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탐색기로 본 나의 연봉 순위, 그리고 내 존재 순위

[프로딴짓러의 일기] 대기업 퇴사한 N잡러, 내 삶은 몇 등일까

등록 2019.01.17 14:30수정 2019.01.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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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한국납세자연맹이 '연봉탐색기' 서비스를 제공하자 서버가 폭주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사이트에 접속해 연봉을 입력하면 전체 근로자 중에서 나의 연봉이 몇 순위인지 알려준다. 연봉이 2000만 원이라고? 당신은 100명 중 76등이군. 3000만 원이라고? 당신은 56등! 7000만 원? 무려 16등이군요!

'연봉탐색기 2019'는 근로자 본인의 연봉을 입력하면 연봉순위는 물론 세금 등을 제외한 내 연봉의 실수령액과 내 연봉에서 빠져나가는 공제항목의 분포 및 금액을 분석해 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입수한 근로자 1115만 명의 소득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단다.
  

한국납세자연맹의 '연봉탐색기' ⓒ 한국납세자연맹

 
연봉탐색기가 인기를 끌자 한편에서는 연봉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연봉탐색기가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있다'는 평이다. 납세자연맹에서는 '세금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목적이라고 말했지만, '순위'에 연연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내가 몇 등이라고?'가 더 먼저 보인다. (납세자연맹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똑똑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의 순위는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봉탐색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냉큼 사이트로 달려가서 '나의 순위'를 확인해 보았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궁금할 것이다.

결과는? 불가촉천민 정도일 줄 알았는데 수드라(인도 카스트의 최하위 계급) 수준임을 확인했다. 성적표로 말하자면 C나 D 정도를 맞은 셈이다. 굳이 '연봉탐색기'가 순위를 매겨주지 않아도 전 세계가 공고한 '신분제' 사회로 향해가고 있는 건 공공연한 이야기니 그러려니 했다. 사실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한국사회는 '줄 세우기'를 좋아해 ⓒ pixabay

 
나쁜 성적표를 확인하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건 '연봉의 순위'가 '가치의 순위'는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내 연봉의 순위가 100명 중 90등이라고 해서, 나라는 존재 자체의 가치도 100명 중 90등인 것은 아니다. 사람의 가치를 순위 매기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 잣대가 오로지 '돈'이 되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다.

돈이 넉넉하면 행복이 보장된다는 단순하고 유치한 논리는, 배를 곯아본 자들의 트라우마일까? '중산층'에 대한 기준을 미국은 '연 소득'에 중점을 두고, 프랑스는 '문화자본과 가치 지향'에 둔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새 신발 속 구멍 난 양말을 들킨 아이처럼 부끄러워진다.

'연봉이 4500만 원을 넘어가면 돈으로 인한 행복감에는 큰 차이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납세자연맹의 통계에 따르면 연봉 4500만 원인 사람은 100명 중 35등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35%의 사람은 임금 외의 방법을 강구해도 좋다는 이야기일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머지 65명의 사람이라고 좌절할 것도 없다. 주거공동체 '우동사(우리동네사람들)' 대표는 한 달 70만 원으로도 충분히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의 소비를 하는 수준은 다르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일정한 수준에 다다르면 임금이 높아진다고 해서 행복도 절대적으로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강신주 교수는 '최적생계비'를 이야기한 바 있다(최저생계비와는 다르다). 생존권 보장을 넘어선 개념이다. 어느 정도의 문화생활을 누리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다.

줄세우기를 거부한다
 

연봉이 낮다고 좌절하지 마라! 자신의 가치를 믿어라! 당당해져라! 긍정적이어라! 습관이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밑도 끝도 없이 긍정적이기만 한 자기계발서를 보면 어쩐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한 달만 쉬어도 당장 다음 달 방세 낼 돈이 없는데 희망과 긍정을 신봉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줄 세우기'에 열을 올리는 '신분제' 사회에서 굳이 자신의 계급을 간판 삼아 목걸이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노오력'으로 신분 상승할 가능성 따위가 보이지 않는다면, 최적 생계비를 확보한 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와 이런저런 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N잡러인 지금, 연봉은 반 토막이 났다. <딴짓> 매거진의 발행인이자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가는 일은 불안정한 여유로움이 있다.

그러나 주체적으로 삶을 꾸릴 시간은 좀더 많아졌다.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노동의 결과가 일부나마 내 몫이 되는 즐거움이 있다. 시간을 팔아 남은 시간을 좀더 호화롭게 보내는 대신, 시간을 적게 팔고 돈을 적게 쓰면서 내 시간을 천천히 즐기는 셈이다. '연봉탐색기'의 순위에서는 한참 뒤로 밀렸지만, 일하고 싶은 시간에 일할 수 있다는(노동강도는 더 세지만) 강점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최적생계비는 약 150만 원이다.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식료품을 사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사거나 영화를 보러 다니려면 그 정도의 돈은 필요하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씩 기울일 돈도 있어야 한다.

모든 걸 다 누릴 수는 없으므로 소비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옷을 한 벌 덜 사고, 비싼 식당에서 한 번 덜 먹는 대신 연극을 한 편 더 보고 책을 한 권 더 산다. 다행히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강점으로 평일 레스토랑 할인이나 항공권 할인을 노려보기도 한다.

연봉이 반 토막난 프리랜서 주제에 문화생활을 여유롭게 즐기는 걸 보며 누군가는 나를 '금수저'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 문화의 소비는 줄어든 연봉에 따라 함께 줄어드는 것이 아닌, 돈 대신이라도 얻어야 할 '문화적 자본'이다. 

분수에 안 맞는다는 소리는 귓등으로 스매싱 때리자. 클래식 공연을 찾아다니고, 출판시장에 이바지하는 헤비유저가 되고, 독립영화관에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척이라도 하면서 말이다. 관심 있는 강연도 기웃거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전시를 찾아가느라고 야근을 못하거나 승진에서 밀려도 괜찮지 않을까. 70등에서 50등이 되기 위해 삶을 저당 잡힐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낙제점에도 불구하고

실은 언젠가 일과 소득이 분리된 사회가 오기를 꿈꾼다. 직업이 평판을 결정하지 않고, 소득을 바꾸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그래서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받고 살 수 있었으면 한다.
  

no more work ⓒ 박초롱

 
제임스 리빙스턴은 'No More Work'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장이 더는 노동력의 순증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노동 그 자체가 경제적 필요성의 원천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 그때는 일을 적게 하고 여가를 많이 즐기는 것이 케인스의 주장처럼 '더 좋은 삶'의 필수 요건이 아니라 '삶'의 필수 요건이 된다."
 
연봉탐색기 시험에서 나는 처참하게 낙제점을 받았다. 그래도 괜찮다. 가끔 나는 '자발적 거지'를 자청하곤 하는데, 이 단어에서 방점은 '거지'가 아니라 '자발적'에 찍혀 있다.

연봉탐색기를 누를까 말까? 눌러서 자신의 등수를 확인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납세자연맹의 말대로 합리적 소비지출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고 납세자의 권익 의식 향상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명심하자.
그건 '당신 존재의 등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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