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와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대한민국 와인기행] 정석태(국립농업과학원 발효식품가공과) 박사 ①

등록 2019.01.17 16:06수정 2019.08.0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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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태 박사 ⓒ 유혜준

 
2015년 4월부터 광명동굴에서 한국와인 판매를 시작하면서 일어난 한국와인 붐은 2019년이 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2018년에 두드러졌다. 매스컴이나 뉴스매체에서 한국와인을 다루는 빈도가 잦아졌고,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이 많은 와이너리들이 매출이 증가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와이너리들은 두드러진 매출 증가 덕분에 시설과 설비 증설에 나서거나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2018년에는 예년보다 많은 와인을 양조했다는 와이너리들도 많다. 일부 와이너리에서는 판매할 와인이 없어 판매량을 조절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반가우면서 바람직한 소식이 많이 전해진 2018년을 마무리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한국와인 붐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혹시 일시적인 바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한국와인산업의 전망은 어떨까? 

그래서 지난 2018년 12월 18일, 정석태 박사를 전주의 국립농업과학원에서 만났다. 정 박사는 현재 국립농업과학원 발효식품가공과에서 전통주 개발 총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 박사는 한국와인이나 한국와인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와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정 박사가 와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이다. 농촌진흥청 과수연구소 가공과에 근무하게 된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25년이 넘게 그는 한국와인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인연만 맺은 것이 아니라 한국와인산업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는 역할을 해왔다. 양조기술을 가르치고,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시험양조를 하면서 한국와인의 양조기술 향상과 신제품 개발에 노력해 왔다.

정 박사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포도품종을 개발하고, 신제품을 개발하고, 농민들에게 양조기술을 전수하는 등 한국와인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덧붙인다. 

정 박사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와인메이커들 때문이었다. 2017년부터 <대한민국 와인기행>을 취재하면서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와인메이커들을 만났는데, 그들에게 꼭 듣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정석태'였다. 정 박사에게 와인양조 전문과정을 배웠고, 와인양조를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정 박사에게 자문을 구해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또 많은 와인메이커들이 정 박사가 "한국와인을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전주로 만나러 갔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한국와인의 길지 않은 역사가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한국와인과 함께 한 그의 인생 이야기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만나고 돌아오면서 만나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다음은 정 박사와 한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정석태 박사 ⓒ 유혜준


우리나라에서는 와인(과실주)이 전통주 카테고리 안에 들어간다. 와인이 전통주? 와인의 종주국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서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이 전통주라니 저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유가 무엇일까?

"일반에서 생각하는 전통주의 개념과 법적인 전통주의 개념이 달라요. 일반 사람들은 약주, 청주, 막걸리 같은 옛날 술을 전통주로 인식하는데 비해 법적인 전통주는 민속주, 명인이 만드는 술, 지역특산주 이 세 가지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으로 전통주의 범위를 규정해놓고 있는 거죠."

우리 농산물을 원료로 만든 과실주, 즉 와인은 '지역특산주'로 분류되고, 지역특산주는 전통주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간다. 그래서 과실주(와인)가 '전통주'로 분류된다는 것이 정 박사의 설명이다. 

정 박사는 "농촌진흥청과 같은 기관이, 공무원들이 술 관련 업무를 하는 건 농산물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립농업과학원은 농촌진흥청에 포함된 기관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농산물을 많이 소비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갖고 연구, 개발을 합니다. 술도 소비를 많이 하죠. 특히 쌀이 그런데, 술을 쌀 먹는 하마라고 합니다. 술을 만들면 쌀을 가장 쉽게, 많이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건 다른 농산물도 마찬가지고."

정 박사가 국내 와인산업 활성화 연구하고, 지원하고, 정책 건의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과실 소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FTA 등 수입자유화로 인해 외국과일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우리 농산물의 위기를 의미한다. 수입과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국내 생산 과실 소비는 감소될 수밖에 없다. 과실 재배농가와 농민이 타격을 입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을까? 과실 소비를 늘리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좋은 방법은 가공을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술이 떠오른다. 양조를 하면 대량으로 과실을 소비할 수 있다. 과실 재배농가들이 와인으로 눈을 돌리는 가장 큰 이유다.

실제로 이런 현실이 반영돼 1990년대 후반부터 과실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농가형 와이너리를 설립, 와인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2000년대 후반부터 가속화돼, 2000년대 이전만 해도 30여 곳에 불과하던 농가형 와이너리가 2010년 이후에는 150여 곳 이상으로 늘었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충북 영동과 경북 영천이다. 두 지역의 와이너리를 합하면 70곳 가까이 된다.

2015년 4월, 광명동굴에서 시작된 한국와인 붐은 전국에 산재한 '농가형 와이너리'들이 기반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생산한 와인들이 광명동굴에 입점, 판매,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와이너리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와인 붐이 일기 전에 이미 정 박사는 한국와인산업 미래와 전망을 담은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연구 자료를 정리한 것은 2014년 3월로, 당시 정 박사는 미래에는 한국와인의 소비가 늘어날 것을 예측, 한국와인산업 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와인 품질특성을 파악하고,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국내 주요 와인산지의 지역별 와인산업 활성화 방안과 정책 발굴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특히 정 박사는 "국내의 와인시장에서 수입와인 소비 비율이 높은 것은 소비자가 좋은 품질의 과실주(와인)를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국내 와인의 품질을 높이면 소비 비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2000년대만 해도 맛과 품질 면에서 저평가되었던 한국와인이 2018년에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한국와인은 2018년에 세계 3대 와인품평회로 꼽히는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서 최대의 성과를 냈다. 9개 와이너리의 10개 와인이 골드메달과 실버메달을 받았다.

'아시아 와인 트로피'를 주목하는 것은 전세계의 와인들이 출품되기 때문이다. 국내 와인품평회는 국내와인만 출품돼 경쟁하는 데 비해,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서 한국와인은 전세계 와인과 경쟁한다. 2014년에는 3개 와인이 수상했으며, 매년 상을 받는 와인이 늘어나고 있다. 
 

광명동굴 와이너리 맵. 지도에 나와 있는 것보다 와이너리가 많다. ⓒ 광명시

 
정 박사는 한국와인산업의 중심지로 무주, 영동, 영천을 꼽는다. 이 세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포도산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 품종이 다르다는 것. 즉 이 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도 다르다는 의미가 된다.

무주는 머루, 영동은 캠벨 얼리, 영천은 MBA(머스캣 베일리 에이)를 주로 생산한다. 이들이 와인의 주요 원료가 된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와인을 생산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한국와인의 다양성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 가운데 와이너리가 가장 많은 곳은 영동이며 영천이 그 뒤를 잇는다. 이 두 지역의 특징은 와이너리 대부분이 농가형이라는데 있다. 무주는 와이너리가 5곳에 불과하지만, 전부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5개 와이너리에서 400톤 이상의 머루주를 생산하고 있다.

정 박사는 '한국의 보르도' 후보로 영동과 영천을 주목하고 있다. 두 지역이 한국 와인 최고의 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가 이 지역들을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원료다. 뭐니 뭐니 해도 원료가 좋아야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는 특히 영천의 MBA를 최고로 꼽았다. 묵직하면서 향이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정 박사의 설명이다.

"영천은 MBA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자산이에요. MBA는 당도가 상당히 높아요. 22~23브릭스까지 올라가죠. 무가당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거죠. 그래서 MBA는 만들어 놓으면 기본은 해요."

정 박사가 두 번째로 주목하는 것은 와인생산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다. 그 점에서는 영동이 앞서가고 있다는 게 정 박사의 지적이다.

정 박사는 두 지역의 공통점으로 '산학협력'을 꼽았다. 영동은 유원대와, 영천은 경북대, 경희대 등과 산학협력을 통해 와인생산 기반을 닦았다는 것이다. 대학교와 협력체계를 구축해 와인 제조 기술지원과 전문교육을 통해 양조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 박사는 두 지역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2014년까지만 해도 영천이 앞서 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지금은 영동이 '한국의 보르도'가 될 확률이 높아졌어요. 와인용 포도 재배는 영천이 영동보다 훨씬 빨리 시작했지만 자생력 면에서는 영동이 영천보다 낫다고 봅니다. 영동은 와이너리가 많다보니 (자치단체) 지원받기가 쉽지 않아 각자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게 중요한 원인일 겁니다."

영동의 와이너리는 한때 47개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44곳 정도가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천은 16곳이다. 정 박사는 영동의 경쟁력으로 '와인연구소'를 꼽았다. 영동에는 충북농업기술원 산하기관인 와인연구소가 있다.

"영동 입장에서 보면 와인연구소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혜택을 받은 거죠. 지역에 와인연구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수시로 와인 분석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거죠. 와인 분석이 중요한 것은 내 와인의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모티브가 제공되는 것이거든요."

뿐만 아니라 와인연구소는 다양한 연구 활동 등을 통해 영동의 와인산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영동은 70억 규모의 예산을 확보, 2021년까지 '영동와인 명품화, 대중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와인의 중심지'는 영동이 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들 3개 지역 외에도 전국 곳곳에 명품와이너리들이 많아졌다. 안산, 홍천, 가평, 포천, 삼척, 문경, 세종시, 천안, 영주, 김천, 청주, 경주, 사천, 완도뿐만 아니라 멀리 제주에도 와이너리들이 있다. 새롭게 와이너리를 준비하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정 박사는 한국와인의 경쟁력으로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과실로 와인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도 주산지를 중심으로 와인산업이 활성화돼 발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도이외의 과실로 다양한 와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 와인기행] 정석태 박사 ②로 이어집니다.
#정석태 #한국와인 #국립농업과학원 #술 #전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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