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실험'... 한국 조각사를 한 자리에서 만나다

[다시 찾는 박물관과 미술관 2]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②

등록 2019.01.14 11:15수정 2019.01.1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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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중의 <삼라만상> ⓒ 이상기

 
강익중의 작품 <삼라만상> 만나기

강익중은 청주 출신의 작가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1984)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를 졸업(1987)했다. 3×3인치 작은 캔버스에 세상의 인간들이 겪는 고통을 표현하고, 이것을 대형 공공미술작품(public art works)으로 만들어 주목받았다. 1994년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함께 <멀티플 다이얼로그(Multiple/Dialogue)>전을 열어 유명해졌다. 199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했다.


1999년 강익중은 5만 명의 한국 아이들과 함께 파주 통일공원에서 <10만개의 꿈(100,000 Dreams)>이라는 공공미술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1㎞의 비닐터널 안에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북한의 아이들과 함께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정치적 의미는 대단했다. 이처럼 강익중은 공동작업, 공공성, 메시지를 강조하는 작품을 만들어갔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1층에 전시되고 있는 <삼라만상>도 3×3인치 작은 캔버스 만개를 원통형의 벽에 붙여 만든 설치작품이다.

 

작품 가운데 있는 반가사유상 ⓒ 이상기

 
1984년부터 2014년까지 30년 동안 그린 3×3인치 캔버스를 연결해 거대한 우주 즉 삼라만상의 세계를 구현해냈다. 수많은 그림과 기호 속에서 주제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문자가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케 해준다. '바른 마음 만든 노력'이라는 글귀가 핵심으로 보인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 뜻이 그 글속에 있다. 작품 가운데 반가사유상이 마음공부를 하며 앉아있다.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과 같은 형상이다. 그런데 금동이 아닌 크롬 도금이다. 주변 삼라만상이 반영되는 듯하지만,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반영되지 않는다. 불교용어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온 세상이 공허와 무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무로 가는 과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가는 게 우리네 중생이다. 강익중은 30년 동안 매일 본 세상에서 그 진리를 터득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남기고 있다.

1층 개방수장고에서 조각의 역사를 만나다
 

권진규의 남자흉상 ⓒ 이상기

 

<삼라만상>을 지나면 1층 개방수장고로 이어진다.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 청주 사람들이 수준 높은 예술에 목말랐던 모양이다. 1층 수장고는 조소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서는 한국미술 초창기 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김복진(1901-1940)의 '미륵불'이 가장 오래되었다. 1935년에 만들어진 불상을 1999년 복제한 것으로 되어 있다. 김복진은 금산사 미륵불을 만들고 법주사 미륵불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았다. 이곳에 있는 '미륵불'은 크기는 작지만 그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권진규(1922-1973)의 작품으로는 '마두(馬頭)' '여인좌상' '남자흉상' '여인입상' 등이 있다. 권진규는 무사시노(武藏野)미술대학에서 일본 근대조각의 선구자 시미즈 다카시(淸水多嘉示)에게 조소를 배웠다. 다카시는 프랑스에 유학해 앙투안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로부터 조소를 배운 실력파다. 권진규는 대학시절 목조와 석조에 열중했고, 졸업 후에는 테라코타와 건칠 같은 우리 전통 공예기법에 주목했다.
 

여인입상 ⓒ 이상기

 
권진규는 1953년 '나부'부터 1970년 '그리스토의 십자가'까지 일관되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추구했다. 그는 또 허영 가식 욕정을 벗겨낸 인간의 본질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허영과 종교로 분식한 모델, 그 모델의 면피(面皮)를 나풀나풀 벗기면서 진흙을 발라야 한다. 두툼한 입술에서 욕정을 도려내고 정화수로 뱀 같은 눈언저리를 닦아내야겠다."

권진규도 역시 형상에 마음을 담아 표현한 조각가였다. "나의 마음이 평온할 때는 불상이 미소 짓고 있지만, 나의 마음이 우울할 때는 불상이 울고 있다." 그는 안타깝게도 197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1972년 3월 쓴 글에서 "한 번 꺾일지언정 다시 살고 싶지 않다. 말라죽더라도 오히려 절개를 지키겠다.(一折不重生 枯死猶抱節)"는 백거이의 시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암시했다.
 

윤영자의 <얼굴> ⓒ 이상기

 
윤영자(1924-2016)는 홍익대학교 조각과를 졸업(1회)한 여류조각가다. 작품으로서의 조각과 기념물로서의 조각 모두에 능한 작가로, 이곳에는 등신대 이하의 인체조각이 전시되고 있다. 그녀는 50년대까지 사실성과 이상성을 추구하는 구상을 추구했다면, 1960년대 후반부터 과감한 생략을 통한 추상화 경향을 보여준다. 이곳에 있는 작품은 1959년작 '얼굴'이다.

전뢰진(1929-) 역시 홍익대학교 조각과를 졸업했다. 1954년 대학생 때 만든 '습작'이 있고, 195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인물상이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나부(1957)', '두상(1957)', '인어(1958)' 등이 당시의 대표작이다. 인체를 부드럽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80년대 이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통해 생의 예찬을 보여준다. 1986년의 '선경가족'이 그 예다.
 

전뢰진의 <인어> ⓒ 이상기

 
최만린(1935-)은 앞에서 본 조각가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한마디로 추상조각이다. 제목도 추상적이다. 그때문에 작품의 제작 의도나 주제를 파악하기 어렵다.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방송국 아나운서, 서울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을 지낸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1957년 국전의 특선작품 '어머니와 아들' 을 시작으로
'이브' 등 인간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생의 원초성 추구가 된다.

최종태(1932-)는 깨끗하고 순수한 경지를 추구한 휴머니스트 조각가다. 제목도 사람, 얼굴, 여인, 회향 등으로 인간적이고 종교적이다. 이곳에 있는 그의 작품 역시 종교적이다. 십자가를 든 여인들이 보인다. 그러나 최종태의 작품은 지나치게 정적이고 단순해서 모든 작품이 비슷해 보이는 아쉬움이 있다. 대표적으로 혜화동성당 마리아상과 길상사 관음보살상의 유사성이 언급되기도 한다.

백남준, 이우환, 권오상에서 실험과 도전을 보다.

 

백남준의 <데카르트> ⓒ 이상기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백남준(1932-2006)의 대표작은 서울관의 '다다익선'이다. 그의 작품은 항상 실험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 청주관에 전시된 '데카르트(1993)'도 제목부터 철학적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보인다. 작품 설명을 보니 데카르트를 로봇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탁자는 다리, 회로기판은 몸통, TV모니터는 눈을 나타낸다. 뉴미디어 또는 비디오 아트 작품이다.

이우환(1936-)은 1970년 전후 일본에서 발생한 미술운동 모노하(物派)의 선구자다. 그는 돌, 유리, 쇠 등의 물질과 물체를 연결해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물체의 관계에 중점을 두었다고 하는데,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곳에 있는 '관계(1992)'도 사실 철판 위에 네 개의 바위를 배치한 단순한 작품이다. 여기서 철판은 존재를, 바위는 관계를 나타낸다고 한다. 미니멀리즘 형태를 통해 인간적인 대화를 보여준다고 해석되고 있다.
 

이우환의 <관계> ⓒ 이상기

 
권오상(1974-)은 입체적인 대상을 평면으로 표현한 사진을 가지고, 다시 입체적인 조소를 만들어내는 특이한 작가다. 그래서 그는 사진과 조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작가라는 말을 듣는다. 또 인조성과 인간성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작가라는 말도 듣는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데오도란트(Deodorant) 타입>, <더 플랫(Flat)>, <더 스컬프처(Sculpture)> 3가지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 전시된 '쌍둥이에 관한 420장의 진술서(1999)'는 사진조각으로 불리는 <데오도란트 타입> 작품이다. 제목에 두 가지 사실이 나타난다. 쌍둥이는 하나의 몸통에 머리가 두 개인 사람이다. 여기서 420장은 사용된 사진의 숫자를 말하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은 사진의 복제성, 실제와 가상, 입체와 평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권오상의 <트리> ⓒ 이상기

 
'트리(2013)'는 <더 스컬프처> 계열이다. 사진을 붙여서 형태를 만들어가는 조소다. 사진, 알루미늄 같은 소재에 폴리스틸렌, 에폭시, 우레탄 같은 새로운 소재를 더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전통적으로 전등, 공, 종 등의 장식품이 걸리는데, 이곳에는 사람, 동물, 생활용품 등이 걸려 있다. 트리 상단부에는 성모 마리아 같은 여인이 후광으로 장식되어 있다. 권오상은 새로운 실험과 도전의 작가다.

외국 작가의 작품
 

니키 드 생팔의 <검은 나나> ⓒ 이상기

 
이곳에서 눈에 띄는 외국 작품으로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의 '검은 나나(1964)',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의 '집 지키는 개(1969)', 짐 다인(Jim Dine)의 '색채의 전율(1985)'이 있다. 니키 드 생팔은 파리 출신의 미국 조각가다. 1960년 중반 시작한 나나 시리즈는 신부, 어머니, 임산부, 매춘부, 마녀 같은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처음 옷감과 펄프를 활용한 등신대의 여성을 만들었다. 차츰 크기가 커졌고 재료도 폴리에스터가 중심이 되는 FRP로 바뀌었다.

'검은 나나'는 나나 시리즈 초창기 작품이다. 부푼 가슴과 배, 밝고 야성적인 무늬의 드레스, 검은 몸통과 머리로 이루어진 조각이다. 검은 피부를 가진 여인에 대한 편견을 떨쳐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나나를 통해 자유에 대한 신념, 기쁨, 희망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키 드 생팔은 파리의 퐁피두센터 앞에 있는 '스트라빈스키 분수(1982)'의 작가로 유명하다.
 

장 뒤뷔페의 <집 지키는 개> ⓒ 이상기

 

장 뒤뷔페의 '집 지키는 개'는 기존의 형상과 조형체계를 거부한 반예술적인 작품이다. 어떻게 해서 집 지키는 개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기존의 미학규범을 거부한 원초적이고 천진해 보이는 아르 브뤼(Art Brut)다. 아르 브뤼는 원초적인 예술, 반예술, 아웃사이더 예술로 불린다. 그는 1950년대 앵포르멜(Informal)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에 비해 짐 다인의 '색채의 전율'은 너무나 이상적이고 고상하다. 밀로의 비너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제목처럼 전율적인 색채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 최초의 한국인은 백남준(Nam June Paik)이다. 그는 1993년 독일 대표로 한스 하케(Hans Haacke)와 참가했다. 1995년에 김석철과 만쿠소(Franco Mancuso)의 설계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 만들어졌고,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이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이때 커미셔너는 이일이었고, 참가화가는 윤형근과 전수천 등이었다. 그리고 1997년에는 큐레이터 오광수에 의해 이형우와 강익중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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