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봉황이 살고 있었네

현해당의 인문기행11. 새와 나무의 고향, 교동도

등록 2019.01.16 15:15수정 2019.01.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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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교동평야 추수가 끝난 들판은 새들의 낙원이다. ⓒ 인천녹색연합

 
바다 한가운데서 이토록 넓은 평야를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교동대교를 지나 삼선리 들판에 접어들자 일망무제로 펼쳐진 광활한 평원이 우선,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사각형으로 잘 구획된 논들과 그 사이 사이로 난 농로와 수로,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아득히 늘어선 전신주가 기묘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인간세상의 감흥이 '달팽이의 뿔'과 같은 덧없음이라면, 아득히 넓은 평원 위에서 마주하는 세상은 '대붕의 날개'와 같은 무한대의 자유로움이다. 나는 어느덧 내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온갖 속박들을 벗어던진 채 한 마리 새가 되어 구만리장공의 드넓은 하늘을 지유로이 날고 있다.


2019년 1월 12일. 인천 녹색연합 기행 팀과 함께 교동도(喬桐島)를 찾았다. 교동도는 우리나라에서 14번째 큰 섬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해당한다. 북한 땅 연백평야까지의 거리가 3.2km에 불과한 접경지역으로 지난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되기까지 오랫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금단의 땅이었다.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도읍을 지근거리에 둔 군사적 요충지로 조선 인조(仁祖) 11년 계유(1633년)에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을 이곳에 설치했다. 삼도는 경기도와 충청도, 황해도를 말한다. 강화도와 함께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도 이용되었는데, 연산군과 임해군이 대표적이다.

고려 때부터 간척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오늘날의 광활한 평야는 화개산, 율두산, 수정산을 중심으로 한 3개의 섬이 연결된 간척사업의 결과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교동현(喬桐縣)」 조를 보니, 본래 고구려 고목근현(高木根縣)으로 대운도(戴雲島), 고림(高林), 달을신(達乙新) 등으로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이 현재의 이름으로 고쳐서 혈구군(穴口郡)의 영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고기 건조망 교동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안에 등이 까만 숭어새끼(동아)가 들어 있다. ⓒ 인천녹색연합

 
특산품으로는 조기, 숭어, 굴, 토화(土花), 조개, 낙지, 쌀새우[白蝦], 청해(靑蟹), 부레·소금 등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숭어가 많이 잡히는지 여기저기 대문밖에 매달아놓은 생선 건조망이 자주 눈에 띈다.

추수가 끝난 평야는 새들의 낙원이다. 쇠기러기, 큰기러기 등 수천 수 만 마리의 새들이 끊임없이 이륙과 착륙을 반복한다. 한편에서는 새들의 이런 움직임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검독수리의 모습도 관찰된다. 정중동(靜中動)이란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일까? 꼼짝없이 앉아 있다가 천천히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모습에서 과연 하늘의 제왕다운 품격이 느껴진다.


 

오래된 나무 교동에는 수령 이삼백 년 된 나무들이 마을마다 한두 그루 이상씩은 있다. ⓒ 인천녹색연합

 
농로 옆에는 갈대와 억새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고 참새들은 그 위를 날며 한껏 재주를 뽐낸다. 교동에는 수령 이삼백 년 된 나무들이 마을마다 한두 그루 이상씩은 있다. 땔감이나 목재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신목(神木)으로 보호되어온 결과라고 한다.

느티나무가 대다수이지만 간간이 회화나무, 물푸레나무, 오동나무도 눈에 띈다. 보호수로 지정된 인사리 느티나무에서는 해마다 실향민들이 모여 제를 지내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고향 땅에 한 뼘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나무에 그네를 매달아 뛰었다니 나도 모르게 가슴 한 쪽이 저려온다.

고구리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유난히 기름기가 흐르는 하얀 쌀밥에서는 최고 품질의 쌀을 생산하는 교동 주민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두부국, 시금치, 콩나물, 순무 등 반찬은 소박했지만 시장이 반찬이고 인심이 반찬이니 이만하면 진수성찬이라는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반찬 중에 하얀 빛이 나는 삶은 새우가 있었는데 이것이 앞에서 말한 쌀새우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교동읍성 남문 현재의 남문은 지난 2017년 복원된 것이다. ⓒ 이종헌

 
점심식사 후에는 고목근현지(古木根縣址)를 거쳐 읍내리로 나와 교동읍성과 동진포, 남산포 등을 돌아봤다. 옛 문헌을 보니 읍성은 둘레가 1천 6척(尺)이고, 옹성(瓮城)이 셋이고 치성(雉城)이 넷이며, 동남북(東南北) 3문과 소남문(小南門)이 있다고 했는데 현재는 다 무너지고 남문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는데 그것도 지난 2017년에 복원된 것이라 한다.

북문이 있었음직한 자리에는 부근당(扶芹堂)이라는 신당이 있고 그 옆에는 오래된 오동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본래 「부근당(付根堂)」이라는 것은 조선 전기부터 한양의 각 관청에 설치된 일종의 관립(官立) 신당으로 사방 벽에 나무로 깎은 남자 성기를 걸어놓고 복을 빌었다. 그런데 한 번 복을 빌 때마다 수백 금의 비용이 드는 폐단이 발생하자 중종 때 모두 없앴으나, 그 후 다시 일어나 성행했다고 한다.

관부에 설치한 사당이기에 부군당(府君堂)이라고도 하는데 어인 일로 교동읍성의 부군당은 '扶芹堂'이라는 한자를 쓰고 있으니 내가 모르는 어떤 심오한 뜻이 있는 것인지 문득 궁금증이 인다.
 

교동읍성의 느티나무 인천녹색연합 기행팀 「우보호시(牛步虎視)」 회원들이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 인천녹색연합

 
부근당 옆에 우뚝 서있는 나무는 교동에서 가장 오래된 오동나무인데 '교동(喬桐)'이라는 지명이 오래 전 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혹시 이 나무가 신라 당시에 있었던 '큰 오동나무'의 후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찍이 고려 때 이곳에 향교가 설치되어서 '교동'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오동나무 뒤쪽으로 희미하게 남아있는 옛 성곽 위에 오르니 멀리 화개산 아래로 향교의 모습이 보이는데 제법 규모가 크다. 1127년(고려 인종 5)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라고 하나, 1127년에 인종이 각 주에 학교를 세우도록 조서를 내리고 각 군현에 학교가 설립된 사례들이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엄밀히 말하면 최초의 향교라기보다는 최초의 향교 중 하나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아무튼 이 작은 섬에 그토록 오랜 연원을 지닌 향교가 있다는 것은 백번 천 번 되풀이해도 지나치지 않을 자랑거리임이 분명하다.

전해오는 말에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제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하고, 또, 봉황은 오동나무를 골라 둥지를 튼다고 한다.

비록 향교가 있어서 교동이라는 지명이 생겼을지라도 나는 '큰 오동나무'라는 뜻의 '교동(喬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봉황은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새다. 그 새가 둥지를 트는 나무가 오동나무이니 먼 옛날 교동은 큰 오동나무에 봉황이 깃들여 사는,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해중의 낙토(樂土)였음이 분명하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건대 교동은 고려 이래로 줄곧 외적의 침탈에 시달려왔다. 또 6·25전쟁 때는 민간인 특공대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6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그동안 피해자 가족들이 겪은 정신적, 물질적 고통이야 말해 무엇하랴?

몸에 난 상처는 세월이 흐르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피해 보상, 그리고 상처 치유와 화해를 위한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 숨죽이며 살아온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함이 해소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날, 교동의 큰 오동나무 위에 다시 봉황이 둥지를 틀지 않겠는가?

인천녹색연합 박주희 사무처장이 새해 운세를 적은 쪽지를 준비해 와서 점심식사 후 모두 자리에 둘러앉아 뽑기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한 장을 뽑으니 '뇌수해(雷水解)'라는 제목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위는 천둥 우레[雷]이고, 아래는 물[水]이다. 해(解)는 '해결되다', '해소된다', '풀린다'라는 뜻이다. 천둥이 진동하여 비를 내리니 얼어붙었던 대지가 풀린다. 봄을 의미하므로 해(解)를 괘 이름으로 하였다."

새해에는 내 인생도 술술 잘 풀리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만 잘 풀리면 무슨 재민가? 새해에는 부디 남북관계도 잘 풀리고, 경제도 잘 풀려서 모든 국민이 다 같이 신나고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인천녹색연합의 문화생태기행 '우보호시'는 매월 4주차 토요일에 실시된다. 참가신청은 인천녹색연합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된다.
#현해당 #교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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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기행 작가. 콩나물신문 발행인. 저서에 <그리운 청산도>,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느티나무와 미륵불>,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주부토의 예술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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