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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키린 마지막 연기 본 감독 "연기 한다는 느낌보단..."

[인터뷰] <일일시호일>의 감독 오모리 타츠시

19.01.15 17:50최종업데이트19.01.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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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다도 문화가 있지 않나. 일본과도 그 문화가 다르니까 한국 관객들께서 영화 <일일시호일>을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 전회차를 매진시키고 일본에서 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일일시호일>의 감독 오모리 타츠시가 오는 17일 개봉을 앞두고 내한했다.
 

영화 '일일시호일' 감독 오모리 타츠시가 지난 14일 내한해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를 했다. 영화 <일일시호일>은 다도를 배우게 된 한 여성 노리코(쿠로키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 영화사 진진

 
영화 <일일시호일>은 <어느 가족>(2018) <걸어도 걸어도>(2008) <도쿄타워>(2007) 등에 출연한 배우 고(故) 키키 키린의 마지막 작품이다(관련 기사: 배우 키키 키린의 마지막 인사, 그만 울컥해버렸다 http://omn.kr/1gn5k).

<일일시호일>은 20살이 돼 우연히 다도 교실에 간 대학생 노리코(쿠로키 하루)가 다도와 함께 실연, 이별, 취업 실패 등 인생에 아프고 힘든 중요한 순간들을 통과해가면서 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여기서 키키 키린은 노리코의 다도 선생님 다케타 역할을 맡아 노리코의 중요한 순간을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준다. 영화는 작은 다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계절과 인생을 그린다. <일일시호일>은 다도라는 아주 작은 것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인간의 생이라는 큰 화두를 다룬다.

오모리 타츠시 감독은 영화의 원작 도서 <매일매일 좋은 날>(모리시타 노리코 지음)을 언급하면서 "작은 세계를 다루지만 사실 큰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다실이 좁지 않나. 그 안에 작은 우주가 있다. 이 우주를 표현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일일시호일>의 감독 오모리 타츠시를 만났다. 다음은 <일일시호일>의 오모리 타츠시 감독과의 일문일답.

"배우 키키 키린, 무섭다고 들었지만"
 

영화 <일일시호일> 스틸 사진 ⓒ 영화사 진진


- 한국에서는 <일일시호일>이 배우 키키 키린의 마지막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하는 관객들이 있을 것 같다.
"<일일시호일>에서 처음 배우 키키 키린과 같이 일을 했다. 인간적으로 알고 싶었고 같이 일을 하고 싶었던 배우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무섭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긴장했다. 물론 실제로 봤을 때 무섭고 엄격한 부분을 갖고 계신다. 하지만 배우라고 대단한 대접을 받으려 하지 않고 아침밥도 당신이 직접 하시고 직접 운전을 하셔서 현장에 오셨다. 현장에 있는 스태프나 배우들에게도 '밥은 먹었니' '잘 쉬고 있니'라면서 신경 써주신다. 현장에서 그 분의 사랑이 느껴질 때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키 키린은 일본 여성들이 심적으로 의지하는 존재다. 많은 여성들이 여성들의 마음을 지지해주는 배우라고 느끼고 있다. 그 분의 존재를 한국 분들은 알고 계실까? 한국 분들은 키키 키린을 어떻게 알고 계실지 궁금하다."

- 키키 키린 같은 배우도 애드리브를 하나?
"전혀 없다. 하지만 촬영이 끝나고 '컷'하면 농담을 해서 스태프를 웃기곤 하는데 그걸 영화에 쓴 적은 없고 애드리브는 하지 않으셨다."

- 그렇다면 애드리브가 아니라 배우 키키 키린이 상의 하에 대본이나 장면을 수정한 경우는 있었나?
"배우 키키 키린이 '다케다 선생님에게 뭔가 조금 더 (설정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라고 하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구체적인 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바꾸자고 했던 건 거의 없었다. 다만 극 중에서 노리코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흩날리는 꽃잎 속에서 노리코와 다케타 선생님이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원래는 '눈물을 흘린다'고 돼있었는데 '굳이 안 흘려도 되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영화 <일일시호일> 스틸 사진 ⓒ 영화사 진진

 
- 키키 키린의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혹시 부업으로 다도 선생님을 하셨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웃음)
"'연기'를 한다는 느낌보다 생활의 연장선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상을 제대로 영위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연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감각이나 감정을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녹여내는 분이다. 다케타의 감정을 그대로 자신의 감각 안으로 갖고 들어와서 영화 속에 녹인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다도가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라 촬영할 때는 힘들어 하셨다. 다른 젊은 배우들처럼 여러 컷을 찍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연기를 하시는 걸 보면 배우로서 집중력이 엄청난 분이었던 것이다."

- 주인공 노리코 역할을 맡은 쿠로키 하루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 콘텐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한국 사람이라면 쿠로키 하루를 알고 있다. 그와 작업한 소감에 대해서 말한다면?
"배우 쿠로키 하루는 야마다 요지 감독님의 영화 <작은 집>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지 않나.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했고 배우로서의 근본적인 힘을 가진 엄청난 사람이다. 실제로 연극을 보러 가면 에너지가 대단하다. 쿠로키 하루의 얼굴은 굉장히 차분하고 안정감 있는 얼굴이고, 일본적인 얼굴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실제 성격은 무척 강하고 자유분방하다. 야마다 요지 감독님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 후로 차분한 역할을 많이 맡았다. 하지만 본인은 센 역할을 하고 싶다고도 이야기를 한다." 

"촬영 전 다도 배웠지만... 영화 끝나고는 안 해"

- <일일시호일>은 원작 에세이가 있는 작품이다. 에세이를 처음 영화로 바꾼 과정을 소개해달라.
"오래 알고 지내던 프로듀서가 원작을 처음 갖고 와서 영화화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원작을 읽고 내용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세상에는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도 계속 옆에 두고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그걸 깨닫는 날이 온다는 말? 그 말이 굉장히 공감됐다. 또 다도와 함께 영화 속에서는 여성의 반생이 그려진다. 느린 템포로 여성의 반생을 그려나가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기에 영화화하게 됐다."

-  원작에서 어떤 부분은 꼭 살려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일일시호일>은 다도라는 작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 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실(다도 교실)이 좁지 않나. 하지만 그 안에 작은 우주가 있다. 족자나 차통 같은 다양한 다도에 관한 물건들이 있는데 그 소우주 안에서 모두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중간에 (카메라를 줌인해) 식물의 세포까지 보여준 장면이 있다. 이 또한 다실 안의 작은 우주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다실 안의 물건들을 통해서 우주를 표현하는 것에 공감했고 처음부터 흥미를 느꼈다."
 

영화 '일일시호일' 감독 오모리 타츠시가 지난 14일 내한해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를 했다. 영화 <일일시호일>은 다도를 배우게 된 한 여성 노리코(쿠로키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 영화사 진진

 
- 오모리 타츠시 감독은 원래 차(茶)를 좋아했나?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되면서 연습을 했다. 그 전까지는 모르는 세계였는데 아예 모르면 촬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배워야 해서 배웠다. 스태프들도 같이 했다. 그런데 (영화 촬영이 끝나니) 이젠 안 하게 된다. (웃음) 같이 했던 스태프들도 아무도 안 한다. 다도라는 게 (일본에서는) 여성이 하는 게 다르고 남성이 하는 게 다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다 여자였기 때문에 여성이 하는 다도를 배웠는데 남성이 하는 다도와 다르기도 하고 계속 하기에는 힘이 들더라."

- 영화 속에서 다케타 선생님이 다도를 가르치면서 '다도는 형식이 먼저, 마음은 나중에 담는다'는 말을 한다. 의문이 가기도 하고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이 작품 때문에 다도를 배우게 됐는데 정말 다도라는 건 형식이 딱 정해져 있더라. 물을 뜨는 것도 각도나 위치가 정해져있다. 그래서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각도를 좀 더 위로 올린다든지 하는 자의식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시키는대로 하라고 혼난다. 그런데 그 자의식이 나오는 것의 기저에는 다른 사람 눈에는 내가 좀 더 멋져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엄격한) 형식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서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 만들기도 그렇다. 나도 모르게 몸에 배여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있다. 자신의 진실된 모습이랄지 솔직함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걸 배우게 됐다. 최근에 테니스를 시작했는데 몸이 먼저 기억해서 움직이는 감각이 정말 좋더라."

- 처음에는 영화 예고편을 보고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영화 속에서 클로즈업이 많이 쓰이지 않았고 카메라와 배우들 사이에도 거리감이 있더라. 의도한 연출인가?
"의외로 클로즈업이 있다. 클로즈업이 그만큼 자연스럽게 보였다는 건 그 찍히는 사물의 거리감과 관객들이 거리감이 비슷했다는 것이다. 배우나 영화의 감정에 관객들이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찍었다. 영화가 60% 정도 다도 교실 안에서 진행된다. 좁은 곳에서 찍어야 했기 때문에 다양하게 찍기 위해 연구를 많이 했다. 카메라를 두는 장소나 촬영 거리 등 많이 연구해서 나온 것이다."
 

영화 <일일시호일> 스틸 사진 ⓒ 영화사 진진

 
- 남성 감독이 만든 여성의 삶에 대한 영화이다. 남성으로서 극복해야 할 것이 있었나.
"별로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본도 의외로 자연스럽게 썼다. 현장에서는 이 배우가 설정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중요시 여겼고 반영했다. '이렇게 연기해'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설정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고 우선시했다."

- 일본은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다도를 배우는 사람이 많은 걸 보고 정말 놀랐다. 최근 세대가 바뀌면서 장인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들었다. <일일시호일> 역시 세대를 이어 전승되는 전통에 대한 이야기다. 이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옛날에 정원사로 일본 정원에 나무를 심는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다. 그 일을 너무 좋아했다. 새로운 공간이 다듬어지는 모습들이 정말 좋았다. 스승 밑에 제자로 들어간 것이었는데 스승이 딱히 뭔가를 가르쳐주시진 않는다. 사실 나무를 심는 일이기 때문에 한 마디도 안 해도 된다. (웃음) 딱히 뭔가 가르쳐주지 않지만 그 관계 안에서 배우는 게 있지 않나. 그게 좋았다. 물론 제일 좋았던 건 비오는 날 일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웃음) 최근 후계자가 줄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 드릴 말씀은 없지만 내게는 그러한 관계가 있었고 이를 되게 좋아했다는 걸 말씀드린다."
일일시호일 다도 키키 키린 매일 매일 좋은 날 오모리 타츠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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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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