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가 아내와 장모 죽여"... 한발 늦은 피해구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지원결정 한 달 만에 숨져... 사회적참사특조위 "정부 기준 지나치게 엄격"

등록 2019.01.18 13:43수정 2019.01.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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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옥시를 막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전국네트워크' 출범식이 지난 2016년 6월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피해자와 가족모임, 시민사회,종교,보건의료,노동계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옥시의 완전 퇴출, 가해기업 및 정부의 책임자처벌, 옥시 재발방지법 제정 등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대외렵력위원장을 맡은 장하나 전 의원이 출범식에 참여하고 있다. ⓒ 권우성



  
희귀난치성 폐질환으로 9년 동안 투병해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지원 대상으로 인정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숨졌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회적참사 특조위)'는 18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특별구제계정' 대상자인 고 조성화(55)씨가 지난 15일 숨졌다고 밝혔다. 특조위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1997년 둘째 아이 출산 이후 가습기살균제 옥시 제품을 사용했고, 지난 2009년 희귀난치성질환인 '특발성폐섬유화' 진단을 받아 투병해 왔다.

'옥시 제품 영향' 인정 못 받아... "정부 판정 기준 지나치게 엄격"

정부는 지난해 4월 조씨의 증세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이 없다'(4단계 중 1, 2단계만 피해 인정)라고 판정해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다가, 지난해 12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 개정된 뒤 뒤늦게 특별구제계정 대상자로 인정했다. 조씨는 생전에 병원비 등 피해 구제를 신청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조씨는 지난해 9월 폐 이식 수술을 받은 뒤 회복하지 못했고 지난 15일 결국 사망했다.

전날(17일) 발인식을 마친 조씨 남편 송기진씨는 이날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9년 전 아내가 병에 걸렸을 때만 해도 옥시와 관련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지고 아내가 장모와 같은 병으로 죽은 뒤 옥시가 죽였다는 확신이 짙어졌다"라면서 "지난 2016년 피해 신고를 했는데 정부에서는 지난해 4월 아내의 폐 섬유화 진행 방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옥시 영향을 인정하지 않아 현재 재심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씨는 "지난달 중순 '특별구제계정'을 신청해 이달 중 지원비가 지급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6월로 미뤄졌고 그 사이 아내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면서 "나와 가족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도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사회적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발인식에는 조씨와 같은 병원에서 폐이식 수술을 받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아무개씨도 참석했다. 안씨는 "폐 이식 환자들 인터넷 모임방에서 같이 활동했지만 조씨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줄은 몰랐다"면서 "제조사와 정부의 잘못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았는데 피해자들이 계속 세상을 떠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 폐 이식 수술을 받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안아무개씨가 지난 17일 고 조성화씨의 발인 차량을 바라보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최예용 사회적참사특조위 부위원장) ⓒ 사회적참사특조위

 
정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 6246명 중 798명만 '피해 인정'  

2018년 12월 말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6246명이고 사망자가 1375명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환경부에서 피해를 공식 인정한 '구제급여' 대상자는 12.8%인 798명에 불과하다.

정부의 판정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피해 단체의 지적에 따라 환경부는 지난해 7월 '일정 수준 의학적 근거가 확보된 질환'은 '특별구제계정'으로 선정해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말 현재 조씨와 같은 폐섬유화 질환자 144명을 포함해 간질성 폐질환, 기관지확장증, 폐렴, 천식 등 피해자 1869명이 구제급여에 상당하는 지원이나 긴급의료지원 등을 받을 수 있게 됐다.
 

2018년 12월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 6246명 가운데 정부에서 인정한 피해자는 798명으로 12.8%에 불과하다.(자료: 환경부, 사회적참사특조위) ⓒ 사회적참사특조위


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예용 사회적참사특조위 부위원장은 이날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폐손상 질환의 경우 정부의 인정률이 10%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엄격해 대다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피해 구제를 받지 못했다"라면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에서 거둔 돈으로 특별구제계정을 만들어 병원비, 장례비 등을 우선 지원하게 됐지만 임시방편일 뿐이고 정부가 공식 피해자로 인정한 건 아니어서 제조사에 손해배상을 받을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최 부위원장은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초기 어린이와 산모, 급성질환 사망자의 특징적 소견만으로 판정 기준을 만든 뒤 박근혜 정부에서 광범위한 피해자들에게 나타난 소견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정부에서 획기적인 피해자 인정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고인처럼 제때 지원을 못 받고 숨지는 피해자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환경부가 환경독성보건학회에 의뢰해 진행한 피해조사 결과 전체 가습기 살균제 노출자는 400만 명에 이르고, 건강이상을 경험해 병원 치료를 받은 피해자는 50여만 명에 이르는 걸로 추정된다.

최예용 부위원장은 "피해자 면담 과정에서 고인의 친정 어머니도 옥시 제품을 사용하다 폐섬유화로 지난 2008년 사망했다는 걸 알았다"라면서 "가습기 살균제 관련성을 전혀 의심하지 못해 신고조차 못한 피해자들이 많을 것으로 추정돼 특조위에서 피해자 찾기에 전념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특조위는 서울 도봉구와 마포구 일대에서 시범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와 피해자 찾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점차 대상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가습기살균제 #사회적참사특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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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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