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 청와대까지 행진한다면, 어떻게 될까?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비정규직을 지켜주지 않는 나라

등록 2019.01.19 15:20수정 2019.01.1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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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의역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자회견. ⓒ 김종성


금요일인 지난 18일 오후 1시,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1000인의 김용균들, 구의역에서 청와대로 1박 2일 행진'이란 주제로 갖는 자리였다.
 
이 기자회견은, 스크린도어 수리 중에 열차에 치인 '김군'이 일했던 구의역에서부터 청계천 전태일 다리와 광화문 분향소를 거쳐 청와대에 이르는 총 코스 13km, 1박 2일 행진의 시작이었다. '내가 김용균이다'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비정규직 이제 그만,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노동자들의 결의를 다지는 출발점이었다.
 
기자회견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성토하는 발언들이 있었다. 이준석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화력발전소 지회장은 고 김용균 노동자의 희생을 하청 책임으로 떠넘기는 원청의 행동을 비판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년 노동자인 이은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위원장은 자신과 친구들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조금 받고 많이 일하고 늘 아픈 상태로 일했지만, 정규직 전환 그리고 승진은 정말 먼 꿈과 같았습니다"라고 한 뒤 이렇게 말했다.

"특히 공장으로 간 친구들은 단순 생계(를 걱정해야 할)뿐만 아니라 위험을 견뎌 가며 일해야 했습니다. 매일 위험한 화학약품을 마주하며 부품을 세척하거나 조립하지만, 안전 장구는 정규직 사원에 못 미치는, 독한 약품을 견딜 수 없는 안전 장구만 보급받았고, 안전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내가 김용균이다’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른 참가자들. ⓒ 김종성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호소도 있었다. 임선재 서울교통공사 노조 PSD(승강기 안전문) 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대통령,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습니까? 늦었습니다. 매우 많이 늦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장 유족들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재발방지대책을 위한 죽음의 외주화 중단, 정규직 전환, 조속히 시행하시기 바랍니다."
  
진환 한국GM 창원공장 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가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면서 대화를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대화는 무시하면서, 재벌들과의 대화는 그렇게 쉽게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불법 파견의 범죄자들이고 비정규직 착취의 주범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그들로부터 고통 받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대화는 거부하고..."

소수 재벌엔 귀기울이고, 천 만 넘는 노동자 목소리엔 침묵
 

구의역에서 김군이 숨을 거둔 장소. ⓒ 김종성

노동자들이 정부를 향해 절절히 호소하는 것은 사실은 모순된 일이다. 국민이 주권자라는 이 나라에서, 소수 재벌의 목소리는 국정에 잘 반영되는 데 반해 1100만이나 될 뿐 아니라 산업생산의 중추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라의 정치 시스템에 중대 모순이 있다는 뜻이 된다.
 
만약 재벌총수 열 명이 '내가 재벌 ○○○다'라는 머리띠를 두고 추운 겨울에 13km를 걸어서 청와대까지 행진한다면, 아마도 대단한 난리가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좌불안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몇 백명이 모여 몇 날을 그렇게 해도, 자신들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기 힘들다.
 
이것은 한국 제도권 정치가 소수 자본의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반영한다. 다수 유권자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데 무기력함을 보여준다. 물론 각 분야 직능대표들이 비례대표가 되어 국회에 진입해 있지만, 이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회 각 분야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하는 면에서 한국은 유럽보다 뒤쳐져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은 후진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20세기 전반에 이 문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1937년 이후의 아일랜드 헌법과 1946년 이후의 독일 바이에른주 헌법에서는 직능대표들을 양원제 의회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규정했다. 아일랜드가 어떻게 했는지에 관해, 이준일 고려대 교수의 논문 '통일 후의 의회 형태로서 양원제-양원제에 관한 비교법적 검토와 함께'는 이렇게 말한다.
 
"아일랜드 상원의 경우 6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데... (중략)... 60명의 의원은 선출된 하원의원과 퇴임하는 상원의원, 지방의회의원 및 상원의원에 의해서 선출되는데, 공무원 대표 7명, 농업 대표 11명, 문화 및 교육 대표 5명, 산업 및 상업 9명, 노동자 대표 11명, 아일랜드대학 대표 3명, 더블린대학 대표 3명, 수상 지명 1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 2014년에 국제헌법학회가 발행한 <세계헌법연구> 제20권 제1호에 수록.
 
각 분야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법에는 직능대표 의회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고민해온 것을 한국에서는 아직도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우리 정치 체제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1100만이나 되는 비정규직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할 통로가 별로 없다는 것은 정치 시스템의 결함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1990년대 이후 우리 민족의 운명과도 직결되어 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된 점을 감안하면, 노동자들의 권익이 지금보다 훨씬 증진돼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부분적으로 향상된 면도 적지 않지만, 비정규직 문제에서 나타나듯이 전반적으로 보면 노동자들의 삶의 환경이 나아졌다고 단정하기 힘든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시민혁명이 벌어진 뒤에는 국가권력이 서민 친화적으로 운영돼야 하는데도, 1990년대 들어 노동자들의 입지가 전반적으로 축소됐다. 그 원인 중 하나를, 1990년을 전후해 확산된 세계적 탈냉전 속에서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미·소 냉전이 해체된 뒤, 중동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의 패권이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탈냉전이 확산되는데도 두 지역에서는 위기감이 증폭되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미국에 더해, 중국도 강해졌다. 중국은 구소련의 공백을 일정 정도 메우면서 세계적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일본도 강해졌다. 탈냉전 와중에 잠시 흔들렸던 자민당은 기운을 차린 뒤 군사대국을 향해 일본을 이끌고 나아갔다.
 
북한도 어떤 면에서는 강해졌다.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고생하지만, 핵개발을 바탕으로 근 30년간 북미 대결 구도를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담판이 가능한 단계까지 국제적 위상을 높여왔다. 주변 국가들 중에서 러시아를 제외한 나라들은 이렇게 다들 국력 혹은 위상을 높여 왔다.
 
그에 비해 한국은 북·미·중·일과의 역학관계에서 1990년대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하기가 힘들다. 동아시아 바깥에서는 한국의 지위가 상승했지만, 동아시아 각국과의 상대적 역학관계에서는 오히려 불리해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 같은 상대적 퇴보는, 국제질서가 동요하던 1990년대 초반 상황을 한국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것은 1990년대에 한국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된 원인 중 하나를 설명해준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집단은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대중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밀려났다.
 
1990년대 한국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어느 시대건 국가권력은 서민층의 납세 능력을 유지시키는 데 중점을 기울인다. 부가 소수 특권층에 집중되거나 외국으로 유출되어 서민층의 납세가 힘들어질 정도가 되면 자칫 나라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권력은 서민층의 경제력 유지에 항상 신경을 썼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의 역대 한국 정부는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서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침투한 외국자본 그리고 그들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재벌로부터 서민층 가계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는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외국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할 정도로, 한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의역 앞에 세워진 차량. ⓒ 김종성

1990년대 탈냉전이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한국경제에도 악영향을 주어 서민층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과거 같으면 미국에 호소해 급한 돈을 구할 수도 있었던 한국이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미국 때문에 돈을 구하지 못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이제민 연세대 교수의 논문 '한국 외환위기의 성격과 결과-그 논점 및 의미'에 이런 대목이 있다.
 
"1990년대 들어 냉전의 종식이라는 정치적 조건도 작용했다. (중략) 한국은 1982년에 일본에게서 50억 달러를 빌려 외환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은 1997년과 비교가 안 되게 나빴고, 그래서인지 처음 한국이 일본에 양자간 자금 제공을 타진했지만 일본은 거절했다.
 
그러자 한국은 당시 소련과 신냉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국 레이건 정부에 호소해서 일본에 압력을 넣게 함으로써 50억 달러를 빌릴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이 레이건 정부를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냉전의 전초 기지라는 사실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반면, 1997년에는 일본이 적극적으로 도와줄 의사가 있었는데도 미국이 그것을 강력하게 저지했다. 이처럼 15년 만에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 데는 냉전의 존재 여부가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한국경제학회가  2016년에 발행한 <한국경제포럼> 제9권 제2호에 수록.
 
미국이 아닌 일본한테서 돈을 꾸는 일마저 미국이 저지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지위는 1990년대 들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이런 상황이 미국식 신자유주의 침투 앞에서 한국인들이 무방비 상태가 되도록 만드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한국 정부가 서민들을 지켜주기 힘들도록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이로 인해 한국 국민들이 받은 불이익을 가장 많이 감수한 이들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1990년대 이후의 상대적 국력 퇴보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받은 불이익의 최대 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련은 사실은 대한민국 전체의 시련이 되는 것이다. '나는 김용균이다'라는 머리띠를 사실은 우리 국민 모두가 둘러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이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미세먼지 자욱한 서울 시내를 이 추운 겨울에 13km나 행진하면서 간절히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이만저만이 아님을 웅변하는 풍경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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