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졸업까지 8552만원... 없는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주장] 부모도, 아이도 답답한 한국 교육 현실... 정말 달라질 수 없을까

등록 2019.01.22 17:31수정 2019.01.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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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Y캐슬 > 스틸 사진 ⓒ JTBC

 
나는 두 딸을 키우는 아빠다. '아이들은 잘 놀면서 커야 한다'는 보통(?) 부모의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언제까지 나와 아내의 이런 생각이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들다.

곧 찾아올 경쟁의 무대에서 이런 부모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잘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좋은 대학' 입학을 교육의 지상과제로 삼은 지 오래된 우리 현실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숨 막히는 긴장감을 준다. 교육의 과정도, 결과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기 일쑤다.

한국의 교육 현실, 그리고 여기에 참여하는 부모와 아이들, 주변인의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드라마, JTBC의 <SKY캐슬>이 인기다. 시청률 가뭄인 요즘 22%에 육박하는 시청률만큼 사람들의 일상적 대화의 단골 메뉴다. 대한민국 상위 0.1% 명문가 집안의 욕망을 풍자하는 코믹 드라마라고 하니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러나 시험성적 경쟁이 지배하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그들의 욕망에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그냥 웃고 지나치기엔 여운이 너무나 길다. 가벼운 지갑을 한탄하는 한숨도 삐져나온다.

'다 자식 잘돼라'고 교육시키는 부모들의 욕망이 질적으로 같더라도, 세상에서 표현되는 그 욕망의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부모의 신념에 따라, 소유한 부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의도하지 않은 교육 격차는 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비 통계를 보자.

신한은행이 지난해 3월 만 20~64세 금융거래 소비자 2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보면 자녀 1명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드는 교육비는 총 8552만 원이다. 사교육비가 6427만 원으로 75.1%를 차지했다. 대학 등록금까지 고려하면 다른 비용은 뺀 교육비로만 1억 원 이상 필요하다. 월평균 소득이 1000만 원 이상인 가구의 자녀 1인당 총교육비는 1억 4484만 원으로, 300만 원 미만인 가구의 교육비 4766만 원보다 3배나 많았다.

자식들 교육에 지출하는 사교육비도 많지만, 고소득층과 하위 그룹의 격차도 엄청나다. 좋은 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어려우니 사교육 시장에 의지하고, 사교육의 선택 가능성은 철저히 투입할 수 있는 돈에 달렸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돈 없는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교육 시장의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지금 여기의 행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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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의 한 장면. ⓒ 판씨네마(주)

 
한국의 무거운 교육 현실에 답답함을 느낄 때쯤 우연히 영상 한 편을 접하게 됐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2015년 작품 <다음 침공은 어디?(Where to Invade Next)>에서 핀란드의 교육을 다룬 부분이었다. 핀란드 교육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교육의 이상향' 정도로 국내에 자주 소개되곤 한다. 영상에서는 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핀란드 교육과 교사, 학생의 인터뷰가 담겨 조금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어 감독은 1960~1970년대에는 핀란드의 교육수준이 세계 최하위권 수준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핀란드가 교육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을 찾는다. 교육부 장관, 교사, 학생을 만나면서 숙제가 없는 학교, 객관식 시험이 없는 교육에 놀란다. 이런 핀란드의 교육 비결은 미국이 시·음악·미술 등 예능수업을 대학입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줄여버린 것과 대비되어 비친다. 미국식 교육이 당연하다고 여긴 무어 감독에게 핀란드 교육 현장은 매우 흥미로운 신세계다.

영상을 보면서 아침 일찍부터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떠밀려 간 아이들이 생각났다. 행복을 찾는 학교,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 학교 간 서열이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핀란드를 우리가 닮기 어려운 것일까? 이미 정해진 하나의 길로 퇴로가 없는 경쟁이 아닌, 아이들이 가진 재능을 발견하고,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가 아닌,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은 불가능한 것일까? 부의 대물림이 교육을 통해서도 이뤄지는 비정상적인 현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드라마 'SKY캐슬'에 등장하는 부모든, 현실의 부모든, 자식을 어떻게 해서라도 잘 키워보겠다는 이들이 가진 욕망의 복합체가 오늘 한국 교육의 현주소다. 인간의 욕망이 먼저인지, 사회 시스템이 먼저인지, 선후관계는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한국 교육에서만큼은 시스템이 욕망을 표출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서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 입시제도, 교육정책만이 욕망의 공고한 틀을 해체할 수 있다.

'SKY캐슬'은 이번주에 종영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당분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서 헤맬 것 같다. 아이들에게 오늘과 다른 내일을 약속할 수 없음에 답답한 심정이다.
#교육 #SKY캐슬 #마이클 무어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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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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