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검찰에 불려나오자 '포토라인 인권'이 생겼다

[取중眞담] 갑자기 법조계를 달군 포토라인 논란을 보며

등록 2019.01.15 19:15수정 2019.03.0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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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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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앞, 양승태 포토라인 사법농단 피의자로 검찰소환을 앞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소환 직전 서초동 대법원 정문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정문앞에 포토라인이 마련되어 있다. ⓒ 권우성


왜 하필 지금일까.

법조계가 포토라인 논란으로 뜨겁다. 15일 대한변호사협회는 법조언론인클럽과 공동으로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수사기관에 소환되는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워 언론에 노출하는 관행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동안 검찰은 주요 피의자를 공개소환할 경우 그 시각을 언론에게 알렸고, 취재진은 미리 대기하다 이들이 검찰 조사에 들어가기 전 질문을 던졌다. 법원은 피의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일정을 언론에게 공지했다. 검찰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가는 피의자들은 그렇게 취재진 앞에서 멈춰야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도 포토라인에 섰다.

그런데 갑자기 포토라인으로 시끄럽다.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지금 이런 논쟁이 일어났을까.

'피의자' 양승태, 검찰 소환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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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헌정 초유 피의자로 소환 재판개입, 블랙리스트 작성, 법조비리 은폐, 비자금 조성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소환되고 있다. ⓒ 유성호

 
"검찰에서 수사한답니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8년 6월 1일, 자택 근처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대법원의 재판은 신성하다"라며 자신과 법관들의 결백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의혹 정점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그런데 그는 검찰 포토라인 대신 친정인 대법원 앞에서 소회를 밝혔다. 그러자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제 포토라인 악습도 걷어내자'라는 글을 올렸다. 포토라인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허무는 야만적 행위"이자 "현대판 멍석말이"라는 지적이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지난해 6월 검찰이 본격적으로 사법농단 수사에 착수한 이후 몇 차례 반복된 장면이었다. 

법원의 자기비판, 성찰인가 방어인가

"우리가 그동안 너무 압수수색 영장을 남발한 게 아닌가 싶다."

한 고위법관이 사법농단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어느 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꺼낸 이야기다.

당시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을 두고 박근혜 정부와 교감한 정황을 포착해 피의자인 전·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잇따라 기각했다. '임의제출 가능성이 있다',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그대로 재판했다고 보기 어렵다' 등 납득하기 힘든 이유였다. 법조계와 언론은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며 비판했다.

그런데 이 고위법관은 "압수수색은 피의자 망신주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 수사기관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과도하게 영장을 청구하는 사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도 지난해 10월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법원은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했다. 영장실질심사는 피의자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장발부의 남용을 막기 위해, 즉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이유를 살피기 위해 마련된 절차다. 그러니 최 법원장의 말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옳은 말이다.

일부 판사들은 검찰에서 자주 있었던 밤샘조사도 비판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소환돼 밤샘조사를 받은 다음 날, 강민구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게시판에 '밤샘수사, 논스톱 재판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법원이 밤샘수사로 작성된 조서의 효력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밤샘조사는 이전부터 인권 침해 논란이 있었고, 이 때문에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만 실시할 수 있게 바뀐 지 오래됐다. 그러니 강 부장판사가 비판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시 지극히 옳은 말이다.

지극히 옳은 말들... 근데 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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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의 모습. ⓒ 이희훈

 
그렇다. 판사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할 수도 있다.

문제는 법원이 여태껏 그런 목소리를 얼마나 내놓았느냐다.

포토라인은 '피의자 보호' 차원에서 등장했다. 1993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던 중 기자들이 몰려들어 부상을 입었다. 이 일을 계기로 취재진은 자발적으로 포토라인을 정리했고, 이것은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양 전 대법원장이 11일 대법원 앞에 섰을 때는 경찰이 언론에게 요청한 포토라인이 설치됐다. 취재진과 시위대가 몰려드는 상황에서 혼선을 방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법원도 지금껏 별 다른 문제의식 없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피의자의 심문 일정을 취재진에게 알렸고, 포토라인 관행을 묵인해왔다.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불려나오기 전까지 사법부에서 포토라인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 소환되고 나서야 '포토라인 인권'이 생긴 셈이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향한 비판 또한 마찬가지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낸 '2018 사법연감'에 따르면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지난 5년간 약 90%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법원의 과도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비판하는 판사는 사법농단 수사 이전까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장 발부를 남발한 자신들을 되돌아 보는 건 좋은 태도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 대상이 되고 나서야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밤샘조사를 향한 비판은 또 어떤가.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도 수많은 기업회장들도 밤샘 조사를 받았다. 그렇게 작성된 조서도 재판에서 문제없이 증거로 채택됐다. 그 사이 밤샘 조사를 비판한 판사가 있었던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걸까. 하필 왜 지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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