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병원 구하기, '친절한 영애씨'만 할 수 있을까요?

[주장] 제일병원 폐원 위기를 '공공 산부인과 병원' 추진 기회로!

등록 2019.01.24 08:17수정 2019.01.2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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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아기천사들을 만나게 해 준, 나의 병원
 

직장 동료의 임신소식에 웃으며 축하인사를 건넸지만 화장실에 숨어 운 적이 있습니다. 신혼인 후배가 아기가 생겼다고 하자 뭐가 그리 급했냐는 비상식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보다 늦게 결혼한 형님의 둘째아이 돌잔치에는 정말이지 참석하기 싫었습니다.

결혼한 지 7년이나 되었지만 몇 번의 유산과 끔찍한 수술만 겪을 뿐 한 번도 정상적인 임신을 하지 못했던 저는, 남들은 혼수로도 장만한다는데 내겐 왜 이다지도 어려운지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 성격마저 비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저의 곁엔 지금 일곱 살 아이들이 둘이나 있습니다. 고민 끝에 남편과 저는 난임치료와 인공임신 과정을 거쳐 남매둥이를 얻었습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저는 내내 '울보산모'였습니다. 혈액검사 후 임신이 성공했다는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 1층과 2층에 나란히 자리잡은 아기집들을 초음파로 처음 봤을 때, 작은 심장들이 쿵쿵 콩콩 뛰는 소리들을 처음 들었을 때, 또 드디어 두 아이가 세상에 나와 차례로 울음을 터뜨렸을 때 매번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울먹이며 저는 늘 끝없이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그런데 그 고마웠던 선생님들을 만났던, 제가 보물같은 남매둥이를 갖도록 도와주신 나의 병원인 '제일병원'이, 지금 사라질 위기라고 합니다.

의료는, 특히 임신과 출산은, 정부가 나서야 할 공공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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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출생아 수가 3만 명대를 회복했지만 9개월째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2017년 10월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8월 출생아 수가 3만2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10.9% 감소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제일병원 신생아실 모습. ⓒ 연합뉴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저는 제일병원 소식을 최근에야 접했습니다. 제일병원을 거친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제게도 '제일병원이 폐원 위기'라는 소식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와 같이 제일병원의 도움을 받아 남매둥이의 엄마가 된 이영애씨가 제일병원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단 사실이었습니다. 

지난 기사들을 보니 이영애씨는 위기의 제일병원을 인수할 의향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그저 안타까워만 할 뿐 무엇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엄마인 저와는 '클라스가 다른' 그 사회적 행동에 저는 '역시 친절한 영애씨야!'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영애씨가 아닌 보건복지부, 서울시, 중구청 등 정부가 제일병원의 위기와 관련해 나서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사가 안 되는 가게는 문을 닫는 것이 시장의 법칙이거늘 무슨 병원 하나 흔들린다고 정부가 일일이 나서냐고 누군가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은 영화 <식코>에서도 확인되듯 그 공공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영역이기에 그저 시장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특히 산부인과 병원은 각 가정의 행복뿐 아니라 구성원의 재생산, 사회의 지속성과 맞물려있고, 우리나라와 같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산부인과 병원의 존립은 공익과 직결됩니다.

더욱이 이미 많은 다른 언론사들이 기사로 쏟아냈듯 우리 사회에서 인공임신, 고위험 출산 등에 있어 제일병원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습니다. 제가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굳이 제일병원을 다니며 남매를 임신하게 된 것도, 축적된 노하우를 지닌 제일병원의 의료진을 신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시험관 시술의 시작이 제일병원이었을지는 몰라도, 현재는 시험관 시술 등을 잘 하는 많은 다른 전문산부인과병원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일병원과 같이 인공임신, 고위험 임신과 고령 산모의 분만에 특화된 전문적인 산부인과 중심의 병원은 여전히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제일병원이 사라지는 것은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공의 영역인 산부인과 병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제일병원이 흔들리고 있음에도 어째서 정부는 제일병원의 위기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걸까요? 저출산 문제의 대안 중 하나가 난임 치료 지원 및 인공임신 시술의 확대일텐데 정부는 난임 등의 해결공간인 제일병원의 붕괴를 왜 보고만 있는 걸까요? 많은 광고비를 들여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공익 광고까지 만드는 정부이고, 더욱이 현 정부는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말이죠.

제일병원의 위기 해결은 곧 저출산 위기의 해결

제일병원의 위기는 경영진의 비리와 병원운영능력의 부족 탓이 크지만, 급속하게 줄어든 출산율도 중요 원인이 되었을 거라는 것이 언론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해에 100만 명 넘게 출생했지만, 지난해에는 겨우 32만 명이 태어났다고 하니 출산율이 1/3로 줄어들어 현재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위험수위에 이릅니다.

그래서 그 여파로 제일병원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경영난에 처한 산부인과 병·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또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대생들, 간호대생들 사이에서도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산부인과의 상황은 갈수록 더더욱 나빠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제일병원 사태는, 단순히 한 병원이 문을 닫고 그곳의 의료진들이 직장을 옮기거나 잃게 되는 이직과 실직의 문제, 기존에 제일병원을 이용하던 산모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확대와 재생산을 담당하는 출산 인프라의 하나가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정부가 지금이라도 '공익'을 위한 개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산부인과 병원을 국고를 투입해서 하나라도 더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훌륭한 의료진이 수 많은 가정에 새 생명 탄생의 기쁨을 안겨주고 우리사회를 존속하게 해온 중요한 병원이 사라지는 상황을 보고만 있는 것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부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개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의료 영역의 문외한이지만 '전' 산모로서 저는 제일병원을 '공공형 난임전문 산부인과 병원'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마가 되고 싶어 호르몬 치료와 인공임신 시술 등 힘든 과정을 선택하는 예비산모들은, 그 중대한 결심을 실현하기 위해 전문성을 갖춘 병원을 찾습니다. 그런데 난임, 인공임신, 고위험 임신 등에 있어 전문성을 갖춘 '공공' 산부인과 병원은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산다는 서울과 경기도 전체를 통틀어 제가 알기로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이에 축적된 노하우와 전문성을 갖춘 제일병원을 공공형 난임전문 산부인과 병원으로 재탄생하도록 한다면 이는 현재의 시술비 지원과 더불어 매우 훌륭한 저출산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런 생각이 타당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 분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현직 의사이기도 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구 대표는, 궁극적으로 의료서비스는 공공재(public good)로써 모든 국민에게 비용의 부담없이 제공되어야 하며, 현재 우리나라에 공공병원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감안할 때 제일병원를 산부인과로 특화된 공공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것은 바람직한 대안 중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역시 현직 의사인 주웅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은, 산부인과 병·의원을 비롯한 의료기관은 소방서와 같아 당장 불이 난 곳이 없대도 국가 재정을 들여서 늘 준비된 상태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분만에 특화된 제일병원을 민간 자본이 인수하여 존속시키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공공병원화도 좋은 대안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부산에서는 오거돈 시장이, 문을 닫은 침례병원을 공공병원으로 부활시키는 공약을 실현시키는 중이고, 홍준표 전 지사가 폐쇄한 진주의료원은 김경수 지사가 다시 개원하려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울산시에서도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공공병원 설립 운동을 하고 있고, 이재명 현 경기 지사가 시작한 성남시립의료원은 은수미 시장이 곧 개원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공의료 확대를 공언한바 있고,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역 주민들이 뜻을 모은다면 어려워진 민간병원을 인수하여 제2, 제3의 보험자 직영병원으로 활성화 시킬 것이라는 인터뷰를 한 바 있습니다.

바야흐로 공공병원화가 시대적요구 속에서 전국적으로 적극 추진 중인 겁니다. 그렇다면 제일병원 역시 축적된 노하우를 기반으로 보건복지부, 서울시, 또는 중구청 등이 공공 산부인과 병원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제일병원의 경영진, 의료진 등이 이를 주장하여주기를, 제일병원이 자리 잡고 있는 서양호 구청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이를 검토해주기를 바랍니다. 

제일병원의 폐원위기를, '공공 산부인과 병원'을 추진의 기회로!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품고 또 낳았음에도 남매둥이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가 동시에 울면 앞뒤로 안고 업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거실을 뱅뱅 돌며 달래야 했고, 아기 띠 없이 외출했다가 그 상황에 처하면 '아, 왜 내 등은 하나이고 내 팔은 두 개뿐일까' 하며 아이들 울음에 맞춰 저도 울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부모는 알 겁니다. 그 모든 고통이 아이의 방끗 웃음 한 번에 모두 사라락 사라진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 한 일이 이 아이들을 낳은 것이고,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 아이들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였습니다. 과거의 저와 같이 아기 천사가 오지 않아 괴로워하는 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오지랖 넓게 제일병원을 추천해온 것은. 그런데 제일병원과 같은 좋은 산부인과 병원이 시장의 논리에 따라 사라지게 된다면, 저와 같은 행복을 맞이할 이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일병원 매입과 재개원은 친절한 영애씨나 또 다른 어느 민간자본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을 인수한 그 누군가가 일단 대량 정리해고를 통해 실력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대거 자르고, 각종 비급여 진료를 통해 진료비를 높이게 될수도, 또 병원 곳곳에 커피숍과 식당, 그리고 심지어는 아기 용품 상점과 상가를 만들어 수익 창출에만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분명 공공병원화가 진정 시민을 위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바람직한 대안이 아닐까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제일병원 문제 해결에 정부가 적극 나서서 제일병원을 공공 산부인과 병원으로 전환하는 것을 모색해주기를, 그렇게 진정 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가고 보다 많은 이들이 엄마 아빠가 되는 행복을 알게 해주는 '친절한' 정부가 되어주기를, 제일병원을 통해 행복한 남매둥이 엄마로 살게 된 평범한 저는, '엄마의 마음'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일병원 #공공병원 #저출산 #이영애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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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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