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 첫차 탄 사람들의 약속 "노회찬과 함께할게요"

[현장] 웃음과 눈물 공존했던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

등록 2019.01.25 10:36수정 2019.01.25 14:10
1
원고료로 응원
a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이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500여 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은 축하공연으로 올라온 <작은 뮤지컬 6411>의 장면이다. ⓒ 곽우신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그 이름. 내가 불러줄게요, 당신의 이름. 아무도 알려하지 않던 사람들. 내가 기억할게요, 그 이름."

6411번 버스에 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멸시받는 청소노동자, 해고 위기에 놓인 경비노동자, 화상을 입은 식당노동자, '빨리빨리'를 강요받는 택배노동자...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자리에 앉는 사람들. 노란 옷을 입고 안경을 쓴 한 소년만이 귀님, 상현, 복녀, 현철과 같이 평범한 그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들은 <소연가>의 가락을 연주하며 소년을 그리워한다. 음악으로 다시 불러낸 소년과 함께 6411번 새벽 첫차를 탄 사람들은 같이 노래한다. "기억할게요"라고, "우리 함께할게요"라고.

<작은 뮤지컬 6411>은 이렇게 고 노회찬 의원을 추모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노회찬재단 창립기념 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은 그를 함께 기억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6411번 버스'로 대표되는 그의 뜻을 이어받는 자리였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포기하지 않는 인디언처럼..."

서울시청 다목적홀의 500여 석이 가득 찼다. 자리가 모자라 계단에 앉거나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이들도 있었다. 고 노회찬 의원의 부인 김지선씨를 비롯한 유가족들, 심상정‧이정미‧윤소하 등 고 노회찬과 함께한 정의당 동지들의 모습이 보였다. 권영길‧강기갑 등 민주노동당의 주역들도 눈에 띄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등 여러 시민단체 활동가, 그밖에 여러 노동자‧문화예술인‧시민들이 함께 모였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 전, 무대 위 스크린에는 <뉴스타파>가 고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당시를 기록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이 띄워졌다. 사회를 맡은 변영주 영화감독은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채 "오늘 연출께서 밝게 진행해달라고 하셨는데, 처음부터 이런 영상을 보여주시면..."이라고 웃어 보였다. 
 
a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이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500여 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조돈문 이사장이 모여준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다. ⓒ 곽우신

a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이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500여 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고 노회찬 의원의 조카 노선덕· 노현덕씨, 부인 김지선씨, 동생 노회건씨이다. ⓒ 곽우신

  
이날 공연은 내빈소개 없이 진행됐다. 노회찬재단 창립경과보고 영상이 상영되고,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의 인사가 있었다. 조돈문 이사장은 "인디언들이 기우제가 오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한다, 우리는 그 비밀을 알고 있다"라며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희망과 꿈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기어코 비가 오는 것"이라며 "우리 모두 노회찬에 대한 사랑과 모두의 염원을 담아 새롭게 시작하자, 보다 더 평등하고 보다 더 공정하고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인사를 위해 김지선씨와 고 노회찬 의원의 동생 노회건씨 그리고 조카인 노선덕‧노현덕씨가 무대에 올랐다.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노선덕씨는 "인생에서 가장 긴 여정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 이어지는 여정이라고 한다"라며 "저는 큰아버지 덕분에 머리로 세상을 배웠고, 또 큰아버지를 보내드리며 가슴으로 세상을 배웠다"라고 말했다. "이제 그 뜻을 기리며 노회찬재단과 함께 가장 멀지만 가장 의미있는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정이 시작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고 노회찬 의원이 사후 수상한 대한민국 인권상과 민주언론상 상금을 기부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기부금은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단법인 만사소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에게 전달됐다. 차광호 파인텍지회장은 "힘없다고 앉아있어서는 안 된다, 떨쳐 일어나자"라며 "그래서 잘못된 것 바로잡고, 노회찬 의원이 꿈꿨던 그런 세상 향해 함께 갔으면 좋겠다"라고 "투쟁"을 외쳤다.
 
a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이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500여 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아주중학교 3학년 3반 최현준 학생,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 서지현 검사, 오한숙희 노회찬재단 이사가 창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 곽우신

  
다음은 창립선언문 낭독이었다. 낭독자로는 아주중학교 3학년 3반 학생 최현준씨, 차광호 지회장, 서지현 검사, 오한숙희 노회찬재단 이사가 나섰다. 서지현 검사는 "제가 고통 속에, 두려움 속에 쓰러져있을 때 가장 먼저 손 내밀어 잡아 일으켜주셨던 분이 바로 노회찬 의원"이라며 "그 손길의, 그 온기의 따스함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그 따뜻한 온기가 이렇게 우리 마음속에 다시 살아서 보다 평등한 나라, 보다 정의로운 나라, 누구나 마음놓고 행복한 세상을 모두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래도 여전히 당신이 그립다"라고 잠시 눈물을 보였다. 오한숙희 이사는 '노회찬'으로 삼행시를 해보겠다며 "노회찬 오라버니, 회한 없으시죠? 찬란하게 오늘 부활입니다"라고 인사를 마쳤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에서 "노회찬재단은 부와 권력, 소수 강자의 횡포를 넘어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동자, 서민,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진정한 주권자가 되는 '참다운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며 "노회찬은 여기서 멈췄지만 '노회찬의 그 멈춤'은 반독재 민주화와 노동운동, 진보정치에 헌신한 그의 삶이 그러했듯이 우리를 깨우는 전율"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슬픔과 낙담과 절망에 갇혀 멈추거나 포기하지 말고, 참다운 민주주의를 향해 한층 더 열정과 의지를 지피고 지혜를 벼려야 한다는 당부"라며 "노회찬재단은 그가 우리에게 전해준 그 전율의 창조물이다. 또 그의 당부에 대한 우리들의 화답이다"라고 덧붙였다. 창립선언문은 "노회찬재단은 노회찬이 온 생을 바친 진보정치의 강줄기를 따라 참다운 민주주의의 바다로 함께 나아갈 것"이라는 문장으로 끝이 났다.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a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이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500여 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노래패 꽃다지가 축하공연에 함께했다. ⓒ 곽우신

 
a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이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500여 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은 추모공연 <작은 뮤지컬 6411>에서 버스 운전기사를 연기한 배우 박호산. ⓒ 곽우신

  
문화 공연이 다음 순서를 장식했다. 민중가요 노래패 꽃다지, 성미산마을합창단의 노래가 홀을 메웠다. 공연과 공연 사이 추모 영상이 흘러나올 때는 눈가를 훔치는 이도 있었다. <작은 뮤지컬 6411>은 박호산 배우 등이 출연해 6411번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고 노회찬 대표가 2012년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취임연설 때 언급한 그 6411번 버스였다. 공연은 '투명인간' 취급받던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고 노회찬 의원을 추모했다.

이어 변영주 감독과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 하수정 작가의 토크쇼가 진행됐다. 이들이 기억하는 고 노회찬 의원은 대중이 기억하는 달변가 정치인이 아니라 수줍음이 많고, 가끔은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친근한 사람이었다.
 
a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이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500여 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 왼쪽부터 토크쇼를 하고 있는 변영주 영화감독, 진중권 교수, 하수정 작가, 정재승 교수. ⓒ 곽우신

  
a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이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500여 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은 열창하고 있는 가수 이은미. ⓒ 곽우신

이들은 고 노회찬 의원과 얽힌 자신들의 인연과 각자 겪은 사연들을 풀어내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나 진중권 교수는 토크쇼 말미에 "그분이 지금 여기 있어야 된다, 느낌은"이라면서 "여기 늘 이렇게 있었잖나, 없으니까 지금 되게 이상하다"라고 서글퍼했다.

축하공연을 위해 등장한 가수 이은미씨는 "49재 때 못 온 게 너무 죄송했다"라며 "노래로 빚을 갚기 위해 왔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대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라는 가사의 <녹턴>으로 무대를 시작했다. 미안해하며 먼저 떠난 고 노회찬 의원에게, 그를 지키지 못한 채 남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듯이.

이은미씨는 다음곡으로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불렀다. 기계 고장으로 음악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1절 끝까지 무반주로 소화했다. 이은미는 대신 그의 대표곡 <애인 있어요>를 관객에게 선물했다. 곡을 부르던 도중 심상정 의원에게 마이크를 넘겼으나 심 의원이 가사를 잘 몰라 머뭇거리자 옆에 앉아 있던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마이크를 이어받아 열창했다. 이은미가 무대를 떠난 후 올라온 변영주 감독은 심상정 의원을 향해 "안되겠다, 나랑 가요 공부하자"라고 놀리기도 했다.
 
a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이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500여 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은 다함께 마지막 순서로 '그날이 오면'을 부르는 모습. ⓒ 곽우신

  
이날 공연의 마지막은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을 부르는 순서였다. 이날 공연에 참가한 배우들, 토크쇼에 함께한 사람들, 재단 관계자들, 정의당 당직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음악극 <태일>에 출연했던 한보라 배우의 리드로 시작된 노래는 홀에 앉은 모든 이들의 합창이 됐다.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팔뚝을 흔들며 조용히 투쟁을 외치는 사람, 눈물을 삼키느라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음성이 뒤섞였다.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에서 결국 오열하는 이도 있었다. 합창이 끝나자 무대와 객석은 함께 박수를 치며 웃어 보였다.

이날 공연은 이처럼 웃음과 울음이 공존하는 자리였다. 합창이 끝난 후 자리에서 떠나는 사람들 중 많은 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노회찬재단 #노회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