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하나에 '전전긍긍'... 한옥 짓기의 이상과 현실

[작은 한옥 수선기 22] 꿈꾸던 집을 땅 위에 짓는다는 것

등록 2019.01.15 09:55수정 2019.01.2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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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 기자말

[이전기사] 경복궁 옆 서촌에서 한 달 살기, 무엇을 보았냐고?


지난 2018년 뜨거운 여름의 복판을 서울 경복궁 옆 서촌에서 보냈다. 임시 거처로 삼은 한옥 마루에서 조촐하게 차린 저녁을 먹고 하릴없이 동네 구석을 산책하던 시간을 오래 기억하련다.

광역버스를 타고 한 시간여를 나와 다시 서울 시내버스를 갈아타야만 들를 수 있던 공사 현장. 거처를 옮긴 덕에 이제는 시내버스 한 번만 타면 15분도 안 걸려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고단했던 현장은 한결 누그러진 더위로 조금씩 속도가 붙었다. 눈에 보이는 마감들이 오갈 때마다 달라졌고, 이 집에서 살게 될 날들의 풍경이 눈앞에 매우 구체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현장은 언제나 어지러우나 그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가지고 한 채의 집이 완성되어간다. ⓒ 황우섭


머리로 떠올리던 것들이, 도면 위에 펼쳐져 있던 공간이, 막상 눈앞에 구현되는 걸 보고 있자니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신기하기도 했고, 이 공간들에서 누릴 나의 일상이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새집에서, 오래 꿈꿔온 곳에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매우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눈앞의 풍경은 때로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서 만족할 때까지 수정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내가 들르지 못한 사이에 이미 하나의 작업이 종료돼 있거나, 다음 공정이 이미 시작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것은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미 작업자들은 다음 현장으로 떠난 뒤였다. 그들을 다시 불러 일을 하게 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고들 했다.


애초에 이 집을 짓기 시작할 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딱 도면을 그리는 단계까지만 해당됐다.  

내겐 너무 중요했던 스위치
 

기둥마다 기와마다 벽돌마다 작업자들의 땀이 배어 있다. 배어 있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나의 한숨과 아쉬움, 기쁨과 설렘, 그리고 이 희로애락을 마음속에서 다스려온 나의 시간이 배어 있다. 이 집의 역사는 그렇게 또 덧대어 흐르고 있다. ⓒ 황우섭

 

도면으로만 보던 공간들이 눈앞에, 현실의 공간으로 성큼 완성되어간다. 이것을 바라보는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 황우섭

 
현장의 상황을 누군가 지켜보지 않는 한 작업자들은 해오던 대로 일을 했다. 하루에도 몇 개의 공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한쪽에서 타일을 붙이면 다른 한쪽에서는 전기공사를 했다. 이 모든 공정을 누군가 처음부터 끝까지 챙기는 건 불가능했다. 모든 공정마다 일솜씨가 좋은 분들만 모아서 작업을 진행하는 현장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결과물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오해 없기 바란다. 현장에서 애써주신 분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나 하루의 인건비는 똑같고, 이 집은 그들에게 특별할 리 없는 수많은 현장 중 하나일 뿐이다. 얼른 마무리하고 정해진 날짜에 일을 끝내기 위해서는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더 다르게 뭔가를 주문하는 건 작업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고,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건 이들에게는 곧 시간이며, 시간은 곧 비용이었다. 게다가 손으로 하는 일이라 손끝의 솜씨에 따라 구현되는 결과물은 다 달랐다. 연세 지긋한 작업자분들은 대부분 내가 원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셨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기능의 문제가 아닌 것이 대부분이어서, 단지 기호의 문제로 치부되곤 했다.

나는 집 외벽을 이루는 와편(기와조각)의 왼쪽과 오른쪽 끝이 위아래 줄과 일직선으로 딱 떨어지기를 원했다. 화강암의 배치는 다소 거칠고 불규칙적으로 해주길 원했다. 담장 공사를 하는 날, 서둘러 갔으나 이미 줄은 맞지 않은 채로, 화강암은 너무 단정하고 규칙적으로 매우 곱게 정리가 돼 있었다. 작업은 끝났고, 수정은 불가했다.

지붕에 올린 기와 중 부득이하게 새 기와를 쓰는 경우 처마 끝에서 기와의 상표가 보이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중에 차양으로 가려질 거라 상관이 없으며 기와의 방향이 그렇게 밖에 안 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원래 살던 아파트 벽에도 못 자국 나는 걸 정말 싫어했다. 한옥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행여나 흠집이라도 날까 조심스럽게 만지는 나와 달리, 작업자들은 현장에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나무 기둥 곳곳에 못을 박고 옷도 걸고 도구도 걸어두곤 했다. 그때마다 속이 얼마나 상했는지 말할 수가 없다.

안방 머리맡에 배치한 전원부가 정면이 아닌 측면에 배치되기를 원했으나 설치하기 위해 공구를 쓸 공간이 없어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옆집과의 경계를 위해 세워야 하는 담을 어떻게 쌓을 것인가를 두고 내가 찾아 보낸 사진만 수십 장이었으나, 결국은 아주 흔하고 일반적인 담장을 쌓아두고 더 이상의 작업은 불가하다고 했다.

나는 집 안의 모든 스위치를 아주 단순하지만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한 모 브랜드의 것으로 넣고 싶었다. 건축가와 함께 그 스위치를 넣으면 얼마나 집이 예쁠 것인가를 두고 아주 즐거운 상상을 나누곤 했다. 인테리어가 멋지다는 가게나 카페 등에 자리 잡은, 바로 그 스위치를 발견할 때마다 이제 곧 우리 집에 저것이 달리겠거니, 생각하며 손에 닿는 그 느낌을 만끽하곤 했다.

그러나 그 스위치를 넣고 싶다는 말을 아주 초반부터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와서 애초에 벽면 공사 때 그 스위치를 위한 박스가 고려되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어느 단계에서 어떻게 전달이 누락된 것인지 책임 소재를 찾아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싶었으나, '단지' 스위치 때문에 완성한 벽을 다시 뜯자고는 할 수 없었다.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일반적인 스위치를 넣을 수밖에 없다고 했으나 그렇다고 전혀 맘에 안 드는 스위치를 방마다 넣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중지시켰다. 그때부터 부랴부랴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 스위치 디자인을 찾아 헤매야 했고, 그나마 차선을 택할 수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내 뜻과 다르다고 해서 이 집에 쏟은 작업자들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집을 짓는 동안 어쩌면 나는 사는 법을 조금 더 깊이 배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 황우섭

 

내가 머리로 그리던 담장벽의 디자인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합의한 소재와 배치로 구성이 되긴 했으나 작업자의 손끝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리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것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걸, 타협이 곧 좌절은 아니라는 걸 집을 짓는 동안 나는 배웠다. ⓒ 황우섭

 
화장실 벽 수건걸이와 휴지걸이, 수도꼭지를 고르는 것도 큰일이었다. 변기와 세면기 회사에서 나오는 '몇 종 세트'를 달고 싶지는 않았다. 이 화장실에 어울리는 것들만 벽에 걸고 싶었다. 물기가 닿으면 물러지는 고형 비누를 쓰지 않은 지 오래되어 비누그릇이 필요하지 않았다. 또한 세면기 주위에 공간이 여유있어 굳이 컵받침을 벽에 달 필요도 없었다. 화장실 수납장도 달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당연히 들어갈 거라고 생각한 작업자들은 곱게 붙여놓은 타일 위에 수납장과 세트 설치를 위한 구멍을 매우 '친절하게' 뚫어놨다. 그걸 가리자면 타일을 다시 뜯어내야 했는데, 그걸 다시 뜯는다는 건 멀쩡한 새집에 자칫 지저분한 수리 흔적만 남을 수 있는 일이라 과감하게 뜯자는 말을 못했다. 그렇다고 원치 않는 수납장과 비누와 컵 받침을 벽에 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자니 이번에는 뚫린 구멍을 어떻게 막느냐가 고민이었다. 그냥 실리콘으로 쏘면 간단하다는 말에 뒤로 넘어갈 뻔했다. 물론 그러면 기능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기능만큼이나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실리콘은 절대 안 될 말이었다.

마당에서 대청으로 올라가는 기단의 바닥은 그냥 매끈한 마감이 아니라 굳기 전에 옛날 '가마니' 느낌의 패턴을 찍어서 넣기로 이야기가 돼 있었다. 막상 바닥 마감 공사를 하는 분들은 그게 왜 필요하냐고, 잘 보이지도 않고 지저분하기만 하다며 생략하려고 했다. 생략하면 안 된다는 내게 지금 어디 가서 가마니를 구해오느냐며 할 수 없다고만 했다.

이 작업에 그 패턴을 쓰겠다는 것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듯했다. 내 연락을 받은 건축가는 "절대 안 될 말"이라며 부랴부랴 수소문해서 직접 가마니 패턴과 비슷한 러그 비슷한 것을 구해왔다. 그리고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은 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일에 힘을 쓰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굳기 직전의 기단 바닥에 패턴을 올리고 망치질을 수십 번 해서 완성해주셨다.

물론 그분들 말씀대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기단의 가마니 무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기단을 밟고 오르내릴 때마다 한 번 더 손이 간 그 보일 듯 말 듯한 무늬로 인해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대문 옆으로 삐죽 튀어나온 보일러 연통을 본 날은 심란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입면에 세심한 고려 없이 구멍을 뚫어 만든 연통은 두고두고 문젯거리가 됐다. 온갖 전선들이 얼기설기 연결된 것들도 거슬렸으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안업체의 CCTV카메라 위치와 보안장비들의 설치 위치 역시 누구도 현장에서 챙기지 않아 애초에 내가 지정한 곳과는 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한 채의 집은 점점 꿈속에서 꿈 밖으로 나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이 집은 점점 나의 집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 황우섭

 
나에게는 무척 중요한 이런 일들이 현장의 작업자들에게는 그저 까다로운 집주인의 공연하고 쓸데없는 '까탈'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나는 수고하신다, 모쪼록 잘 부탁한다는 말을 현장을 오갈 때마다 입에 달고 살았으나, 다녀올 때마다 거슬리는 부분들 때문에 상한 맘을 달래느라 애를 끓여야 했다.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었지만 줄줄 놓치고 있는 것들이 내 눈에 보였다. 큰 것만 보자고, 사소한 것은 그냥 접고 가자고 나 자신을 달랬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모든 일이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격하게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여야 했다.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건축주는 어떤 공간을 머리에 그리며 매우 막연한 꿈을 꾼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그 꿈을 도면의 언어로 그려낸다. 시공자는 현장의 작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눈앞에서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현장의 작업자들이다.

집주인은 말로, 건축가는 그림으로 집을 짓지만, 현장에서는 손과 발, 어깨와 허리로 집을 짓는다. 그 간극이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작업자들을 탓하기 위한 게 아니다. 그분들은 할 수 있는 한 모두 최선을 다하셨고, 더할 수 없이 성실하셨다. 그분들의 수고와 정성으로 집은 점점 집다워졌다.

집이 집다워지는 것과 함께 나는 속이 상하고, 마음을 끓이고, 포기와 타협을 받아들였다. 그러는 동안 혜화동에 지어지는 작은 한옥 한 채는 비로소 나의 집이 되어갔다.

직접 집을 짓는 것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집을 값을 치르고 사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일이었다. 한 채의 집은 말하자면 통장의 돈과 '샤방샤방'한 꿈의 나열로만 지어지는 게 아니었다. 집 한 채를 짓는 동안 기쁨과 슬픔, 좌절과 즐거움이 동시다발적으로 교차됐다. 머리로만 꿈꾸던 집은 이제 현실의 바닥에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희로애락의 간난신고를 겪어야만 견고해진다. 언제나 좋은 얼굴, 좋은 마음으로만 지낼 수는 없다. 역설적으로 그렇게만 지내다 보면 관계의 강도는 매우 허약해진다. 나는 이 집과도 희로애락, 간난신고의 과정을 겪어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이 집의 기와마다, 기둥마다, 공간마다 일하는 분들의 수고만큼이나 나의 기쁨과 좌절, 아쉬움과 후회가 진하게 배어들고 있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꿈을 줄이고 마음을 내려놓는 것과도 같았다. 처음 시작할 때 내가 상상한 집 짓기는 어여쁜 동화 같았다. 하지만 집을 짓는다는 건 도화지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게 아니다. 집을 짓는 동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없이 감정의 파고를 넘어야 했다.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수없는 심호흡을 거듭하며 나는 점점 포기와 타협을 배워갔다. 그건 마치 승부의 세계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일하는 분들의 노고와 입장을 머리만이 아니라 눈으로 가슴으로 조금씩 헤아려보기 시작했고, 반듯하게 맞춰야만 한다고 고집했던 와편의 어긋난 줄이 막상 집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렇게 보기싫지만은 않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채의 집은 점점 꿈속에서 꿈 밖으로 나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이 집은 점점 나의 집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이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공사 현장에 아무도 없는 날, 텅 빈 현장을 찾아 기와 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내 눈에 콩깍지가 떨어진 뒤에도 나는 이 집의 구석구석이 좋았다. 꿈 밖으로 걸어나와 내 눈앞에 선 이 집은 이제 온전히 내 것이 되어가는 중이다. ⓒ 황우섭

 
덧붙이는 글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됐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됐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작은한옥수선기 #혜화1117 #황우섭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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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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