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도 마음대로 못 먹고... 부자욕심은 버렸습니다

[서평] 손혜원·주진형의 <경제, 알아야 바꾼다>를 읽고

등록 2019.01.24 20:32수정 2019.01.2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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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점심시간에 산책하러 갔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들렀다.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면 쇼핑백도 주고 미용티슈도 준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줄 끝에 서 있었더니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모델하우스로 들어가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 줄은 부동산 업자, '떴다방'의 줄이었다. 나는 원래 미용티슈가 목적이었으므로 대충 둘러보고 나오는데 그 떴다방 줄의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온다.

"선생님! 구경 잘하셨어요? 이 아파트는 계약 후 6개월 후 전매가 가능합니다. 당첨되시면 차익을 남기고 파실 수 있어요. 여기 선생님 주소만 남겨주시면 저희가 연락드릴게요."

내가 연락처를 적어주자 그 사람은 다른 손님들 연락처를 따기 위해 떴다방 맨 뒷줄로 갔다. 그 줄 맨 앞에 있는 사람은 내 뒤에 나오는 사람에게 다시 접근하여 똑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떴다방은 불법이고 사회적 문제라고 뉴스에서 어렴풋이 본 것 같은데 여기서는 상관없는 분위기였다. 


나는 부동산에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을 둘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자꾸 올라가는 부동산 가격에 아내와 고심을 거듭하고 난 뒤 작년 3월에 아파트를 샀다. 전세로 살던 집 보증금에 모아놓은 돈을 보태고 은행 대출을 받았다.

그러자 한 달에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이자로 인해 가끔씩 식구들과 중국집에서 먹던 짜장면 외식에서 늘 함께했던 탕수육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아내는 수시로 집안을 순찰하며 전등을 끄고 보일러 온도를 1도씩 올리고 내리고 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20년 전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은행으로 달려가 가입한 것이 '근로자우대저축'이라는 상품이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10% 이상의 예금이자를 주는 상품이었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근로자우대저축과 다른 적금통장에 꼬박꼬박 넣었다. 만기가 되자 집을 살까 사업을 할까 고민했다. 불행하게도 헛된 도전 정신에 취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해 그 돈을 다 날렸지만 지금 생각해도 꽤 큰돈을 모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연이율 3.9%짜리 5년 만기 적금이 만기라 은행에 갔다. 어른들이 주시는 아이들 용돈을 받으면 적은 돈이나마 그 통장에 넣어줬다. 산수와 수리 개념에 취약한 뇌구조로 인해 이자가 얼마 나올지 감이 전혀 오지 않았다.

그래도 5년간 적금을 부었는데 100만 원 이상은 나오겠지라는 바보 같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실망에 가까운 허탈감으로 바뀌는 시간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원금이 1020만 원인데 이자가 90만 원 남짓에 이자소득세를 빼고 나니 이자가 75만 원 정도 붙어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축으로 부자 된 이들이 별로 없어요. 다 부동산 덕을 봤죠. 부동산에 투기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가지고 있는데 값이 올라간 거죠." 

<경제,알아야 바꾼다> 본문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

우리나라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고 한다. 부모가 돈이 많거나 결혼한 배우자 집안이 돈이 많거나 로또에 당첨되거나.

난 그 3가지 방법 중 단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시골 농사꾼이며 아내 집안 역시 평범함 그 자체이다. 로또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부자가 될 가능성을 스스로 원천 차단한다. 주위에 돈 좀 벌었다는 친구들 대부분이 친가나 처가의 사업을 물려받았거나 어쩌다 아파트 사고팔기 테크닉을 전수받아 차익으로 큰돈을 번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경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대화 형식으로 설명한다. 일자리, 경제민주화, 대기업의 독과점, 금융산업의 문제점, 직장 민주화, 부동산 문제, 교육문제, 조세제도의 불평등, 출산 문제까지 어느 한 부분을 읽어도 편한 곳이 없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한 번 가진 기득권은 더욱 견고해진다. 옛날 어르신들은 열심히 살면 밥은 먹고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열심히 사니까 딱 밥만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천지불인(天地不仁). 나이가 마흔이 넘어 알게 된 문구이지만 처음 접한 순간 가슴이 저렸다. 내가 원하는 세상, 더 좋은 세상은 나에게 무심하다."


​<경제, 알아야 바꾼다> 에필로그 중에서

이 책을 쓴 주진형 선생은 좋은 세상, 좋은 사회를 원한다면 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대하며 살기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바쁘다. 한 달, 한 달 열심히 일해서 10년 정도 저축하면 집 한 채 살 수 있고 'SKY캐슬'에 사는 사람들처럼 아이들 교육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어진(仁)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에 나오는 주진형 선생의 말대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저축으로 부자가 되는 경제구조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저축할 수밖에 없다. 바보 같지만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재테크 수단이다.

내게 허탈함을 안겨준 그 만기 적금 1090만 원 가운데 50만 원은 아내에게 용돈으로 주고 나머지 1040만 원은 대출금을 갚았다. 다음 달 대출이자 빠져나가는 날에는 몇만 원 감액되어서 통장에 찍힐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오랜만에 중국집에 외식하러 가서 이렇게 외칠 것이다.

"사장님! 여기 짜장면 4그릇에 탕수육 대(大) 자, 아니 중(中) 자 하나요"
 

<경제, 알아야 바꾼다>책. 주진형 선생이 한국 경제와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름대로의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 조명호

경제, 알아야 바꾼다 - 내 삶을 바꾸는 경제 이야기 12

주진형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7


#주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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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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