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에 나온 그 변호사의 말, 얼마나 믿을 수 있나

민언련 종편 모니터

등록 2019.01.22 10:34수정 2019.01.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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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부터 17일까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조사가 있었고 검찰은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 영장은 헌정 사상 최초의 일입니다. 양 전 원장은 혐의만 40개로서 상고 법원 도입을 목적으로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한 혐의, 판사 사찰 혐의,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 등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양 전 원장의 혐의와 반성 없는 태도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지만 종편은 좀 달랐습니다. 특히 지난 12일 MBN <아침&매일경제>에 출연한 변환봉 변호사는 양 전 원장을 두둔했습니다. 과연 그는 어떤 근거로 그렇게 주장했을까요.

이날 방송에서 변 변호사는 '과거에도 사법부와 행정부는 협의를 해왔다'는 '재판거래' 의혹을 부정했습니다. 이어 비슷한 사례로 국민보도연맹 피해자들의 국가배상금청구소송 당시 대법원이 '국가 파산'을 우려, 기획재정부와 배상액을 협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양승태 전 원장)혐의에 있어서 우리가 살펴볼 점이 있는데, 과거에 한국전쟁에서 보도연맹 사건이 있습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좌익에서 우익으로 전향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전쟁 과정에서 조금 잘못된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보도연맹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수십 만 명에 이릅니다. 한국의 과거사를 바로 세우는 과정에서 그분들에 대해서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해주고 있었죠.

그런데 이제 처음에 보도연맹 소송이 제기됐을 때 대법원에서 이 사건에서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개인별로 몇 억씩 손해배상을 부과해주게 될 경우에는 수십만 명에 대해서 수십조 원이 나가게 됩니다. 그럼 우리나라 예산이 200~300조 되는데 거기서 10~20%가 손해배상을 지급하게 된다면 국가가 파산하게 되겠죠. 그래서 대법원이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게 됩니다."

  

양승태 전 대법관 옹호 발언 하는 변환봉 변호사 MBN <아침&매일경제>(1/12) ⓒ 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연맹 사건 국가 배상과 관련해 처음으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온 것은 2012년 8월 30일, 대법원이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울산 보도연맹 사건입니다. 2011년 2심 재판부가 '공소시효 소멸'을 이유로 원고(희생자 유족 측) 패소 판결했던 것을 대법원이 파기 환송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의 진상 규명이 있기 전까지는 유족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국가는 진실을 은폐했다"고 판시했고 이는 지금도 국가 폭력 사건의 유의미한 판례로 꼽힙니다.

하지만 이때 대법원이 기획재정부와 배상액을 협의했다는 내용은 보도된 바도 없고 의혹이 제기된 바도 없으며 애초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국가배상금청구소송의 경우 피고는 대한민국으로 명시되고 정확히는 법무부가 피고로서의 실무를 담당하게 됩니다. 혹여 기획재정부나 대법원이 배상액을 두고 협의하려 한다면 그것이 바로 부당한 재판 개입, '사법농단'이 됩니다.

대법관이나 판사는 당연히 법리적 판단에 따라서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배상액이 많이 나올까봐 걱정한다는 것, 그래서 기획재정부와 논의부터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따라서 MBN이 이런 주장을 방송하고자 했다면 정확한 근거를 취재해 따로 탐사 보도를 해야 할 수준의 사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변환봉 변호사 스스로도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의 말은 곧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 피해자 보상을)국가가 예산상으로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겠느냐. 어느 정도 기획재정부 예산을 정해준다면 우리가 여러 가지 법률을 통해서 어느 정도 구제할지 대법원에서 검토하겠다, 라고 협의를 했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밝혀진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그 정도 협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과연 이것을 대법원에서 정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 예산을 고려해서 임의적으로 조정하고 재판개입을 한 거냐. 대법원의 고민은 그런 게 있거든요. 1심, 2심 판사님 같은 경우에는 단순히 국가가 잘못했으니까 손해배상 해야 한다고 기계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대법원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기계적으로 판단할 경우에는 국가가 예산상 부담이라든가 여러 가지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양승태 전 대법관 옹호 발언 하는 변환봉 변호사 MBN <아침&매일경제>(1/12) ⓒ 민주언론시민연합


갑자기 사실이 아니라며 "그 정도 협의가 있을 수 있다"고 말이 바뀌었습니다. '카더라'로 방송하고 있음을 MBN과 패널 모두 자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변 변호사는 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확정 판결'을 박근혜 청와대와 협의해 차일피일 미룬 양승태 전 원장의 행위 역시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징용 소송에 있어서도 재판개입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도 단순히 우리가 이 청구권 협정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보다보니까 우리는 이게 맞는 것 같다고 판단하기 전에 한일관계라든가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서 대법원이 어떠한 정책적 판단을 하는 것이 필요하겠느냐,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다만 이제 그렇게 세세하게 공표하다 보면 그러면 대법원이 왜 법리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국민의 법 감정에 반하느냐라는 말이 나올 수 있으니까 그걸 세세하게 밝히지 못하겠죠. 그런 고민을 감춘 상태에서 대법원에 있어서는, 대법원의 판단은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에둘러서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대법원은 외교부가 아니며 재판은 행정부의 국정 운영 수단이 아닙니다. 또 대법원은 한일관계와 정책적 판단을 할 필요가 없으며 그런 판단을 국민 법감정이나 법리에 앞서 재판에 반영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런데도 변 변호사는, 변호사임에도 너무 놀라운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성원 앵커는 이 발언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정정하기는커녕 "그걸 받아주느냐 마느냐의 말씀이신 것이죠? 대법원이 정책 판단 기능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라며 오히려 변 씨 주장을 요약해줬습니다.

MBN <아침&매일경제>(1/12)는 이날 방송에서 양 전 원장을 옹호하는 변환봉 씨 외에 강한 비판을 가한 패널들도 배치했습니다. 진행자 역시 모르쇠로 일관하는 양승태 전 원장 태도를 지적하면서 대담을 시작했고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이 사법농단 혐의를 개괄하며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패널 숫자를 맞추는 것이 언론으로서의 '중립'은 결코 아닙니다.

'양승태 사법농단'은 법과 정의의 보루인 사법부가 사익을 추구하고 박근혜 청와대에 종속됐던 사건입니다. 그냥 혐의 수준이 아니라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 등 명확한 근거로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이에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에 구속영장까지 청구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불확실한 '보도연맹 사건'까지 거론하는 행태가 과연 언론으로서 '중립'을 지키는 것일까요?

한승원 앵커는 이날 변환봉 변호사에게 되물어야 했습니다. '대법원이 기재부와 협의하는 것이 부적절하지 않은가', '두 기관 사이에 협의가 이뤄졌다는 근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혀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본 해법은 '아무말'이 난무하는, 넘쳐나는 뉴스쇼 형식의 시사 프로그램을 정리하는 것이겠죠. 그래야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도 실립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MBN #양승태 #사법농단 #보도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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