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라는 말이 싫었어요"

돌봄이 시민적 활동으로 인식되는 그 날까지

등록 2019.01.23 19:15수정 2019.01.23 19:15
0
5,000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워킹맘이라는 말이 싫었어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바늘에 찔린 듯 가슴이 뜨끔했어요. 가사를 하는 엄마들의 노동도 분명한 노동인데, 그림자처럼 비가시화될 수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에요. 저 역시 스스로를 '워킹맘'이라 위치 지으면서 커리어를 가진 여성으로 알게 모르게 구분 짓고 있었으니까요.

학교 급식 일을 하는 분들을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했던 정치인의 말에 화가 난 적이 있어요. 밥하는 일을 하찮은 일로, 동네에 있는 사람을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으로, 아줌마를 비전문적이고 억척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것으로 느껴졌어요. 그러나 저 역시 워킹맘과 전업맘이라는 구분 속에 위계가 똬리를 틀고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늦은 나이에 둘째 아이를 낳고, 2년 동안 오롯이 육아와 집안일에만 몰두한 적이 있어요. 작은 생명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씻기면서 24시간 돌보는 일은 정말 고달팠습니다.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지만, 2년여의 시간은 정말 소중했지만, 아이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롭고 두려웠어요. 이대로 세상에서 밀려나는 건 아닐까,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나를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어렵게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고 세상에 반 발짝쯤 나올 때였어요. 결혼하기 전 다녔던 직장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11년 만이었어요. 매일 출근했던 그곳이 큰 산처럼 커 보였어요. 그곳은 그대로인데, 나의 존재가 작게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왜소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면서, 울음을 삼켜야 했어요.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소식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지금 괜찮은 걸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썩지 않은 비닐처럼 튀어나왔더랬죠.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동안 방황한다'라고 했지요. '엄마'와 '나'라는 정체성과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고 타협하는 것은 숙명이 아닐까 싶을 만큼 늘 닥쳐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매 순간 고민합니다. 괴테 말처럼 그렇게 노력하는 동안, 방황하는 것일까요.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떨고 있는 나침반 바늘처럼 말이에요.

돌봄은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때는 나를 돌보는 게 우선이고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지 못했고, 거기서 큰 어려움을 느꼈으니까요.

나를 돌본다는 건 내 마음을 돌본다는 것인데, 수많은 감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적절하게 표현하지도 못했다는 게 정확하겠어요. 원망과 슬픔이 가득 차올랐지만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고 눈덩이처럼 키워갔던 것 같아요. 감정을 쌓아놓다가 아이들에게 쏟아놓곤 했지요. 폭발하고 나서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악순환이었다고나 할까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상호돌봄'이 아닐까 ⓒ pixabay

   
'취업모'로 살고 있는 지금 역시 갈등의 연속입니다. 저녁에 아이들을 맡기고 놀아볼까, 오늘은 아이들에게 편하게 라면을 먹일까,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보여주고 책을 읽을까, 이런 고민들...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이 많아지면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상황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어요.

달라진 게 있다면, 나를 돌보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챙기고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는 것이에요.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차 안에서 음악을 크게 듣고, 햇볕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걷는 것! 기다리던 공연을 예매하고, 오래된 책방을 서성이고, 상큼한 꽃 한 송이를 사는 것! 그 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마음껏 느끼는 것이지요. 사무실 일을 마치고 가정 일을 하러 들어가기 전, 차 안에서 혼자 있는 순간은 설레고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생각할수록 나에 대한 돌봄, 그리고 타인에 대한 돌봄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돌봄은 타인의 생명에 관심을 갖는 최고의 이타적인 활동이니까요. 타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공감, 연민과 사랑 없이 이뤄지지 않는 게 돌봄이지요.

개인과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돌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자 노동으로, 비숙련 노동으로, 노는 사람의 일로 치부돼서는 안될 일입니다.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시혜도 아닐 것이고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우리는 서로의 돌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돌봄이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모두가 해야 할 시민적인 활동으로 의식의 지평이 확장되면 좋겠습니다. 외롭게 또는 두렵게 돌봄을 하고 있는 전업맘들이 자신을 돌보는 시간과 공간이 많아지기를 바라요. 그리고 제가 명상을 하면서 마음속의 여유와 편안함을 가지게 된 것처럼, 모든 분들이 자신만의 안식처를 가지길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우리 모두 파이팅!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동백이 엄마 배우 이정은씨의 그 말, 위로가 됩니다
  2. 2 문재인 대통령-5당 대표 만찬 중 고성 오간 사연
  3. 3 땡큐, 박찬주
  4. 4 '박근혜의 사람을 당선시켜라'... 엄청난 돈이 오가다
  5. 5 '구속기소' 정경심 교수 14가지 혐의 살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