으면 마음이 훈훈해졌다. 스마트폰 시대가 된 최근에는 문자나 그림문자로 많이 대체됐지만 손글씨가 씌어진 연하장을 받을 때 느끼는 반가운 기분에는 비교할 수 없다.

대학생 때 학생연수단에 끼어 도쿄에 처음 왔을 땐 긴자 거리의 잘 빠진 자동차나 쇼윈도에 전시된 최신 전자제품 그리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지하철 노선도 등에 넋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와 전자기술을 지닌 최첨단 국가였고, 한국은 이제 막 군사독재를 벗어난 개발도상국이었다.

그러나 30년 만에 다시 온 도쿄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동차나 전자제품, 지하철이 아니라 일본의 오래된 것들이다. 단지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한국 관광객들이 대도시 아닌 소도시로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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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치바현 다테야마시를 여행했을 때 찾았던 스시집 주인. 이 지역에 많이 살았던 어부들을 상대로 180년간 장사를 해왔다고 한다. 지금 8대째인 아들이 자신의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 김경년

  
도쿄나 교토, 오사카의 어느 유명 관광지를 방문해도 여전히 한국 관광객들이 많기는 하지만, 한국인보다는 중국인들이 훨씬 많이 보인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가운데 한국인이 700만 명을 조금 넘고 중국인이 그보다 20여만 명 많을 뿐이다. 그럼 나머지 한국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몇 달 전 한국에 잠깐 들어갔을 때 대형서점에서 일본의 지방 소도시 관련 서적이 좀 과장해서 산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일본에 가는 한국 관광객이 대도시보다는 지방 소도시로 구석구석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왜? 대도시는 이제 볼만큼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은 도시뿐만 아니라 지방도 옛 유적이나 풍습이 잘 보전돼 있고 그만큼 볼 것이 많기 때문이다.

웬만한 작은 도시에 가도 규모는 작지만 오사카성 못지않은 풍모를 지닌 성이 그대로 보존돼 있고, 그냥 우연히 찾아간 간판도 없는 식당이 100년 동안 어묵만 팔아온 건 드믄 일이 아니다. 지난 여름 여행가서 들렀던 치바의 스시집은 8대가 180년을 이어오고 있었다.

예로부터 내려온 것들을 버리지 않고 지켜온 게 오늘날 상품이 된 것이다. 한편으론 첨단 제품을 만들어 돈 벌고, 다른 한편으론 옛것을 버리지 않아서 돈 버는 나라.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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