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이루어지고 죄지은 이가 처벌받았더라면

용산참사 그리고 나

등록 2019.01.17 14:19수정 2019.01.1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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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5일 용산참사10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 ⓒ 천주교인권위원회

 
용산참사10주기범국민추모위원회는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이하며 #용산참사_그리고_나 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이 해시태그 운동을 기획할 때 참 난감했다.

2009년 1월 20일, 그때 나는 중학교 3학년으로 막 넘어가는 중이었다. 물리적 거리상 용산은 매우 가까운 곳이었지만 집-학교-학원이 생활권의 전부였던 중학생에게는 심적으로 먼 곳이었다. 뉴스를 멀리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학원이 끝나고 귀가하면 메인뉴스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다.

"용산에서 화염병이 난무하다, 5명의 철거민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정도의 건조한 문장이 내가 기억하는 10년 전 참사의 전부일 것이다. 물론 용산의 기억이 2009년 1월 20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날 그런 일이 있었고 연일 뉴스와 신문에는 그때 망루에서 - '망루'라는 단어도 용산참사에서 처음 접하게 된 단어인 듯하다 - 도로변으로 화염병을 던졌다, 어쩔 수 없었다,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죽었다, 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솔직히 그때 내가 용산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멀지 않은 시점에 <두개의 문>이라는 영화가 개봉했고 우연한 기회에 그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며 그즈음부터는 확실하게 용산참사 생존자, 유가족들과 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당시 가장 좋은 놀이터가 성당이었던 내게 신부님들이 매일 같이 미사를 함께 봉헌하는 용산과 쌍차는 함께 해야 하는 일로 인식이 되었던 것도 같다.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강제퇴거 증언대회 후 김석기 제명을 요구하며 연좌농성하는 용산참사 생존자들과 유가족들 ⓒ 천주교인권위원회

  
내가 기억하는 용산은 어떠했는지, 그 이후 10년의 투쟁이 나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쓰기로 한 이 해시태그 운동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런 주절주절한 기억들뿐이다. 이명박·박근혜 때의 국가폭력은 너무나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여 그때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와 같은 세대에게도 역할이 주어지기에 이른 것이다.

슬프게도, 앞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픔을 함께 기억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국가폭력사건들은 물론이요 가습기살균제참사와 세월호 참사, 고 김용균과 고 이한빛 등 극한의 노동환경에서 죽어간 이들까지 그들을 죽게 만든 사람은 물론이요 법과 제도들까지도 소름 끼치도록 그대로이다.


그래서 용산참사를 비롯한 사회의 아픔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비극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지난 1월 15일 국회에서는 강제퇴거 증언대회가 있었다. 현장에서 상영된 강제퇴거 현장의 풍경은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니었음에도 볼 때마다 아픈 영상들이다.

증언대회를 마치고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은 용산참사에 책임 있는 국회의원 김석기를 제명하라는 의견을 발표하기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고자 하였으나 국회 측의 단호한 태도로 기자회견을 하지 못하고 연좌농성을 하며 몰려든 기자들에게 심정발표를 하여야 했다.

불길 속에서 동지를 잃은 생존자들이나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이 용산참사를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죄지은 이가 처벌을 받았다면 그들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산산조각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극의 연대를 이제는 정말 끊어내야
   

1월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 ⓒ 천주교인권위원회

   
어떤 사건의 해결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기본일 것이다. 아직도 그것이 제대로 되지 못한 사건들이 너무나 많다. 보통 국가폭력 사건의 경우 사건의 핵심에는 경찰, 검찰, 청와대 등의 핵심인물들이 얽혀 있고 시간이 지나더라고 그것을 밝혀내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가족과 동지를 잃은 사람들이 '왜 죽었는가'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하면 그 투쟁은 끝날 수 없다. '왜'에 대한 답을 들려주지 않아서, 나와 같이 그때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까지 투쟁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은 너무한 시대가 아닌가.

또한 이러한 사건들은 단발적인 사건일 경우가 드물다. 강정과 밀양은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행정방식이, 쌍용차는 노동자에 대한 해고와 복직의 문제가, 용산은 주거취약자 혹은 영세상인들에 대한 건물주의 무조건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제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 역시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큰 아픔을 겪은 이들이 그 다음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게 되는 이들과 연대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이 너무나 익숙하다. 강정, 밀양, 쌍차, 용산 그리고 백남기 농민의 유가족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고,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은 스텔라데이지호의 가족들, 안전불감증의 현장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이런 비극의 연대를 이제는 정말 끊어내야 한다.

지난 15일 국회에서 있었던 강제퇴거 피해자들의 증언대회는 지금도 폭력적인 용역들에 의해 쫓겨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으며, 우리 사회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 수립이 정말로 필요함을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용산 15주기, 20주기에도 그때를 살아가는 강제퇴거민들과 또 어떤 폭력을 증언해야 할지도 모른다.

#용산참사_그리고_나  해시태그운동에 함께 해주세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격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용산참사 #용산참사10주기 #강제퇴거 #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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