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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음악 즐기는 백인... 이 영화가 편견을 부수는 방법

[리뷰] 혐오의 시대를 향한 영화 <그린북>의 메시지

19.01.22 11:03최종업데이트19.01.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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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이'를 위한 여행 안내서(The Negro Motorist Green Book).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 흑인들에게 널리 읽힌 한 여행 책자의 제목이다. 뉴욕 할렘의 흑인 우체국 직원 빅터 휴고 그린이 썼는데, 이유가 슬프다. 흑인들이 여행 중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흑인 이용 가능' 식당 및 숙소를 정리한 것이다. '짐 크로 법'에 의해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법적으로 분리하던 시절이었다. 금지 시설에 들어온 흑인은 '맞아도 싸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심지어 남부에서는 이유와 상관없이 혐오범죄의 표적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그린북'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안전 여행 가이드'였던 셈이다.
 

영화 <그린북> 포스터 ⓒ CJ ENM

 
실화에 영감을 받은 영화 <그린북>은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1962년 미국으로 시계를 돌린다. 이탈리아계 백인 하층민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는 '거친 사나이'다. 짧은 가방끈, 맨주먹과 적당한 편법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반면 유명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는 박사학위까지 가진 '엘리트'다. 원칙과 기품, 교양이 몸에 익은 그는 방종을 모른다. 영화는 서로 너무도 다른 두 남자가 로드매니저와 아티스트의 관계로 묶여 투어를 돌며 서로를 이해하는 이야기다.'그린북'을 들고 여행하는 로드무비이면서 버디무비다.

둘은 처음부터 삐걱댄다. 과묵한 돈과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토니, 비흡연자인 돈과 언제나 담배를 피우는 토니의 여행이 쉬울 리 없다. 음악에서도 둘의 취향은 명확하게 갈린다. 토니는 로큰롤과 소울, 즉 흑인음악의 팬이다. 리틀 리차드, 처비 체커, 샘 쿡, 아레사 프랭클린을 좋아한다. 그러나 돈은 한 번도 그런 '수준 낮은'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흑인 음악을 모르는 흑인 돈에게 토니는 어떻게 당신이 이들을 모를 수 있느냐며 역정을 낸다.
 

영화 <그린북> 스틸컷 ⓒ CJ ENM

 
1960년대는 흑인음악의 에너지가 들끓던 시대였다. 마틴 루서 킹과 말콤 X 등으로 대표되는 흑인 민권운동은 흑인들이 참았던 목소리를 터트리는 계기가 됐다.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다. 블루스에 다 담지 못한 설움은 로큰롤로 폭발했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내지르는 소울이 탄생했다. 미친 듯 몸을 흔드는 훵크도 이때 나왔다. 특히 1959년 흑인음악 전문 레이블 모타운의 탄생은 결정적이었다. 차별받던 흑인들이 음악에 모여 울분을 풀면서 1960년대 흑인음악은 폭발적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사실은 돈도 흑인의 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도 돈 셜리는 클래식 전공자였고, 흑인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한계를 절감하고 잠시 학문으로 외도(?)를 했다가 재즈로 돌아온 뮤지션이다. 흑인을 향한 차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도 재즈, 흑인음악이다. 그러나 백인들 앞에서 가만히 연주해야 하는 그의 표정에서 행복은 읽히지 않는다. '가장 자유로운 음악' 재즈를 가장 자유롭지 못한 방법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엘리트 연주자 돈보다는 하층민 토니가 흑인 대중음악에 더 먼저, 더 쉽게 감응했을 것이다. 이게 영화 <그린북>이 편견을 부수는 방식이다. 왜 '당신들' 문화를 모르냐는 토니의 타박을 대하는 돈의 반론은 일관적이다. '흑인이 모두 리틀 리차드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흑인이 모두 프라이드 치킨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사실 흑인 음악을 좋아하고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에 열광하는 토니 자신부터가 그런 편견의 훌륭한 반례다.
 

영화 <그린북> 스틸컷 ⓒ CJ ENM

 
<그린북>은 돈에게 쏟아지는 다층적인 편견과 차별을 고발한다. 공연장에서 돈 셜리는 언제나 극진히 대접받는다. 관객은 상류층 백인들이고, 공연장은 늘 화려한 홀이다. 명품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계약을 맺었기에 악기도 항상 고급이다. 그러나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차별은 시작된다. 토니처럼 순박한 인간은 차라리 낫다.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그는 돈과 투어를 돌며 편견을 빠르게 극복해나간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오히려 더하다. 초호화 만찬에서 돈의 취향을 맞췄다며 수제 프라이드 치킨을 준비하고, 흑인에겐 양복을 팔 수 없다며 곤란한 얼굴로 미안해한다.

게다가 돈은 '너무 잘나서' 흑인에게도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주변인. 흑인 음악을 모르는 흑인이자, 백인 만큼 부유하지만 철저히 무시당하는 흑인 돈. 돈에게 다가가려는 토니의 서툰 손길이 가끔 엇나간 이유는, 어쩌면 돈의 그런 복잡한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뒤에야 토니는 돈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린북>의 주제의식은 그렇게 세상의 모든 차별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50여 년 전의 두 남자가 던지는 질문은 지금 여기의 무수한 차별과 혐오를 그대로 관통한다.

우리는 한평생 '타자'라는 거대한 존재와 함께 세상을 여행한다. 내릴 수는 없다. 그와 지배관계를 맺거나, 그와 상생해야 한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한 길일까? <그린북>은 이미 답을 줬다. 돈과 토니를 구원하는 것은 많은 부와 명예를 안겨다 준 '구속의 음악'이 아니었다. 마지막 공연을 포기하고 찾아간 허름한 술집, 1960년대 수많은 흑인을 위로했던 '자유의 음악' 로큰롤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자를 끌어안는 그런 음악과 태도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돈의 말버릇처럼, 정면을 보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과 채널예스에도 실렸습니다.
영화 음악 그린북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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