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미세먼지, 일본은 한 발 빨랐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협력 통해 대응하고 경제적 실리까지 챙긴 일본

등록 2019.01.16 14:07수정 2019.01.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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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미세먼지 공습 사상 처음으로 사흘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15일 세계 기상 정보를 시각화하여 나타내는 비주얼 맵인 어스널스쿨로 확인한 이날 오전 9시 한반도의 초미세먼지 대기상황. 중국과 한반도 지역이 초미세먼지로 붉게 표시돼 있다. 2019.1.15 [어스널스쿨 홈페이지 캡처] ⓒ 연합뉴스


고농도 미세먼지가 13~15일 사흘간 수도권을 특히 괴롭혔다. 미세먼지와 관련된 문자 메시지도 3일 연속으로 도착했다.

이제는 미세먼지 소식이 비 소식보다 많이 들리는 세상이 됐다. 과거 행사 안내서에 단골처럼 적혀있던 '우천시 연기'라는 글귀가 그리워 질 수도 있다. 비로 행사가 연기되는 경우보다 미세먼지로 연기되는 경우가 점점 더 흔해지는 것 같다.

바람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불어오는데도, 그간 중국은 미세먼지 발생에 대한 책임을 부인해왔다. 지난 2018년 12월 28일에는 류여우빈 생태환경부 대변인이 초미세먼지를 예로 들며 "서울의 미세먼지는 주로 서울에서 배출된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초미세먼지를 제외한 나머지 미세먼지에 대해서는 책임을 부인하지 않는 듯한 발언이기도 했지만, 그냥 듣기에는 자국의 책임을 완전히 부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15일자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진 외교 소식통의 말에 따르면, 최근 중국 정부가 한국 미세먼지에 대한 자국의 책임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한다. YTN은 "(중국 측이) 우리나라와 양자 협상 채널에서는 미세먼지 발생의 중국 영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양국의 공동 협력을 논의했다고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에 공들인 일본 정부

일본은 위치적으로 한국에 비해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을 덜 받는다. 그렇지만, 대응에 있어서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중국과의 협력체제를 통해 미세먼지에 대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일본 기업들의 대(對)중국 수출까지 촉진하고 있다.

일본은 1988년 '중일우호 환경보호센터'를 중국에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1994년에 환경보호협정을 중국과 체결했다. 이런 협력관계를 발판으로 미세먼지 분야에서도 한국보다 앞서 대중국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중국 외교에서 한국보다 불리한 일본이 환경외교에서는 한국을 앞질러 있는 것이다. 이수철 일본 메이죠대학 교수의 논문 '일본의 미세먼지 대책과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한중일 협력'은 그간 일본 정부가 공들인 노력 중 일부를 이렇게 소개한다.
 
"일본은 중국과의 다양한 연계협력 대책을 추진하였는데, 예를 들어 풍부한 대기오염 관련 대책 경험과 환경기술을 가진 일본 자치단체 등의 지식이나 노하우를 중국 주요 도시의 인재육성 등에 활용하고, 중국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도시간 연계에 관한 회합을 도쿄에서 개최함으로써 산·학·관이 팀을 구성하여 국내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측이 제공할 수 있는 부분과 중국 측이 원하는 수요를 파악하여 도시간 연계를 통한 구체적인 협력을 촉진하고 있으며, 연구기관이나 전문기관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
-2017년에 한국자원경제학회가 발행한 <자원·환경경제연구> 제26권 제1호에 수록.
 
도시 간 협력 사례를 살펴보면, 일본이 미세먼지를 매개로 중일 협력관계를 밑바닥에서부터 구축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일례로, 도쿄도는 베이징시의 환경 연수생들을 수용하고, 나가노현은 허베이성의 연수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이타마현은 산시성에 환경 기술자들을 파견하고, 도야마현은 랴오닝시에 기술자들을 파견하고 있다. 역사 문제나 영토 문제 등으로 인해 언제라도 와해되기 쉬운 중일관계를 저변에서 지탱하는 데에 대중국 환경외교도 한몫 하고 있는 것이다.

연수생을 받아들이고 기술자를 파견하고 있으니 언뜻 보면 일본이 손해보는 것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중일관계 파탄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으니 결코 손해라 볼 수 없다. 또 일본 정부는 돈을 쓰지만, 일본 기업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이수철 논문은 "기업들은 이와 관련한 설비 기자재와 기술을 중국에 판매하는 등 비즈니스 기회를 얻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이 미세먼지를 발판으로 중국에서 돈을 벌어들인다는 점은, 다른 학자의 뇌리에도 인상적으로 포착됐다. 2004년에 <국제정치논총> 제44집 제2호에 실린 원동욱의 '중국 환경외교: 역사·원칙·실제'에 이런 말이 있다.
 
"현재 중국은 자국의 거대한 환경산업시장을 일본에 열어놓은 것을 대가로, 환경보호에 필수적인 재정적 원조와 기술 지원을 이끌어내는 윈·윈(Win-Win)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이 일정 정도 돈을 투자해 중국 환경시장에 진입한 뒤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 때문에 중국인들의 미움을 사고 있다. 그래서 중국과의 외교관계에 애를 먹고 있다. 그런 일본이 환경외교에서 성공을 거두고 돈까지 벌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 중국 환경외교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으며 대중국 환경외교의 금기 사항에 유의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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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에 뒤덮인 서울 도심 고농도 미세먼지로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곳곳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14일 오후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고 있다. ⓒ 권우성


환경을 정치·외교에 적극 활용한 중국

중국이 환경외교에 나선 것은 1970년대부터다. 원동욱 논문은 "중국 환경외교의 출현은 1972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 회의는 국제 환경외교가 시작된 최초의 계기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한다.

당시는 중국이 세계 정상급 국가로 막 공인된 직후였다. 중국은 1969년에 핵확산금지조약(NPT) 체결을 계기로 합법적인 핵 보유국이 되고, 1971년에 대만(타이완·자유중국)을 밀어내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됐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불법' 핵실험을 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욕을 먹고 제재를 받던 나라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면서부터 국제 환경문제에 협력적인 나라로 바뀌었던 것이다.

중국은 환경외교를 환경 문제뿐 아니라 정치·외교에도 활용했다. 국경을 초월할 수밖에 없는 환경문제의 특성을 활용해, 정치·외교적으로 급할 때는 환경 외교를 전면에 내세웠다. 일례로, 민주화운동 탄압 사건인 1989년 천안문(톈안먼) 사태 뒤에 국제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중국은 일본이나 서방 국가들과의 환경 협력을 적극 추진했다. 공감대를 쌓을 수 있는 방법으로 외교적 고립의 탈피를 시도했던 것이다.

중국은 1840년 제1차 아편전쟁 때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때까지 자국 땅에서 제국주의와 맞서 싸웠다.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뒤의 중국은 미국과 소련의 패권 지향적인 세계전략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소련 어느 쪽에도 가세하지 않는 제3세계 비동맹외교에 참여한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비동맹외교의 특성이 중국의 환경외교에도 자연스레 묻어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선진국들이 환경보호라는 미명 하에 개발도상국의 잠재성을 꺾으려 하거나 이를 빌미로 개도국의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에 대해 극도로 경계해왔다. 상대 국가가 환경문제를 빌미로 제국주의 침략을 연상시키는 방법으로 중국 산업문제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을 싫어했다.

1970년대에 중국이 취한 입장을, 원동욱 논문은 "중국은 일관되게 인류 환경의 오염과 파괴의 주요한 원인이 미·소 초강대국이 실행하고 있는 제국주의적 약탈과 전쟁, 침략전쟁에 있음을 강조(했다)"는 말로 설명한다.

한편, 비동맹외교에 적극 참여한 나라이다 보니, 다른 국가가 인류 차원의 공감대를 무기로 중국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것에는 아무래도 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의 중국 환경외교는 비동맹외교 시절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여전히 갖고 있고 비동맹외교에도 적극 참여했으므로, 그 시절의 정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역대 중국왕조가 공통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을 현대 중국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방이 뻥 뚫린 대평원에서 대대로 국가를 경영해온 중국 한족들은 사방의 이민족들이 합세해서 달려들 가능성을 항상 경계해왔다.

그래서 중국은 사방의 이민족들을 동시에 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 현대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국을 사방에서 둘러싼 국가들이 중국발(發) 환경오염에 공통의 불만을 표시하면서 반중국 연대를 형성할 가능성을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중국인들의 증오를 받는 나라다. 그런 나라가 중국과의 미세먼지 공조를 통해 경제적 실리까지 확보했다. 이는 일본의 환경외교 당국자들이 중국 환경외교의 특성에 유의하면서 중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자국이 제공할 수 있는 부분과 중국이 원하는 수요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중일 협력체제를 구축했다는 재일 학자 이수철 교수의 언급에서도 일본의 그 같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미세먼지 #중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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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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