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일본은 왜 스웨덴으로 날아갔나

‘남북미 대화에 어떻게든 껴라’ 아베의 특별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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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haemil808)등록 2019.01.23 17:01
2차 북미정상회담 조율을 위해 지난 19일부터 22일부터 2박3일 동안 남북미 3자 실무회담이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 그런데 일본 정부는 뜬금없이 이곳에 외무성의 동아시아 담당 고위관료를 급파했다. 남북미 실무대표가 식사를 나누며 전례 없는 '합숙회담'에 나선 가운데 난데없는 불청객이 끼어든 모양새다.
 
도대체 이 '불청객'은 남, 북, 미 그 누구도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겨주지 않는 머나먼 북유럽의 땅을 찾아야 했단 말인가. 지금부터 그 사연을 알아보자.
 
카나스기 켄지(金杉憲治), 불청객의 이름이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으로 한국으로 치면 외교부 동북아국장이다. 또 일본 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각부 장관 사이에서 한반도 분야 실무를 다루는 중간책임자다.
 
지난 19일 NHK는 미국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2월 말로 잡혔다는 발표가 나오자 카나스기 국장이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전화로 회담을 했다고 전했다. NHK에 따르면 "2번째 북미정상회담을 향한 방침을 면밀히 조율하고 미일 양국과 한국도 포함한 3개국이 긴밀히 연계해 갈 것도 확인했다"고 한다.
 
위 내용만 보자면 카나스기 국장이 스톡홀름에 갈 이유는 없어 보인다. "면밀히 조율"하고 "긴밀히 연계"하기로 약속했는데 굳이 그 먼 거리를 갈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끝내 카나스기 국장은 짐 가방을 싸들고 스톡홀름 발 국제선 비행기를 타야했다.
 
전화로 얘기가 잘 됐다면, 또는 나중에라도 제대로 자세한 상황을 전달해주겠다는 확약을 비건 대표가 했다면 카나스기 국장은 일본의 자택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결정적 이유. 북미와 한국이 철통보안 속 은밀한 대화를 직접 주고받는 상황에서 '재팬 패싱(일본 소외)'의 우려를 떨칠 수 없다는 아베 총리의 판단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인 남북 북미정상회담이 펼쳐진 작년에 이어 전 세계가 한반도를 또렷이 주시하는 올해. 아베 총리는 지난 10일 "다음에는 내가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봐야한다"며 목소리 높인 바 있다. 앞서 작년에는 북일 정보당국이 몽골·베트남 등지에서 '미국이 모르게'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한 비밀논의를 벌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북일정상회담 개최 소식은 여전히 감감무소식, 오히려 일본을 향한 북한의 강력한 비판이 쏟아졌다.
 
북한의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총결산해야 할 것은 일본의 과거죄악'이라는 논평을 통해 "아베의 망동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특대형 반인륜 범죄들을 덮어버리고 그 청산을 어떻게 하나 회피해보려는 섬오랑캐 특유의 파렴치성의 발로"라며 아베 총리를 향한 성토의 시위를 무척 힘주어 겨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분명히 사죄하고 배상하지 않으면 '북일정상회담은 없다'는 취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최선희 부상 그림자만 좇다 끝난 일본외교
 
아베 총리에 대한 북한의 '표현 수위'가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 그동안 북일 접촉이 원만하지 않았다는 점, 일본이 과거사 반성의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아베 총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 가보라'며 카나스기 국장을 급박하게 스톡홀름에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실제로 20일 일본 외무성은 "북한 문제로 미일 고위관료급 협의를 열기 위해 카나스기 국장을 스톡홀름에 파견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교도통신은 "카나스기는 (비건 대표에게 북미 간) 교섭상황을 직접 청취할 생각"이라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북한에 대한) 압력유지가 필요하다는 일본의 견해를 다시 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카나스기 국장은 '일본을 빼놓고 북미 관계를 진전시키지 말라'며 속도 조절을 위해 파견된 셈이다. 일본 언론들이 앞 다투어 풀이했듯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등 북한의 핵 위협이 해소되지 않았고 일본인 납치피해자 문제가 북일 간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은 상황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 이번 협의로 북미 간 협상에서 완전히 소외되는 상황이 퍽 두려웠던 것.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만남은 예정되지 않았다고 밝힌 일본 외무성의 당초 입장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교도통신은 21일 일본 정부는 스웨덴에서의 "북일접촉을 목표하겠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밝혔다. 카나스기 국장이 아베 총리의 "(북일 대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결의"에 따라 파견됐다는 것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카나스기 국장은 최선희 부상에게 북한의 납치문제, 비핵화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아베의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23일 아사히신문은 카나스기 국장이 최선희 국장과 접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쯤 되면 그토록 공을 들였는데 북일접촉이 무산된 일본 정부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개성공단·금강상관광 재개를 비롯해 대북제재 해제로 광범위한 남북경협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에게 일본의 분주한 움직임은 명백한 방해 행위다. 북한 당국도 앞서 여러 차례 과거사를 반성 않는 일본과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없다고 명백히 밝힌 만큼 일본이 스웨덴 행으로 얻은 성과는 남측의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비건 대표와의 만남 외에는 전무하다는 평가다.
 
"모기장(남북미중 대화의) 바깥" 일본의 앞날은?
 
이와 관련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국이 소외됐던 '옛 일'을 회고해 일본의 상황을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21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카나스기 국장은) 6자회담 일본 측 대표"라며 "일본으로서는 지금 북미 간의 관계가 빠른 속도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북미 적대 관계가 끝나면 일본의 외교정책의 기본 방향을 바꿔야 되는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그때 일본이 미국한테 뭘 부탁하려면 스톡홀름에서 북미 양자 간에, 또는 남북미 간에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는지를 귀동냥해서 바로 본국에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그러면서 1993-94년 북미 간 제네바협상 당시 청와대에서 비서관으로 재직하던 때 북한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 문 앞에서 대기하다가 한국대사관 측에 곧바로 브리핑을 했다며 한국이 소외됐던 시절을 떠올렸다. 일본의 현재 상황이 바로 이와 닮았단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처지가 한국과는 다른 결정적 대목이 있다. 한국과 북한은 오랜 세월 한 핏줄로 살아온 같은 민족이지만 일본은 우리 민족을 침략하고 괴롭힌 '불편한 이웃'이다. 한국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당사자지만 일본은 아니다.
 
더구나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스웨덴 국제회의는 비공개 회의로서, 회의 참석국들은 이번 회담 시 논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의견을 같이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도훈 본부장과 비건 대표라도 어렵게 만난 카나스기 국장, '빈 손'으로 아베 총리에게 돌아가야 하는 그 마음은 무척 무겁지 않았을까.
 
직함으로만 보자면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스티븐 비건 대북협상특별대표와 나란히 하는 인물이 바로 카나스기 국장이다. 결과적으로 '외교 무례'라는 논란도 무릅쓰고 헐레벌떡 스웨덴으로 날아간 일본의 헛발질이 참 우습게 됐다. 대화에 끼지도 못한 채 최선희 부상의 그림자만 좇던 카나스기 국장의 처지도 처량하기 그지없다.
 
일본에서는 남북 북미 간 대화에서 "일본은 모기장 밖에 놓였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시시각각 급변하는데 내부 사정을 도무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해 죽겠다'는 자조 섞인 비판에 가깝다.
 
그런 만큼 카나스기 국장의 이번 행보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동북아시아 정세에 무작정 휩쓸릴 게 아니라 최대한 일본의 이득을 챙겨야 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덜 됐다느니,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느니 '꼬장'을 부리는 일본의 모습은 영락없이 스스로를 이득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는 자살'꼴'이다.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민족 간 자주통일과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 도출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존재가 바로 일본이다. 아무래도 일본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올해 내 남북미중 4자 평화협정이 도출된다고 해도, 바깥에서 끊임없이 그 진의를 헐뜯으며 물어뜯는 집요한 모기가 될 것 같다.
 
이제 역사의 물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방해꾼 일본이 근처에서 아무리 '앵앵' 거려봤자 우리 민족이 주도하는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동북아라는 크나큰 벽에 영원히 부닥칠 뿐이다.
 
아베 총리가 뒤늦게라도 모기장 안으로 들어오고 싶다면 철저한 과거사 반성부터 선행해야 한다. 군비를 무한정 늘려가며 제 입맛대로 동북아를 주무르고 싶다는 헛꿈에서 깨어나 현재, 시시각각 바뀌어가는 미래와 직면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북일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단 하나의 상책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주권연구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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